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겨우 합격하고, 대학 입학 후 불과 6학기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천재성을 보여 주며, 1949년 64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대학 교수가 되어 1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57년 대학 교수직을 강제로 퇴임당하지만, 이후 왕성한 저술 활동에 몰두하여 가히 백과사전적이라 할 정도로 폭넓은 분야를 섭렵하며 수많은 현대 지성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저술을 남기고 향년 92세로 생을 마감한 현대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에 이어 두 번째로 에른스트 블로흐의 『서양 중세·르네상스 철학 강의』가 박설호 교수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서양 중세·르네상스 철학 강의』는 블로흐가 강의한 내용을 모아 놓은 4권의 강연집 중 「중세 기독교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 부분을 골자로 하여, 고대 그리스 철학과 근대 철학 ― 마이몬, 셸링, 헤겔 ― 에 관한 글을 앞뒤에 덧붙여 묶은 것이다. 구성 면에서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사상과 시대적 상황들에 관해 나열하고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블로흐만의 독창적인 사유 방식으로 철학사를 개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세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이 고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제각기 고유한 사상적 특성을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각 시기의 시대정신이 각각의 철학자에게 끼친 영향뿐 아니라, 그 철학자들의 사고가 시대에 끼친 놀라운 영향을 상호 관련 속에서 세밀하게 언급함으로써, 중세와 르네상스의 철학 전통을 현실 세계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사상적 기반으로 파악하고 있다. 블로흐의 대표 저서 『희망의 원리』에서 볼 수 있었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과 메시아적 희망의 결합이 여기서는 각 시대의 대표적 철학자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중세·르네상스 철학에 대한 개론서이자, 방대한 블로흐 사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박설호 교수는 『희망의 원리』를 번역했던 과정에서 축적된 블로흐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국내 독자들이 보다 쉽게 블로흐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번역에 신중을 기했다. 『서양 중세·르네상스 철학 강의』는 블로흐의 저서들 중에서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다고 평가되지만, 박설호 교수는 내용 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마치 블로흐의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강연문이라는 특성을 충분히 살려 번역하였다. 더불어 책의 말미에 블로흐의 연보를 함께 실어 그의 삶과 저술 활동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에른스트 블로흐의 『기독교 속의 무신론Atheismus im Christemtum』 또한 박설호 교수의 번역으로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서양 중세·르네상스 철학을 통한 「철학사의 중간 세계들」 찾기!
2004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는 오늘날까지도 그 의미가 완전하게 파악되지 않은 신비스러운 저술로 평가된다. 네오마르크스주의, 신학, 문학, 음악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에 충격적인 영향을 주어 왔으며, 블로흐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와 정치 경제학자들이 현실의 계급 관계 등에 관심을 집중한 것과 달리 지금까지 연구 대상에서 외면된 미래 영역을 주 탐구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독특한 사유를 발전시킨 블로흐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강연집 가운데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중세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에 관한 내용을 통해, 블로흐의 철학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철학사의 세부 사항을 빠짐없이 다루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단편화된 사상, 다시 말해서 부분적 특성만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혹자는 이 책을 보고 여러 방면에 걸친 논문 모음집이라는 인상을 받을지 모릅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사이의 어떤 사상적 특성들을 간헐적으로 기록한 게 바로 이 문헌이라고 생각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관심사는 철학사에서의 「중간 세계」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문」 중 p. 22
블로흐가 말하는 중간 세계, 더 정확히 「중간 세계들Zwischenwelten」은 흔히들 알고 있는 에피쿠로스학파에서 말하는 인간 세계 혹은 인간 외적인 세계로서의 「중간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한 번도 명확하게 이 개념을 설명하고 있진 않지만, 책의 내용을 통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간 세계」란, 고대와 현대 사이에 놓인 세계들(중세, 르네상스)이라는 시대적 의미, 지옥 혹은 천국과 같은 신적인 세계와 물질적 현상만을 좇는 인간적 세계 사이에 존재할 것이라고 「희망」하는 더 나은 세계라는 유토피아적·공간적 의미, 당시의 주류적 사유 체계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이후 특정한 시대 상황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즉 주류의 틈바구니에서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며 탈시대적인 특성을 보여 주는 기이하고 독특한 철학적 사유라는 사상적 의미 등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 세계」는 하나가 아닌 여럿을 의미하는 복수형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블로흐가 말하는 「중간 세계」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명확한 철학적 개념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만의 독특한 사유를 통해 철학사를 바라보는 블로흐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철학사를 새롭게 인식하는 데에 이 「중간 세계」라는 표현은 분명 도움이 된다.
마르크스적 비판과 메시아적 철학을 결합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의 원리」를 말했던 그가
중세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블로흐의 메시아적인 철학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신학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철학적 범주들을 발견했다」고 하는 위르겐 몰트만, 「블로흐는 일반적인 사회주의 문헌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품위 있고, 공정하며, 방법적인 결함이 전혀 없는 사유라는 시민 사회의 전통으로, 그의 경우에 그것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바탕을 둔 사유로 드러난다. 고도로 정교한 개념적 수단들을 이용하여 그는 오늘날의 시민 사회의 문화 ― 유행에 극도로 민감하고, 그 결과 아주 경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정치경제적 상황에 그 의존성을 드러내는 ― 를 진단하고 해부한다」라고 한 헤르만 헤세, 「정치와 종교에 대한 블로흐의 사유는 아무리 길어 내도 결코 그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거대한 수원이다」라고 한 조지 스타이너 등등 블로흐에 대한 아낌없는 존경과 찬사를 보면, 현대의 지성인들이 블로흐를 통해 현대 사회의 새로운 사유 방식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블로흐가 중세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을 개괄하면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블로흐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기이하게 여기고 질문을 제기하는 호기심을 지니고,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자연에 대한 전율을 극복하고자 애쓰며, 끝없이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존재라고 전제한다. 그러나 인간의 개별적인 노동은 주어진 계급 사회에 의해 제한되고, 인간의 사유 또한 계급 사회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또한 특정한 시대의 주도적인 사고는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는 사고임을 동시에 강조한다. 그럼에도 사회적 상황을 뒤흔드는 혁명적 사유의 출현을 막지는 못한다. 블로흐는 『서양 중세·르네상스 철학 강의』에서 인간의 특성인 「기이하게 여김 내지 놀라움」이 끊임없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적 사유가 되고, 철학사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 등장한 유명론, 기독교의 천년 왕국설, 독일 신비주의, 르네상스의 범신론, 자연 과학의 발전, 근대적 국가 모델 등을 계몽주의적 사유와 시민 계급의 성장이라고 하는 현실 세계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사상적 기반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블로흐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간과되거나 혹은 철학자 본인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부분, 얼핏 보기에 불합리하거나 역설적으로 보이기까지 한 「지엽적」 사항들이 철학사를 통시적 관점에서 조망할 때 오히려 「핵심적인」 문제임을 깨닫게 됨을 강조한다.
가령 몇몇 이론들은 얼핏 보기에는 불합리한 것 같지만, 결코 불합리하다고 파기될 수 없으며, 오히려 어떤 핵심적 문제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가령 윌리엄 오컴William Ockham이 베들레헴 헛간에서 붉은 「벽돌로 화한」 신의 특성을 철학적 신학적 사고로 규정한 것을 생각해 보세요. 나아가 이데올로기 비판의 측면에서 우리는 어떤 기이한 예외 사항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어떤 사상이 주어진 사회에 종속된다는 관점인데, 이는 과히 시대를 앞선 사고나 다름이 없습니다. 과연 스코투스 에리우게나Scotus Eriugena의 자연에 관한 가르침은 9세기의 사제들의 이데올로기적 관심사와 어떠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을까요· 로스켈리누스Roscellinus의 유명론(唯名論)이 당시에 서서히 형성되던 봉건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관심사와 어떻게 관계될까요· 상기한 모든 내용을 다루는 데 있어서 우리는 역사의 시간 순서를 항상 고수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의 놀라운 예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기독교 신비주의입니다. 기독교 신비주의는 평신도 운동 그리고 이와 유사한 종교적 움직임 등을 고려할 때 스콜라 철학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이어 나갔으며, 때로는 스콜라 철학과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서문」 중 p. 23~24
예를 들면 중세 초기 로스켈리누스의 극단적 유명론은 둔스 스코투스와 윌리엄 오컴에게까지 이어진다. 신이 베들레헴 헛간에서 「붉은 벽돌」로 예수를 태어나게 했다면 우리는 인간의 아들이 아닌 벽돌을 신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윌리엄 오컴의 사유는 스콜라 철학이 지배하던 중세의 절정기에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유명론의 전통은 민중의 시민 의식과 자의식의 싹을 엿볼 수 있는 중세 말기 기독교 신비주의, 평신도 운동의 시기를 거쳐,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계급 혁명을 이루고자 했던 이들의 사상적 배경이 된 변증법적 유물론에까지 그 전통을 이어간다.
또한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 끼어 있는 「중간」을 발견하고자 하는 블로흐의 노력은 우리로 하여금 르네상스 철학을 하나의 독자적 영역으로 재평가하게 한다. 이탈리아의 텔레시오, 폼포나치 등의 사상은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었고, 플라톤의 「국가」, 스토아학파의 「세계 국가」, 기독교의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나라」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로 이어지는 사회 유토피아를 발견하게 되며, 조르다노 브루노, 토마소 캄파넬라, 독일의 파라켈수스, 야콥 뵈메의 사상은 현세의 행복과 우주에 대한 찬란한 기대감을 심어 주었고, 이것이 프랜시스 베이컨의 실험과 발견을 통한 기술주의와 접목함으로써 당시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과 우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견지하게 해주었다.
당시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어느 날 시대정신과 만나 철학사뿐 아니라 인류의 문화사를 추동하는 힘을 발휘하게 되는 「창조적 사상들」! 이것이 바로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바탕을 둔 사유를 통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고자 했던 블로흐가 중세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에서 주목한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