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하는 ‘영화 속의 정치’는 언급한 두 가지 방향의 해석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기술하고자 했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영화의 완성도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무작정 정치를 앞세우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무심코 보았던 여러 영화들을 정치학의 영역에서 논의되는 수많은 주제들과 연결하여 영화를 통해서도 ‘정치적인 것’과 ‘정치학’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기획된 것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정치학의 주제로 묶어 새로운 정치적 시각을 소개하는 방법이었다. 영화 속에 그려지는 정치를 새로운 각도와 시각에서 해석하고 접근하려는 의도였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33편의 영화는 7개의 다양한 주제 아래 소개되고 있다. 제1부는 “두 개의 한국 한반도(남북문제와 한반도)”라는 주제로 그동안 우리에 게 낯설지 않은 남과 북의 영화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공동경비구역(JSA)”은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기점으로 분단의 아픔을 여러 사건을 중심으로 그리고 있다. 이에 반해 “피바다”는 북한 극예술 영화라는 측면에서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이데올로기 영화의 전형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는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이분법이나 기존 영화평들이 갖는 영화비평 차원에서 기술하기보다는 영화를 통해 정치적인 것을 찾아내고 이를 글 속에 담고자 했다. 남과 북이라는 주제 자체가 너무나 정치적이지만, 이를 개별 사건과 사건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방식을 택했다. 문화적 시각에서 영화기법이나 내용을 담은 영화평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 방식이 그다지 친근감이 들지는 않을 것이겠지만,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 정치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4편의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정치적인 것을 독자들 스스로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기준과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스스로 다른 시각의 정치적 지평을 펼쳐보기를 권한다. 기술하고 있는 4편의 영화평이 절대적인 기준이나 독보적인 시각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여 스스로 정치적인 비평가가 되어보자.
제2부는 ‘저항, 혁명, 인권의 교과서’라는 제목으로 6편의 영화를 수록했다. 영화가 가장 정치적일 수 있는 주제가 아마도 이 주제가 아닌가 싶다. 제2부에 수록된 영화들은 그 주제와 내용도 다양하지만 서로 다른 지역과 국가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체코 영화 “콜리야(Kolya)”는 저항과 혁명을 주제로 체코의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고, “로메로”는 엘살바도르라는 남미의 국가에서 종교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그리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인권 영화인 “다섯 개의 시선(If You Were Me)”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다루고 있으며, 중동을 배경으로 하는 “메시지”는 중동에서 이슬람교의 의미를 일상의 인간권리와 연결하여 기술하고 있다. 만델라 대통령으로 유명한 남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호텔 르완다”는 인종과 정치를 연결하고 있으며, “당통(Danton)”은 프랑스 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혁명의 쌍두마차였던 당통의 삶을 통해 혁명에 대한 인간적 고뇌를 그리고 있다.
독자들이 제2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치적인 것은 너무나 쉽다. 주제 자체가 정치적인 것들이고, 내용이나 사건들 역시 역사적인 정치성을 이미 담고 있는 것들이기에 여기서 정치적인 것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은 서로 다른 국가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주제를 다루고 있는 방식과 내용에 대해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라는 것이다. 인권이나 인종이라는 주제가 정치적일 수 있지만, 표출되는 방식에서 서로 다른 사회성이 담기게 되면 내용까지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정치적인 해석을 부탁하고 싶다.
제3부에서는 우리 주변의 생활과 일상 속에 나타난 정치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생활과 일상의 반복에서 간과하기 쉬운 정치적인 해석과 분석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3부를 통해 알 수 있다. 모두 4편의 영화가 소개되고 있는 제3부는 일상 속에 전개되는 정치적인 것을 자연스럽고 의미 있게 그리고 있는 영화들을 다루고 있다. 이문열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의 속성을 가감 없이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는 스페인의 한 아파트라는 공간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들어나는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를 통해 다문화사회가 나아가야할 바를 그리고 있다. “파리대왕”에서는 인간 행동에 대한 기준으로서 합리적 선택 이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하나의 행동에 따르는 갈등과 고민 그리고 결정의 과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마치 한편의 역사 영화를 보는 듯한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는 한 개인적 삶의 여정을 통해 인간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랑, 인간, 그리고 정치를 그려내고 있다.
개인과 일상을 떠나 국가가 주체로 등장하는 제4부는 총5편의 영화가 소개되고 있다. 국가가 주도하는 정치적 억압과 상징이 어떤 식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되고 효력을 발휘하는 가를 그리고 있는 5편의 영화는 여전히 현대사회가 국가 중심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프랑스 영화 “늑대의 후예들(Le Pacte des Loups)”은 절대주의 국가를 다루고 있는데, 국가가 곧 왕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 영화 “추억”은 평소에 스쳐 지나가는 우리의 일상 속에도 얼마나 많은 정치적 상징이 존재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또 다른 미국 영화 “데이브(Dave)”는 모든 정치적인 활동과 내용 중에서도 바른 정치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이색적인 브라질 영화 “엘리트 경찰부대(Tropa de Elite)”는 국가가 주도하고 시행하는 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는 영화이다. 국가가 갖는 아수라 백작의 이미지를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다루고 있다. “왝 더 독(Wag the Dog)”은 정치적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국가가 유무의미하게 주도하는 상징에 대한 조작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아무도 의식하지 못한 채, 아니 의식할 수 없도록 상징을 조작하고 있는 국가의 정치를 그려낸 작품이다.
제5부는 인간이 만든 최대의 비극이자 사건인 전쟁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국가별로 다른 입장을 그리고 있는 영화가 5편이고, 소말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의 이중성을 고발하고 있다. 일본 영화인 “반딧불의 묘”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일본의 전쟁 가해자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이다. 다소 이율배반적인 영화로 전쟁을 보는 서로 다른 시각에 대해 생각해주는 영화이다. 오스트리아의 산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전쟁과 압제를 피해 정치적 자유를 찾는 고난의 과정을 노래 속에 담아 나타내고 있는 영화이다. 소말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블랙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은 강대국의 전쟁 야욕에 담긴 정의와 평화의 의미를 묻고 있다. “피아니스트”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인간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영화이다. 음악에 담긴 선율이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과 대비되어 더욱 처절하고 비장감마저 드는 아름다움이 대비되는 영화이다. 영화 “쉰들러리스트”만큼 전쟁을 두고 벌어지는 인간 행동에 대한 상반되는 평가가 상존하는 영화도 드물다. 고귀한 인간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희생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고, 조국을 배신하면서까지 자신의 직위와 신분을 활용하는 정치적 악을 실행한 쉰들러의 양면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그리고 있는 또 다른 이탈리아 영화가 “인생은 아름다워”이다. 이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전쟁 속에 핀 아름다운 부성애를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영화 속에 나타난 주인공 귀도(Guido)가 아들 죠수아를 지키기 위해 수용소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희화하고 해피엔딩을 선택한 영화이다. 그러나 장면과 장면 속에 그려진 많은 사건들과 모습 뒤로 해석 가능한 정치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은 영화이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의 역사적 배경과 시대상을 이해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역설과 보이지 않는 정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이다.
정치학의 영역에서도 항상 논란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분야의 하나가 페미니즘일 것이다. 제6부는 소위 페미니즘 영화라고 분류되는 4개국의 영화를 대상으로 정치와 영화의 경계에 선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다. 여성 4대를 다루고 있는 유럽(벨기에와 네덜란드의 합작)영화 “안토니아스 라인(Antonia's Line)”은 4대에 걸친 여성 가계를 통해 여성들을 위하 여성들의 세상 만들기를 그리고 있다. 봉건적 잔재와 종교적 굴레가 가득한 국가의 하나인 이란을 배경으로 이란과 이탈리아가 함께 만든 영화 “써클(The Circle)”은 일상 속에 벌어지는 지극히 초보적인 페미니즘을 그리고 있다. 페미니즘의 내용과 의미가 국가별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다소 생소한 주제의 하나인 일부다처제를 그린 인도네시아의 영화가 “브르바기 수아미(Berbagi Suami)”이다. 일부다처제라는 극한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려지는 가냘픈 여성의 투쟁을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이에 반해 이란을 배경을 하는 또 다른 영화는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축구를 소재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이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삶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영화는 전달하고 있다.
마지막에 편성된 제7부는 영화 속에 나타난 국제정치를 다루고 있다. 모두 4편의 영화가 수록되어 있는 제7부는 국제정치의 다양한 영역과 주제를 통해 영화가 그리고 있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영화 “살바도르(Salvador)”는 국제정치에서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국익이라는 냉혹한 현실과 국익에 반하는 정의는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영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미국 영화 “그날 이후(The Day After)”는 냉전의 산물이었던 미소분쟁과 그 결과물 핵무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핵무기의 국제정치적 의미를 돌아보고, 미래의 국제정치에서 핵무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영화이다. 두 편의 미국 영화와 대비되는 영화가 유럽 영화 두 편이다. “카페의 소녀”라는 영국 영화는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이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드나드는 국제정치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NGO라고 하는 시민단체가 국가이익에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고 적용하는지를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마지막 영화 “블루, 화이트, 레드”는 3편의 영화를 함께 묶어서 비평하고 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유럽통합의 3대 기본 정신을 세 가지 색을 통해 비유하여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비유럽인들에게 유럽통합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제격인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제1부부터 제7부까지의 주제별로 선정되어 소개한 33편의 영화들은 정치적인 의도를 떼놓고 볼 때도 수작들로 꼽히는 영화들이다. 그저 영화가 좋아 영화를 찾는 이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들이다. 그만큼 영화의 완성도나 예술작품으로서의 의미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들에 정치적인 해석과 상징성을 굳이 가져다 붙이려한 이 책의 집필 의도는 영화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계기와 동기를 찾아보고, 똑 같은 영화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분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영화에 대해서는 네티즌이라고 하는 우리 시대의 일반인들이나 영화를 배우고 아끼는 전문가들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는 정치학자들의 영화평이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기존 영화평에 비해 훨씬 고리타분하고 딱딱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다지 참신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문학적으로 수려한 글체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 속의 정치를 바라본다는 이번 시도는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고, 그만큼 독창적이고 의미 있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