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막무가내 반대에도 질렸다, 우파에도 맹목적인 옹호에도 질렸다!
지긋지긋한 지구화! 그러면 지구화 다음에는 무엇이 온다는 말인가?
세계적인 소설가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뜨내기 좌파, 얼치기 지식인, 음흉한 시장주의자에게
던지는 발칙한 딴지걸기!
소고기, FTA, 그리고 지구화
지구화라는 주제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먼 미국에서 들어오는 소의 병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머리 위를 날아가는 새 한 마리에도 가슴 졸이며 살게 되는 일 모두가 지구화와 연관된 문제이다. 국가의 개념과 역할이 점점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민간기업과 단체가 메꾸어 가는 오늘날, 새삼 지구화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것이 괜한 사족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쪽에서는 지구화의 부작용을 성토하며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정도 부작용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지구화에 대한 부푼 환상을 이야기한다. 변치 않는 사실은 우리 모두 지구화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이다. 지구화의 환상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 환상의 대명사로 쓰이는 인터넷에 대해 경계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인터넷이 없다면 지구화 반대자들의 활동이 지금처럼 활발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외친다. 소고기,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같은 질문을 지구화에 던질 수 있다. 지구화,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의견은 다양하지만, 확실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탈리아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 소개할 이 책, ?넥스트? 역시 지구화에 관한 책이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책을 쓴 저자가 어쩐지 심상치 않다. 알레산드로 바리코, 유럽 최고의 인기 소설가이자 움베르토 에코 이후 세계적 명성을 얻은 최초의 작가라는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이 책, ?넥스트 ― 지구화, 앞으로 우리는 어떤 세계를 살아갈 것인가?의 저자이다.
소설가는 소설이나 쓰라고? 천만에
이 책은 지구화라는 주제에 관해 저자가 <레푸블리카> 지에 연재했던 글을 덧붙이고 손질한 후, 약간의 원고를 추가해 만들어진 것이다. 첫번째 글이 <레푸블리카> 지에 연재되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은 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감히 소설가가 그런 주제를 주절거리다니, 그만 정신 차리고 소설이나 끼적이도록 해! 아니, 아예 소설마저 집어치워!’ 저자의 말을 빌리면 ‘자기 직업과는 관계없는 주제를 놓고 이런저런 설교를 늘어놓는 주제 파악 못 하는 소설가가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이런 사정은 한국도 이탈리아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의기소침하거나 연재를 중단하기는커녕, 사설을 모으고 원고를 추가해서 한 권의 책으로 낼 마음을 먹는다. 어쩐지 ‘그럴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면서. 그런데,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도대체 세계적인 소설가라는 사람이 대중의 욕을 감수하면서까지 말하려고 하는 이 지구화란 건 도대체 뭘까?
몽니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지구화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이니까. 그러나 지구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논하려면 무슨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한단 말인가? 정치경제학 교수 정도가 되어야 말발이 먹힐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 본문 9쪽에서
지구화, 모두가 오해하는 단어
해답을 알아내기 위해 바리코가 사용한 방법은 단순해보이지만, 그런 만큼 명쾌하다. 저자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고, 확실한 해답도 없는 지구화에 대한 정의를 캐내려 애쓰는 대신 지구화에 대해 사람들이 들고 있는 수많은 예, 흔히들 사람들이 떠올리는 지구화의 예를 탐구해간다. 세계 각국에 파고 든 코카콜라, 나라와 나라를 넘나드는 주식시장, 인터넷을 하는 티베트 승려들, 컴퓨터 상거래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바리코는 주어진 예들에 대해 하나하나 질문을 던진다. ‘과연 진짜인가?’, ‘이 예들은 모두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그리고 그 질문의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우리가 지구화의 예로 들고 있는 것이 사실은 지구화의 효과적인 예가 아니라 부분적인 단면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을 하는 티베트 승려는 존재하지 않는다. 코카콜라는 사실 전 세계에서 고루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 세계의 주식을 살 수 있지만, 그것이 전 세계의 회사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보증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지구화의 현실이 아니라 환상인 것이다. 우리가 지구화에 찬성하든, 아니면 반대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바리코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누가 그 환상을 조장하는가? 지구화라는 모터를 움직이는 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이 대답은 굳이 찾아볼 것 없이 나와 있다. 돈이다. 지난 세기 동안 전쟁을 이용했던 돈이 새로이 이용하게 된 것이 평화이며, 지구화는 이 평화를 위해 유포된 환상이라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티베트 승려들은 ‘진짜로’ 인터넷 서핑을 즐기고 있을까? 그런 질문은 소용이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은 소용이 있다. 대답은 ‘아니다’이다. …… 내가 이 문제에 관해 질문을 던지자 런던에 있는 티베트 사무국 대변인은 승려들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리고 왜 그런 이야기들이 떠돌게 되었는지 저간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덧붙였다. “그런 소문이 나도는 것은 아마도 중국 정부의 선전 공세 때문일 겁니다.” ― 본문 22쪽에서 부분발췌
바로 여기서 지구화의 가히 혁명적인 변태 성향이 명백히 드러난다. 사실 지구화는 ‘평화를 통해’ 갇혀 있는 돈에게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연구된 시스템이다. 전쟁은 방해만 될 뿐이다. 평화가 요구된다. 당신은 당신 나라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웃 나라에 치즈를 팔아먹을 수 없다. 당신은 폭격당할 위험에 처해 있는 나라에 가서 치즈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그곳에 우유가 넘쳐난다고 해도 그렇다. 하나의 가정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지구화는 전쟁 없는 세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 서구의 돈은 공산주의 국가를 정복했다. 돈으로 몽땅 사들인 것이다. 원자폭탄을 몇 개 날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원자폭탄 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는데 말이다. ― 본문 30쪽에서 부분발췌
넥스트, 우리가 맞이할 다음 세상
지구화, 우리 앞에 다가온 현실
그렇다면 바리코는 지구화를 부정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저자는 지구화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낙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지구화 반대자들이 가지는 생각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지구화의 폐해는 수없이 많고, 저자 역시 책에서 그 예를 들고 있다. 문화 브랜드의 위력과 문화 획일화의 위협이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세상은 그런 위협들이 있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지구화라는 벽 앞에 세계화 반대라는 새로운 벽을 쌓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지구화에 사용된 벽돌로 새로운 지구화를 만들어가자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말한다. 이전까지의 지구화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지구화는 쉽게 말해 경영자와 은행가, 즉 소수의 머리에서 나온 꿈이라고. 그래서 보잘것없는 꿈이라고.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가 참여해서 꿈을 꾸자고, 우리 모두가 같이 꿀 수 있는 멋들어진 꿈, 모두의 지구화를 만들어 보자고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지구화반대자들의 행동에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그들은 보잘것없는 꿈인 현재의 지구화에 반대하고 있으므로. 그들은 파시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보험과 같은 존재들, 위협에 대항하여 세상을 성장시킬 수 있는 소중한 원동력 중 하나라고 말이다.
이 점에 관해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선한 지구화가 존재한다면 그건 악한 지구화에 사용된 벽돌과 똑같은 벽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용 방법만 다를 뿐 재료는 똑같다는 것이다. 지구화 반대자들이 파괴하려는 벽돌은 ‘순수한’ 지구화를 구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과 똑같은 벽돌인 것이다. ― 본문 55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