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성찰을 통한 자비와 공동선의 실천을 위해
3회째 맞이하는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한국교수불자연합회 공동학술대회 자료집. 세계의 평화와 공존은 종교 간의 대화에서부터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남을 통한 대화만이 갈등해결의 근원적 단초를 제공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두 종교 단체인 기독교와 불자의 교수들은 소통을 해야만 종교 간의 반목과 대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신념으로 2006년 처음 공동학술대회의 포문을 열었다. 주제는 ‘인류의 스승으로서 붓다와 예수’. 그리고 2007년에 ‘오늘 우리에게 구원과 해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나누어 조명했다. 신앙 대상과 믿음의 형태가 다르지만, 붓다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은 맞닿아 있는 가르침이라는 근본적인 합일점을 도출한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로 눈을 돌렸다. 종교와 삶은 양분할 수 없기에 ‘속(俗 )’화되어 버린 ‘성(聖)’의 뼈아픈 자기반성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 책에는 종교인이며 한국의 정신 사회를 이끄는 대표적인 지식인들의 한국사회의 종교에 대한 우려와 비판적 성찰이 진지하게 담겨 있다. 외면할 수만은 없는,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상업화되고 대형화되는 현실 종교에 대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의 모색으로 본래의 종교성 회복의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속물스러움이 넘치는 사회, 다시 종교의 본질로…
종교 역사를 돌아보면 성스러운 것이 타락할 때 종교적 본질로 돌아가려는 역동성이 나타났다. 이러한 ‘성과 속의 변증법’은 모든 종교사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1세기 전후에 일어났던 대승불교운동이나 16세기의 기독교 개혁 운동도 본래의 청정한 종교정신으로 복원을 지향했던 운동이었다. 어느 종교 집단이든 간에 그 교단사의 전개 과정에서 이러한 종교적인 것과 비종교적인 것과의 역동적 긴장과 역설적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종교 창시자의 성스러운 가르침이 바르게 전승되지 못하고 타락되고 변질되었을 때 여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본래의 성스러움을 향한 개혁 운동은 필연적으로 발생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종교계의 현실은 종교 본래의 성스러움이 희미해지고 그 복원력이 상실된 채 방황하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다. 오늘의 종교공동체가 그 본래의 가르침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반 사회인보다 더 심한 일부 종교계의 행태로 본래 종교가 담당해야 할 ‘신성의 회복’과 ‘영적인 충만감’, ‘삶의 질서 회복’ 등의 역할은 개탄과 우려 속에 빛을 잃었다. 종교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할 때, 국민들은 어디서 길을 찾아야 할까?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종교권력,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현실 종교가 처한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종교가 비대해지면서 대형화되고, 상업화·권력화되면서 이에 따른 종교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시점이다. 기독자 교수와 불자 교수는 이러한 문제들을 스스로 점검하고, 자성하는 학문적 토론의 자리는 시의적절하며 반드시 거쳐야 하는 주제다.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를 자성의 기회로 삼아 다시 종교의 본질로 돌아가자고 경책하는 목소리가 자못 매섭다.
날카로운 비판의 눈과 자성의 목소리
제1부 “역사를 통해 본 종교권력”은 종교권력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다룸으로써, 오늘 이 시대의 문제점의 위치를 찾고자 했다. 유승무 교수(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과)가 1장 “불교에서 본 종교권력”을, 손규태 교수(성공회대학교, 신학과)가 2장 “기독교에서 본 종교권력”을 고찰했다. 논찬 김흡영 교수(강남대학교), 우희종 교수(서울대학교, 수의과)가 맡았다.
유승무 교수는 1장 “불교에서 본 종교권력”에서 일명 ‘고소영’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대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종교권력의 예각화된 모습을 서두로 내세운다. 그는 불교 역사를 통해 본 종교권력과 비교해서 우회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표한다. 물론 ‘지금, 여기’의 이야기가 아니길 바라며….
“고려 말 불교의 권력화 현상이 불교계의 권력을 강화시켜 주기는 하였지만(불교권력 상승), 궁극적으로는 고려불교 쇠퇴의 원인으로 작용하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고려불교의 정치적 성공 즉 고려불교 권력의 상승이 고려불교의 멸망을 재촉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나타난 것이다.” (41쪽)
이에 대해 김흡영 교수는,
“한국불교사를 통해 볼 때, 한 종교의 지나친 권력화 및 세력화는 곧 자기 무덤을 파게 되고 결국 쇠퇴와 멸망으로 귀결된다는 예언자적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52쪽)라고 논찬한다.
손규태 교수는 2장 “기독교에서 본 종교권력”에서 기독교의 세계화, 자본화, 권력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꼬집는다.
“오늘날의 세계화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명령했던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한 그리스도교적 세계화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의한 세계화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복음의 세계화, 즉 세계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 아니라 자본 즉 맘몬에 의한 세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길 수 없다’고 예수께서 경고한바 하나님과는 병존할 수 없는 재물의 세계화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달성된 것이다.”
이에 대해 우희종 교수는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민초와 함께 했던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지배자와 특권층의 종교로 나타나는지를 시대별로 요약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라고 서두를 떼며, “종교적 도그마와 신앙심으로 포장된 인간욕망에 의해 나타나는 종교의 자기분열 현상이 종교 자체가 지니고 있는 근본적 속성이며 인간 사회가 있는 한 종교의 권력화는 앞으로도 항상 있을 것이다. 비록 종교에서 참된 가르침과 권력화된 종교의 모습은 서로 너무도 거리가 있지만, 종교의 이러한 이중성을 고려할 때 종교의 권력화를 고민한다는 것은 우리 내면이 지닌 양면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더불어 삶의 문제로서 접근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자세가 진리의 메시지에 항상 깨어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한다면 종교인이나 일반 신도의 입장을 떠나 우리 모두의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삶의 실천적 문제로서 종교를 접해야 하며, 이를 통한 종교적 메시지는 우리 모두에게 영성에 근거한 삶의 근본적 변화를 수반한다는 점이다.(89쪽)”라고 논찬한다.
제2부 “한국사회와 종교권력”은 오늘의 각 종교의 폐해적인 요인들의 원인과 현상들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점검하는 순서로 마련했다. 김경집 교수(진각대학교)가 3장 “현대불교와 종교권력”, 이진구 교수(호남신학대학교)가 4장 “한국개신교와 종교권력”을 맡았다. 김영태 교수(전남대학교, 윤리학), 박광서 교수(서강대학교)의 논찬을 했다.
김경집 교수는 3장 “현대불교와 종교권력”에서 “불교의 권력화는 세속화를 의미한다. 세속화는 세상이 가지고 있는 이권을 불교계로 옮겨오는 것이다. 종교적 신앙으로 모인 다수의 힘으로 사회를 주도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다. 현재 불교계가 내부적 능력을 향상시키기보다는 이권을 향해 세속의 이익집단처럼 행동한다면 권력화와 세속화를 우려하여야 한다.”고 말한다(94쪽). 그는 불교종파 갈등과 종권다툼의 권력유착의 현재진행형 역사를 예리하고 꼼꼼하게 발제하며 “불교권력의 다각화 못지않게 금권화와 정치적 참여의 증대도 문제점이다. 불교권력의 정치화는 당면한 불교계의 현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나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는 것처럼 불교계가 막강한 힘을 가진다면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하기 때문이다.”라고 경계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대해 논찬자는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의 종교와 정치의 4가지 관계 유형을 예로 들면서 다음같이 말한다.
“정치는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삶의 종요한 영역이다. 정치는 인간 사회의 중요한 가치들을 토론과 합의를 통해서 정책으로 세우고 제도로 실현해가는 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랜 전통과 가장 많은 신도수를 보유하고 있는 불교가 한국 정치와 국가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원만하고 바람직한 자세를 취해 주기를 바란다. 지나치게 정치를 외면해서도 안 될 것이며 지나치게 개입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불교가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적 통합기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국가 권력이나 정치가 크게 탈선했을 때는 강력하게 시정을 촉구해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는 데 일조하기를 바란다.”(129쪽)
4장 “한국개신교와 종교권력”에서 이진구 교수는 “났다 하면 불이오! 섰다 하면 교회다!”라는 말로 ‘영혼 구제’를 주 업무로 하는 ‘종교 시장’의 양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한국 개신교단을 엄중하게 비판한다.
“대형교회에서 목회 세습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차적으로는 담임 목사가 교회를 ‘사유재산’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총수가 젊은 시절 점심을 굶어가면서 현재의 재벌 그룹을 일궜듯이, 자신들은 ‘천막교회’ 시절부터 피와 땀을 흘려 현재의 교회를 일궜다고 생각한다.”(142쪽)
또한 돈과 권력의 정치학이 그대로 종교계에도 투영되어 드러난다고 말한다.
“얼마 전 한기총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금품선거가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후보로 올라온 모 교단 측 인사는 자신이 당선되면 10억을 기금으로 내놓겠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였고 마침내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는 돈으로 권력을 사는 ‘돈의 정치학’(money politics)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145쪽)
신자유주의 대형교회, 해외선교의 정치학, 기독교계 뉴라이트까지 손을 댄다. 그리고 4.9 선거에서 드러났던 기독교 정당 만들기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처럼 기독교 문화의 역사가 일천한 곳에서는 기독교 정당이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제도적 이익’을 대변하는 정파로 전락하기 쉽다. 현재 기독당의 주도 세력이나 창당과정을 보면 기독교계 전체가 아니라 수구적 보수진영을 대변하는 종교권력의 전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164쪽)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기독교가 ‘빛과 소금이’ 아니라 ‘공공의 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가 이제는 ‘힘의 논리’가 아닌 ‘섬김의 논리’로 “한국 개신교의 위기 극복은 정치적 세력화를 통한 타자 공격이나 교회의 대형화를 통한 무조건적 자기팽창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을 통해 스스로를 무한 증식해 가는 종교권력의 해체 작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166쪽)라며 진지하게 ‘자발적 가난’, ‘예수 믿고 손해 보기’의 길로 다시 종교 본연의 모습을 찾기를 촉구한다.
제3부 “종교권력과 사회개혁”은 지난 2003년도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와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공동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이다. 5장 “종교권력과 사회개혁-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박종화 목사님(경동교회), 6장 한 불교인의 사례를 통한 자기반성은 진월 스님(동국대학교)의 글을 가려 뽑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