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이 아니라 본성‘들’이다
세상에 흉악 범죄들이 기승을 부릴 때마다 흔히들 인간의 본성을 탓합니다. 우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공격적이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잔인한 동물이며, 그러한 인간의 본성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체념에는 한 가지 가정이 깔려 있습니다. 즉 인간은 유전자 같은 것에 의해 결정되는 단일한 고정불변의 본성을 타고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변하지 않는 하나의 인간 본성이란 없다고 단언합니다.
“모든 인간 본성들에, 모든 인간 게놈들에 공통된 특징이 존재한다 해도 단일한 인간 게놈이 없듯이 단일한 인간 본성이란 없다.”
저자는 제목에서도 강조되듯이 시종일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본성들(natures)’이라고 복수형을 씁니다. 실제로 우리의 본성(호모 사피엔스의 신념, 태도, 행동의 패턴)은 개인마다 사회마다 다릅니다. 베이징에 사는 중국인의 인간 본성과 파리에 사는 여성의 인간 본성은 같지 않으며, 도시 불량배의 본성과 경건한 기독교 집안 아이의 본성은 같지 않습니다. 저자는 인간 본성의 이러한 다양성, 차이를 강조하며 우리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저 사람은 왜 나와 다른가?’ ‘당신의 본성은 나의 본성과 어떻게 다른가?’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은 원래 공격적이라느니, 어떤 인종은 다른 인종에 비해 지적으로 열등하다느니, 남자는 원래 성적으로 문란하다느니 하는 성급한 일반화는 전적으로 그릇된 주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다르기 마련인 인간 본성의 다양성을 무시하고서는 그 인과관계를 올바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은 바뀔 수 있으며 바뀌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본성은 불과 몇십 년 전의 우리의 본성과는 많이 다릅니다. 실제로 인간 본성은 진화해왔으며, 그 자체가 진화의 산물입니다. 진화의 시계에 비추면 찰나에 불과한 수백만 년 동안,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벌레를 잡아먹던 인간조상의 본성으로부터 우리는 사고와 언어, 도구와 문명을 발달시켰고 우리의 본성 역시 진화시켜온 것입니다.
유전자 결정론을 비판한다
‘변하지 않는 하나의 인간 본성’이란 생각은 현대 유전학의 성과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유전자가 우리의 본성을 결정한다는 이 단순명쾌한 논리에 힘입어 암 유전자에서 동성애 유전자, 범죄 유전자, 비만 유전자, 최근의 행복 유전자까지 과학자들의 요란한 발견 목록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유전자가 인간 본성의 모든 측면을 결정하기에는 수적으로 절대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밝힌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를 당초대로 10만 개라고 한다면(그러나 최근에는 벼보다도 적은 2만 5000개쯤으로 대폭 줄었지요), 우리 뇌의 1조 개 이상의 뉴런이 만들어내는 100조 이상의 시냅스를 조절하려면, 다른 일은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도 유전자 하나당 적어도 10억 개의 시냅스를 담당해야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유전자가 기본적인 신체 유지 활동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유전자 결정론이 환원주의의 오류에 빠졌다고 비판합니다. 마치 어머니의 사진을 구성하는 각 도트의 색깔을 정확히 분석하기만 하면 왜 우리가 어머니를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특히 유전자 조작으로 열등한 인자를 도태시키고 우등한 집단을 만들려는 우생학적 인간 개조 프로그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 결정론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해묵은 본성/양육(nature/nurture) 논쟁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무의미하다고 잘라 말합니다. 본성과 양육, 유전자와 환경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물음은 삼각형의 면적을 낼 때 밑변과 높이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묻는 것처럼 어리석다는 것이죠. 저자는 ‘유전자’ ‘환경’ ‘유전자-환경의 상호작용’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우리의 본성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즉 “유전자는 환경에서 가능성의 범위를 결정하고, 환경은 유전자의 발달 가능성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문화적 진화가 중요하다
저자 폴 에얼릭은 저명한 식물학자 피터 레이븐(Peter Raven)과 함께 식물과 곤충의 공진화(co-evolution)를 밝힌 연구로 유명합니다. 사실상 공진화의 개념을 최초로 증명한 그는 이 책에서도 유전자와 환경의 공진화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들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인간 진화의 전 과정을 통해 추적하는 이 방대한 저작은 여느 진화론 책들과는 상당히 다른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유인원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어떻게 두 발로 섰고, 복잡한 사고와 언어 능력을 갖게 되었는가를 최근의 과학연구를 바탕으로 상세히 복기하는 한편, ‘우리는 어떻게 종교를, 예술을, 농경을, 전쟁을, 정치 국가를 발명했는가?’ ‘왜 어떤 문명은 융성하고 어떤 문명은 사멸했는가?’를 질문합니다. 그는 인간의 신체적 완성으로서의 생물학적 진화 과정 못지않게 인간 문명의 비약적 발전을 가능케 한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명명한) ‘문화적 대약진(Great Leap)’을 동일한 비중으로 다룹니다.
폴 에얼릭은 유전적?생물학적 진화 못지않게 개체에서 개체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는 비유전적 정보의 총합체로서 ‘문화적 진화(cultural evolution)’가 인간 본성에 중요했다고 주장합니다. 단적인 예로, 만일 DNA가 정말 우리를 결정한다면 사람들은 그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가능한 한 많은 아이를 낳으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 유전자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자식의 수를 결정하는 것은 환경적 요인, 특히 그 개체가 속한 사회의 문화적 요인입니다. 우리의 남아선호 사상으로 무너진 성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 아이가 상대적으로 많이 태어나는 것은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문화 때문입니다.
인간 본성과 문명의 미래를 생각한다
인간과 유인원의 공통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와 일어서고 뇌가 커지고 도구를 사용하고 급기야 언어를 발달시키기까지 수백만 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다가 불과 5만 년 전 시작된 문화 대약진으로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쳐 인간은 지구의 우점 생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속도 차, 문화적 진화가 유전적 진화에 비해 엄청나게 빠름을 시사해줍니다. 이는 세대에서 세대로 수직으로만 전달되는 유전적 진화에 비해 문화적 진화는 개체들 간, 사회 간에 수평으로도 교환되고 공유되기 때문이며, 유전적 진화와 달리 문화적 진화에서는 획득형질도 유전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두 진화의 속도 차는 현대문명이 처한 곤경의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지구온난화와 생물다양성의 감소 같은 이제까지 우리를 지탱해온 생명부양시스템의 위기는 환경을 통제하는 인간의 능력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나 그 힘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편의주의와 환원주의에 기초한 무분별한 살충제와 항생제의 남용은 해충과 박테리아의 저항성만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저자는 우리의 지각체계를 생태학적 사고로 진화시킬 때에만 지속 가능한 사회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유토피아일까요? 저자는 지난 세기의 민주주의의 확대, 개인 자유의 신장, 인종차별 철폐, 종교적 관용과 여성과 동성애자의 권리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문화적 진화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인간의 본성을 명명백백히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한 작업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도 더 많은 ‘왜 그리고 어떻게’라는 의문만 생겨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 본성은 철학적 사변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물학에 의해서, 곧 인간 진화의 맥락에서만 올바로 접근 가능하다는 이해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나 《빈 서판》처럼 유전자를 중시하면서도 《총 균 쇠》처럼 환경의 의미를 놓치지 않는 이 균형 잡힌 저작은 결국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통합학문으로서 인간의 본성을 생물학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점에서)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에 가장 가깝다 하겠습니다(폴 에얼릭과 윌슨이 함께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로부터 노벨생물학상 격인 크라포르드상을 공동수상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나 20년 더 나중에 나온 만큼 최근의 과학적 연구 성과가 잘 반영된 새로운 사회생물학 책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