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또 다른 이름, 욕망」 잘나가는 엘리트 커리어우먼 오다카 시즈카, 머지않아 마흔이 되는 그녀는 사랑하던 남편과 사별한 후 시부모(아이의 양육을 도맡아주는)를 모시며 살고 있다. 어느 날, 그녀는 상사 대신 호텔 커피숍에서 영어교재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을 만나게 된다. 시즈카는 첫눈에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다른 영업사원들과 다른 그의 순수한 모습에 점점 더 매력을 느낀다. 그리하여 만나기 전 적당히 거절하려던 생각과 달리 전 사원의 영어교재를 구매하게 된다. 그때부터 그녀는 서서히 그가 자신에게 손을 뻗쳐오도록 은근히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만난 지 한 달 후, 드디어 둘의 육체는 하나가 된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그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황홀경이었노라고 입이 마르도록 그녀를 추켜세운다. 호텔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그녀는 자신이 혹시 사랑에 빠진 건 아닐까 생각하며 그에게 날마다 만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답은 ‘잘 부탁한다’라는 말뿐. 그녀는 남자의 본심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홀로 이별을 결심한다.

「열정의 법칙」 미국에 살고 있는 현재의 남편과 재혼한 뒤 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시오리는 작품 전시회를 위해 가끔 일본을 찾는다. 시오리는 자신의 전시회를 후원해주는 오니즈카에게 강하게 끌리면서도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오니즈카 역시 시오리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전시회 관계로 일본에 왔다가 미국으로 떠나는 날, 시오리는 오니즈카가 자신을 붙잡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약속했던 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오니즈카는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만난 여성과의 사랑 이야기. 관계가 깊어지면서 그는 아내와 이혼하려 했지만, 아기를 가지려고 애쓰는 아내에게 차마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대신 그녀와 헤어지기로 마음먹는다. 그녀가 자신을 싫어하게 하기 위해 섹스를 할 때마다 그녀를 잔인하게 다루며 변태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두 달 쯤 뒤에 마침내 둘은 헤어졌으나, 그는 매일 백화점 향수 코너에 들러 그녀가 사용했던 향수를 사 모으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랬다는 이야기. 시오리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들은 뒤 공항으로 향하는 전철을 탄다. 전철이 출발하기 직전 그녀는 그의 이야기가 거짓이었음을, 그 사랑의 대상이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바다에 대한 마음」 결혼하여 네 살배기 딸을 둔 이십대 중반의 유키코는 우연히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서점에서 유명한 도예가를 보고 그녀의 우아하고 관능적인 매력에 이끌린다. 유키코보다 스무 살쯤 연상인 도예가 역시 그녀에게 끌린다. 도예가는 그녀에게 자신의 비서가 될 것을 제안하고, 둘은 호텔에서 그들만의 은밀한 시간을 즐긴다. 어느 일요일, 도예가의 갑작스런 초대를 받고 그녀의 집에 간 유키코는 도예가의 남편과 아들을 만나고 난 후 그녀와 단둘이 바닷가에 간다. 그곳에서 도예가는 얼마 전 수술했던 유방암이 나머지 한쪽 가슴에도 전이되었으며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부위까지 퍼졌을 알리면서, 그녀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유키코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는 게 가장 두렵다고 말한다.

「빛과 그림자의 약속」 자유기고가인 서른셋의 하루코는 5년 전부터 학원을 운영하는 아이 셋 딸린 남자와 내연의 관계를 맺어왔다.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이혼한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억척스레 엄격하게 키웠다. 어머니 덕분에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학교 폭력 사건에 휘말려 그만두고 학원 강사를 하던 중 미키오라는 유부남과 만나 관계를 맺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5년 동안 하루코는 자신을 내동댕이친 채 그 남자와의 육체관계에 매달리며 살아왔고 그 시간이 자신에게는 어둠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취재를 하면서 한 팀에서 일하던 카메라맨(나가타니 히로시)에게서 사랑 고백을 듣게 된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랑하던 여자가 대학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간 뒤로 소식이 끊기자 그녀의 친구와 결혼하지만, 일 년 만에 별거에 들어갔다고 고백한다. 아내에게 첫사랑을 6년 동안 잊지 못한다는 고백을 하자 아내가 헤어지자고 했다는 것. 하루코는 아내와 이혼을 할 테니 기다려달라는 남자의 고백을 듣고, 그와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희망에 부푼다.

「바람과 같은 기억」 중학교 때 아버지의 의과대학 제자인 의대생 남편과 처음 만나 대학 3학년 때 결혼한 히나코. 결혼 후 미국에서 2년간의 근무를 마친 남편은 이제 대학 병원에 자리를 잡았다. 신흥 주택단지에 아름다운 수국으로 둘러싸인 고급주택을 짓고 빨간 포르셰 승용차로 아이를 등교시키는, 겉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마흔넷의 우아한 주부. 미국에서 첫아이를 잃고 임신이 안 되자 더 이상 아이를 원치 않았으나, 남편의 간곡한 부탁으로 천신만고 끝에 딸을 낳았지만 왠지 아이에게도 애정이 없다. 완벽한 후원자이며 지지자이고 닭살 돋을 정도로 끔찍하게 자신을 위해주는 남편은 완벽한 가정을 바탕으로 젊은 남자와 외도를 한다. 히나코 또한 그런 남편에게 의무 이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고독과 허무함만이 쌓여간다. 그럴 때, 남편 동료 의사의 고 3아들(사사키 신)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된다. 히나코와 사사키는 첫눈에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신이 의과대학에 들어간 뒤로도 그들의 육체관계는 계속되었으나, 이제는 관계를 청산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마침내 그 말을 입 밖에 냈을 때 신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하늘을 나는 물고기」 「빛과 그림자의 약속」에서 카메라맨 나가타니 히로시가 6년 동안 잊지 못하고 지냈던 첫사랑의 연인이 며칠에 걸쳐 그에게 써보내는 편지.

편지에는 그녀가 호텔학을 배우기 위해 미국에 유학을 간 뒤로 교통사고를 당해 히로시에게 연락하지 못했던 사연과 지독한 재활 훈련 끝에 드디어 재기에 성공해 호텔에 근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미국으로 건너가 어학연수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호텔학 공부를 시작한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 치명적인 중상을 입는다. 세 번의 수술 후, 요양소에서 재활 훈련을 하며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간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히로시에게 연락을 할까 수도 없이 망설였지만, 두 발로 당당하게 걸어서 일본에 가 히로시 앞에 서고 싶다는 바람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간신히 목발을 짚고 다닐 수 있게 되자 나머지 학점을 이수하고 일본에 돌아온다. 호텔에 취직하기 위해 여러 호텔에 이력서를 냈지만 장애의 벽은 높았다. 절망에 찌들어 술과 마약으로 살아가던 중, 거리에서 매춘을 알선하는 중국인 남자를 보면서 문득 자신도 매춘을 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소개받은 상대는 점잖고 세련된 매너를 가진 야쿠자. 첫 경험인 그녀를 극진히 배려해주며 관계를 맺는 남자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다음 날부터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는데 때맞춰 호텔에 취직까지 하게 된다. 얼마 전, 친구로부터 히로시가 결혼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도 했지만, 이제 용기를 내어 자신의 지난 6년간의 생활을 편지로 써보내며 명함을 동봉한다.

<b>나와 당신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b><br/>조금은 특별한 사랑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는 『빛과 그림자의 약속』은 『원하는 것은 당신뿐』으로 ‘시마세 연애문학상’을 받았던 코데마리 루이의 소설집이다. 모두들 흔하게 사랑을 이야기 하고, 누구라도 한 번쯤 사랑을 경험한다지만, 이 책에는 누구도 쉽게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사랑 이야기 여섯 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나와 당신의 이야기’이다. 보편적이지 않은 사랑 이야기, 오히려 비난받기 쉬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의 제목으로는 참 아이러니하다. 작가는 이런 특별한 사랑의 주인공들이 바로 나와 당신들이며, 이런 사랑도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특별할 게 없는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br/><br/>이 소설집의 작품들은 모두 주인공이 직접 서술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 주인공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삼십대 혹은 사십대 초반의 세련미가 넘치는 지적인 여성들이라는 점과 매우 관능적이며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사랑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아직 중년이라 하기에는 젊지만 이미 청춘을 모두 소진해버린 여성들, 그녀들이 사랑하는 대상은 유부남이거나 어린 학생이거나 혹은 여성이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을 탐닉적인 사랑이며 저열한 욕망이라고만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영혼을 불태울 만큼 순수한, 자신을 파괴해버릴 만큼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br/><br/>이 소설집의 특징 중 하나는 각각의 작품이 기묘하게 연결되어 새로운 소설적 재미를 준다는 점이다. 이 작품들의 주요 배경은 모두 신주쿠 남쪽에 있는 고층 호텔의 널찍한 커피숍이다. 각 작품의 주인공들은 고층 호텔 커피숍에 나타난 서로를 보면서 객관적인 서술을 하고 있는데, 이로써 주인공 시점의 서술적 약점을 보완해주며, 독자들에게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하늘을 나는 물고기」의 주인공 히나코는 이 호텔에서 일하며,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관찰한다. 또한 히나코의 상대는 「빛과 그림자의 약속」의 남자 주인공으로 두 작품은 서로 연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다. 이런 소설적 장치들과 함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유려한 문장들은 이 작품들의 자극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이 대중적인 연애소설로만 읽히지 않고 완성도 높은 문학작품으로 읽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