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와 함께 떠나는 영화 속 인물 정신-심리 탐사 여행
≪프로이트와 영화를 본다면≫은 정신과 전문의가 영화 속 인물들의 행위에 숨어있는 수수께끼들을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잣대로 풀어내고 의미를 부여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다.
지난 1996년 초판 발행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모으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이 책은 최근 기존 내용에 <매트릭스>, <무간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등 새롭게 13편의 영화분석을 추가하여 모두 30편으로 재구성된 증보판으로, 12년 만에 다시 출간되었다.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두 배로 불려주는 새로운 시각의 감상법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두 배로 불려주는 새로운 시각의 감상법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는 영화 속 인물들을 분석하여, ‘어떤 마음의 얼굴’, ‘벽 속에 갇힌 달팽이’, ‘굴절된 사랑이야기' 등 모두 5가지 주제에 따른 분류를 해놓았다. 각 주제는 사랑, 희망, 절망, 아픔, 분노 등 인간 내면의 ‘원형’을 건드리는 영화들을 모았다.
이 책의 초판은 영화에 대한 심리분석은 물론 영화 속에 담겨진 상징과 마음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다루었다.
이번 증보판의 특색은 새로 추가된 원고들이 인간의 마음에 대한 분석보다는 우리 현대인들이 필연적으로 느끼는 외로움이나 슬픔, 그리고 소외된 감정에 대한 위로와 이해를 담고 있다.
또한 우리가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우리의 어두운 부분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영화의 분석서나 해설서가 아니다
저자는 단지 영화 속 등장인물과 영화의 줄거리를 빌려서, 우리 마음은 도대체 무엇이며, 왜 우리는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우리 마음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언급하고자 했다. 또한 자꾸 초라해지고 소외되고 있는 현대인들을 위로하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로서 공감을 하고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왜 안락한 세계를 떠나 초라하고 궁핍한 현실세계로 떠났을까?”
“<닉슨>을 대통령으로 이끈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를 나락으로 빠뜨린 것은 또 무엇인가?”
“똑똑한 자들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똑똑하지 않은 자들이 더 똑똑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 듦이란 생각만큼 그렇게 불행한 일도 불편한 일도 아니며, 도리어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프로이트와 영화를 본다면≫은 ‘영화 속 인물들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며, 영화 줄거리는 우리의 인생사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하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영화를 통해 우리가 숨기고 싶었던 우리 내면의 비밀스런 부분들을 조심스레 들춰보고, 그런 어두운 부분이 절대 부끄럽거나 숨길 필요가 없는 인간의 자연스런 마음의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저자의 이야기는 영화 속 인물이나 줄거리를 분석하기도 하고, 그냥 단순히 줄거리를 차용해서 저자가 하고 싶었던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 풀어놓고 있다.
<매트릭스>는 SF영화라고는 하지만, 현재 우리가 매일 생활하고 있는 실제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이며, 우리는 그 가상현실에서 진리를 모른 채 사육되고 길러지고 있다고 한다. 매스미디어는 교묘하게 우리의 마음을 조종하여 더 많은 소비를 하도록 부추기고 있으며, 우리는 맹목적으로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하루하루 자신의 마음과 몸을 혹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저자는 얘기하고 있다.
또한 <닉슨>이란 영화를 통해 일반인들이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콤플렉스가 어떻게 인간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특히 콤플렉스가 많기로 유명한 닉슨이 어떻게 대통령까지 당선되었는지 그에 대한 심리분석을 통해 콤플렉스의 긍정적인 기능뿐 아니라 그 안에 도사린 함정도 언급하고 있다.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에서 젊은 남녀가 신앙처럼 숭배하는 낭만적인 사랑이 과연 우리 인간에게 내재한 자연스런 감정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문화가 우리에게 심어준 과장된 허구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 우리의 사랑은 지나치게 인플레이션 되어 있으며, 낭만적인 사랑이 얼마나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지도 설명하고 있고, 그렇다면 우리의 자연스런 감정은 무엇인지 주인공 조제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바웃 슈미트>와 <토토의 천국>에서는 우리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노화과정, 즉 나이 듦이란 패배도 아니고 자신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도 아니며,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인생을 통합하고 만족할 수 있는 시기가 될 수 있고, 그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한시도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외로운 감정을 제일 두려워하고 피하려 한다. 그러나 저자는 <파니핑크>를 통해 외로움이야말로 우리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등대가 될 수 있는 좋은 점을 가진 인간 감정 중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항상 현재를 살지 못한다. 과거에 사로잡히고, 미래에 발목이 잡힌 채 항상 전전긍긍하며, 하루 종일 일어나지도 않을, 또 지나가 버린 망상에 사로잡혀 지낸다. <베를린 천사의 시>를 통해 저자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제시한다. 지금 현재 아니고는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지금 현재를 놓치기 때문에 인생은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지금 현재의 중요성을 저자는 강조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분석도 빼놓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레옹>의 주인공인 킬러 레옹은 모성성을 극복하지 못해 ‘몸만 커버린 소년’으로 보고 있다. 그에 대한 심리적 상징은 그가 자신의 분신같이 가지고 다니는 화초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화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약하고 어린 화초에 불과하다. 그를 비바람 맞는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조숙한 소녀’ 마틸다와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비롯된다.
또 <데미지>에서는 여주인공인 안나가 입는 검은 옷을 죽은 오빠에 대한 죄의식에서 비롯된 상복으로 풀이하고 있으며, 애인의 아버지를 유혹하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죽은 오빠에 대한 죄책감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으로 평균 이하의 저능아를 등장시킨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융의 ‘심리적 유형론’이 동원되고 있으며, ‘자살의 심리학’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영화로 꼽히는 <여인의 향기>를 통해 자살이란 대중의 오해와는 달리, 충동적인 것도 아니고 비밀리에 결행하는 것도 아님을 실제 사례까지 들어 소개하고 있다.
<레인맨>에서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과 세상에서 닳고닳은 동생이 등장한다. 똑똑한 동생은 바보같은 형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 하지만, 결국 어눌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형을 통해 그는 인생의 교훈을 얻게 된다. 이는 심리적으로 발달되지 못한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마음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 가끔 나오는 정신병 환자의 왜곡된 모습에 대한 의사로서의 ‘항변’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컬러 오브 나이트>란 영화를 통해 영화 속에 투영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지나치며, 그것이 일반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소개하면서, 인구의 50% 이상은 일생에 한 번은 정신질환을 겪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폄하하고 낙인을 찍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사실도 주지시키고 있다.
<양들의 침묵>의 렉터 박사의 모습은 정신과 의사가 마치 남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사람인 것처럼 여기는 대중의 시선을 반영하고,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트랜스젠더 연쇄살인범이 갖는 사회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이 영화가 어떻게 굳혀졌는지 하는 것도 들여다보고 있으며, 영화 속의 여주인공이 왜 그렇게 집요하게 범인을 잡으려 했는가 하는 심리적인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덧붙여 이런 영화들로 인한 오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 치료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지도 알려주고 싶다는 의도 역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까미유 끌로델>에서는 로댕의 연인이자 유망한 조각가였던 까미유 끌로델이 왜 30년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거기서 불행한 인생을 마쳐야 했는지 그녀의 행적을 어린시절부터 추적하여 그녀가 실제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요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듯이 그녀는 남성중심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억울하게 정신질환이란 누명을 쓰고 정신병원에 평생 갇혀 지내야 했는지 여부를 풀어내고 있다. 과연 그녀는 정신병을 앓았던 것이 사실이었을까?
그리고 한국영화 <해바라기>와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남자들이 집안에서, 또 사회에서 얻는 작은 권력에 얼마나 연연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권력을 유지하고 잡기 위해 겪어야 하는 남자들의 숨겨진 나약함과 우울함, 그리고 자기 소외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남자들이 많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회야말로 가장 자유롭고 편견이 적은 사회의 척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