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철학을 왜 해야 하는 걸까?
도대체 중학생인 내가 왜 철학을 해야 하는 걸까? 지은이는 철학하기는 중학생이든 어른이든 타고난 본능 같은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나는 누구일까?”라는 물음은 어린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그것이 철학에서 존재론과 관련한 핵심 질문인 줄 알든 모르든 하는 질문이며, 또 모든 철학자들이 했던 질문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 이는 누구나 철학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지혜’는 ‘지식’과 조금 다른 개념이다. 철학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학문이 아니고 사고이며 사유이다. 물론 철학, 곧 지혜에 대한 탐구는 아주 어려운 사고의 훈련 결과이기 때문에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결국 철학을 한다는 것은 사유하는 것인데, 이 사유도 역사의 선배들이 했던 사유들이 있기에 가능하며, 이것을 열심히 배워야 더 나은 철학이 나온다는 얘기다. 청출어람!
2,700년이 넘는 철학사는 이러한 청출어람의 연속이었다. 철학자들은 아니 인류는 같은 또는 비슷한 질문들은 던지고 또 던졌다. 그러했는데 아직도 인류가 생각하지 못한 질문이 있을까? 도대체 철학이 아직도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지은이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많은 사상가들이 지혜로운 사상을 주장했고 거대한 지식의 산을 쌓았”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전히, 그 누구도, 궁극적인 대답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세상이 아직도 여전히 불의, 불화, 굶주림, 빈곤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정보 홍수 속에서 인간 주체성의 문제, 클론의 등장과 같은 인간 윤리의 문제들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철학은 인류의 영원한 동반자다.
문답으로 엮은 서양철학사
이 책은 한마디로 ‘문답으로 엮은 서양철학사’다. 최초의 철학자라고 부르는 탈레스부터 한 세기 가까이 살았던 버트런드 러셀까지, 그들의 핵심 사상을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꾸몄다. 교과서에서 보았음직한 인물과 사상들은 모두 출연하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얇은 책에 너무 많은 것을 담은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지은이의 입장은 단호하다. 지은이는 이 세상에는 철학자들에 대한 책이 서가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지만, 그 책들을 모조리 읽을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적게 읽을수록 더 좋은 경우도 자주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신의 두꺼운 조각조차도 쉽게 소화할 수 있는 한 입 거리로 잘게 쪼개지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잘게 쪼개는 방식이 바로 문답식이다. 책은 해당 철학자 또는 철학사조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질문으로 던지고 그것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답변하는 식이다. 몇 가지를 보자.
고대 자연철학자들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였음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지은이는 자연철학자들을 다룬 장에서 이것을 질문으로 던지고 나서, “자연철학자들에게 신이나 안락한 생활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지혜의 친구’들은 한 마디로 호기심이 많았고, 어떻게 자연 속에서 다양한 사물이 생성하고 변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을 설명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사람들이 바로 이들, 곧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자들’이었다.”라고 대답한다. 중세의 끝머리 곧, 근대의 입구에서 중세를 회의했던 오컴의 핵심 질문을 “왜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해결하려고 하지?”라는 것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나서 “오컴은 철학과 신학을 날카롭게 구분했다. 온통 비비 꼬여있는 것으로 뭘 하라는 말인가? 왜 원래부터 인간의 오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을 깊이 생각하려고 하는가? 신이 만물 위에 서 있는 가장 위대한 존재라면, 인간은 결코 신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 그의 명제에 따르면 ‘더 적게 들여 할 수 있는 것을 더 많이 들여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간단히 말해서 굳이 복잡한 길을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철학사를 읽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통사적 서술에 담겨있는 철학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있다. 결코 방대한 지식 습득 능력을 과시하는 데 있지 않다. 따라서 철학사가 두꺼운 목침처럼 방대한 지식을 담아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위의 자연철학자들과 오컴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은이가 이 책에서 끝까지 놓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러한 철학사의 ‘흐름’이다. 자연철학이 왜 자연을 중심으로 사고했는가는 종교가 지배하던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100% 이해가 어렵다. 또한 신학과 철학을 구분하는 ‘오컴의 면도날’ 같은 사고도 그가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에 서 있던 프란체스코 수도사였다는 점을 알지 못하면 이해가 어렵다. 이런 흐름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자연철학자들 다음에 오성을 중시한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들이 탄생했고, 오컴 다음에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태동했다는 것을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는 비틀즈 이전과 이후의 대중음악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비틀즈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성철학자들의 발견
고대 그리스에서 델포이의 신탁을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피티아라는 여성이었고, 소크라테스에게 수사학을 가르친 이가 아스파시아라는 여성이었으며, 피타고라스가 죽은 뒤 자신의 아카데미 운영을 아내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 철학 전공자들에겐 상식이라고? 그렇다면 중세에 가장 힘센 수녀원장이었던 힐데가르트와 신비주의자 마그데부르크라는 여성도 알고 있을까? 아우구스티누스, 스콜라철학, 아퀴나스 등 중세 철학을 제대로 꿰고 있는 사람도 잘 들어보지 못한 이름일 것이다.
이 책의 ‘10장 그러나 뭔가 부족하다’는 바로 이러한 여성철학자들을 다루고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철학사를 더듬은 뒤 끝자락에 여성철학자들을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처럼 기존의 철학사 서술이 ‘뭔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그 부족함의 본질은 남성 중심, 여성 소외에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여성철학자들로부터 중세의 힐데가르트와 마그데부르크, 현대의 한나 아렌트와 보부아르의 핵심 사상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철학자들이 철학사에서 소외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남성철학자들에 비해 저작물이 제대로 남겨져 있지 않기 때문(실제로 저작물이 온전히 남겨진 최초의 여성철학자은 중세의 힐데가르트이다)이다.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음미와 재해석, 그리고 역사적 서술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 이유뿐일까? 그렇다면 고대 여성철학자들의 글이 존재했음에도 보존되지 않은 이유, 중세 여성철학자들이 당시 지식 권력의 중심이었던 수도원을 벗어나 철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위대한 철학자로 일컫는 니체와 쇼펜하우어가 여성을 혐오(“그대는 여성들에게 가는가? 그렇다면 회초리를 잊지 말라!” “젊은 여성은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한 자연의 효과”)했던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은이는 이런 상황이 20세기에 들어서 여성들에게 교육이 허락되고 난 뒤에 바뀌었으며, 그 결과 한나 아렌트와 보부아르 같이 뛰어난 여성철학자들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또한 남성과는 다른 여성 존재의 본질 때문에 앞으로 여성철학자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성들은 아이를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 대한 여성의 시선은 처음부터 생명을 이해하는 시선으로 불린다. 남성들에게는 오히려 죽음이 중요하고, 또 죽음 이후의 세계가 문제가 된다. 여성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적 차원 속으로 뛰어드는 대신에, 어떻게 세상에서 생명 그 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한다. 그 동안 모든 문제 가운데 문제가 된 하나가 있다. 도대체 생명에 미래가 있을 수 있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또 어떻게 살면 되는가 하는 것이다. --- p.204
중학생이 물어요 시리즈 소개
독일 Loewe출판사에서 펴낸 《아이들이 물어요Nachgefragt》시리즈의 한국어판이다.《Nachgefragt》시리즈는 철학·종교·정치·경제 등에 대해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기초 지식을 담고 있다. 정확한 지식, 적절한 눈높이, 발랄한 문체로 독일 청소년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시리즈다. 개념원리부터 시사상식까지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꾸민 것이 특징이다. 은유로 가득 찬 삽화도 보는 맛을 더해준다. 양철북에서는 우선 종교, 정치, 경제 편을 출판할 계획이다. 곧 나올《정치가 뭐예요》와《경제가 뭐예요》는 한국의 실정에 맞게 고쳐 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