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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7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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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65쪽 | 148*210*20mm |
ISBN13 | 9788961471060 |
ISBN10 | 89614710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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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이번 주 주제로 선택한 이유는 ‘실존주의’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들어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혼란스런 세상을 헤쳐나가는 내적인 힘을 기르는 데 실존주의 철학이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실존주의는 ‘과정’의 철학이라고들 합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던져진 특별한 의미는 없으며, 우리는 어떠한 의미를 부여받은 존재들이 아니라, 나름의 의미를 스스로 찾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고 하죠. 사르트르는 그것을 ‘기투’와 ‘피투’로 정의합니다.
피투는 세상에 아무런 목적 없이 던져진 개인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피투’라는 말 그대로 스스로 세상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불가역적인 힘으로 던져진 존재들인 것이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간은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목적도 부여받지 않은 존재입니다. 우리 스스로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이야기죠. 즉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러한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기투’라고 합니다. 피투와 반대 되는 의미에서 자기 스스로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기 존재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죠.
‘지식인을 위한 변명’ 역시 이러한 인간이 갖고 있는 ‘모순’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식인 역시 다른 인간들처럼 ‘피투’의 존재로 태어납니다. 그들은 중간계급에 속하거나, 중간계급으로 거듭납니다. 지식인을 낳는 전문가 계급은 지배 계급과 마찬가지로 노동 계급이 생산해 낸 잉여 가치에 의존해 살아갑니다. 노동 계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은 그들을 경제적으로 중간계급에 위치하게 하죠. 그렇다고 그들이 지배 계급과 동등한 권력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분석, 논증, 사유, 과학적 방법 등의 보편적인 ‘방법’과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으로 사람들을 위한 유익함을 창조하는 계급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유익함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용됩니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 계급이 갖고 있는 스스로의 목표(과학적 탐구를 통해 세상의 원리를 탐구하고, 그를 통해 인간을 위한 유익함을 낳는 것)는 지배 계급의 목표(이익)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페라리를 생산하는 노동자가 평생 페라리를 소유할 수 없는 것처럼, 과학자가 만들어낸 창조물도 그 자신의 이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한 것이 될 뿐입니다. 이것을 ‘소외’라고 합니다. 자신의 목표와 자신의 창조물에서 정작 자기자신은 배제되는 것이죠. 그래서 전문가들은 ‘모순’의 존재가 됩니다. 노동 계급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소외’된 존재이며, 지배 계급이 아니면서도 노동 계급이 생산하는 잉여 가치에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 눈 뜬 전문가는 지식인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모순’이 자신이 속한 이 사회 때문이며, 그 바탕에 지배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기 위해 전파하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지식인으로 거듭나는 것이죠. 구조적 모순을 깨달은 지식인은 곧 지배 계급의 ‘보편성=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새로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태생부터 중간계급에 속할 수밖에 없는 피투된 존재로서의 지식인은 나약합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행동 하나하나에 피투된 존재로서의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진정한 ‘객관적 시각’이란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는 계급의 관점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간 계급은 본질적으로 노동계급의 관점을 내면화하기 힘든 존재들입니다. 그동안 배우고 익혀온 다양한 지배 이데올로기들은 예절, 관습, 문화, 지식, 가치 등 지식인의 내면 안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인의 내면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그가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노동 계급의 편에 서는 과정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지식인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성찰해 스스로의 중간계급적 속성, 즉 지배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을 씻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날 때부터 정신에 밴 지배 이데올로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그의 사고와 판단의 기준을 계속 어지럽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노동 계급의 인정을 쉽게 받는 것도 아닙니다. 노동 계급은 기본적으로 지식인을 불신합니다. 지식인이 속한 중간계급의 속성이 지배 계급에게 유리한 작용으로 자신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입니다. 동료인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인들은 스스로의 내면에 지배이데올로기가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한 지배이데올로기는 보편성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에서 찾게 합니다. ‘모든 인류는 생활의 기본적인 요소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라는 원칙이 만들어가야 할 보편적인 원칙이라면, ‘자본주의는 부의 격차를 가져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인류는 유사 이래 가장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라고 말 하는 것이 이미 만들어진 ‘보편성’입니다. ‘만들어져 있는 보편성’은 현재의 체제를 수호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만들어져 있는 보편성’은 지배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덕주의와 이상주의처럼 현실의 모순을 파헤치고 개혁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 태도들도 지배이데올로기를 수호하는 도구들입니다. 사르트르는 도덕주의자들은 알제리의 테러리스트가 행하는 폭력이나 프랑스 제국주의가 저지르는 폭력이나 부당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 폭력이 지향하는 ‘목적’의 정당성이 다르다는 것이죠. 한 쪽이 모든 인류의 자유라는 ‘진정한 보편성’을 추구하는 반면, 한 쪽은 ‘소수의 이익’이 목적이라는 것이죠. 사르트르는 지배이데올로기의 편에서 ‘급진적이지 못한’ 지식인들을 사이비 지식이라고 비판합니다.
어떤 점에서 사르트르는 참으로 냉혹합니다. 그의 기준 앞에서 웬만한 지식인들은 사이비 지식인이기 쉽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나쁘다’ ‘~그래도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같은 말이 사르트르의 시각에서는 모두 지배이데올로기를 수호하는 목적을 위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는 점진적 개선으로는 다른 이들의 목적을, 특정한 소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르트르가 생각하는 진정한 지식인은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객관적 지식을 구성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노동계급을 위한 ‘목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탐색하고, 그 목표를 지배 계급으로부터 지켜내는 수호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 계급의 ‘유기적 지식인(해당 계급 안에서 태어난 지식인)’을 양성해야 합니다. 또한 끊임없는 실천을 통해 관념이 아닌 ‘상황’ 속에서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비판해야 합니다. 이러한 비판은 지배 계급만을 향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동계급 안에서 또다른 지배이데올로기(독재, 개인 우상화..)가 등장하는 것도 경계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식인은 어느 계급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납니다. 스스로 자신의 모순(피투)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고 ‘목적’을 추구(기투)한다는 점에서 지식인이야말로 ‘실존적 존재’들인 것이죠.
자 우리는 과연 얼만큼 실존적 존재들입니까? 사르트르의 글을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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