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그림이 아니야!”
2005년 한국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있었다. 한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의 작품 수백 점을 감정가들이 모두 위작으로 판정했던 것이다. 수집가는 물론 이중섭의 아들까지 감정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지만 최종적으로는 위작으로 판명되었다. 더 기가 막힌 일도 있다. 오래 전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한 점을 두고 작가 자신은 위작이라고 했는데 정작 미술관과 전문 비평가가 진품이라고 감정한 사건이 그것이다. 천경자 화백은 자신이 그린 작품을 스스로 몰라보겠느냐며 항변했고 위조범도 자신이 그린 것이라고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이 작품은 여전히 진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위작 시비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인기가 높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리는 베르메르나 반 고흐 같은 화가의 작품은 심심치 않게 위작 시비에 휘말리곤 한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괴링의 소장품 중에서 발견된 베르메르 위작의 건이다. 작품 입수 경로를 추적한 당국은 메이헤런이라는 네덜란드 화가를 찾아냈다. 그는 적국에 명화를 판 혐의로 체포당했고, 이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사형에 처해질 것이었다. 하지만 메이헤런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냈다. 바로 또 한 점의 베르메르 위작을 그림으로써.
이 소설은 바로 미술품 위조, 그리고 그림을 위조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2차세계대전 중의 파리를 배경으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운명에 휘말려 거장들의 명화들을 위조하게 된 한 젊은 화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위조자의 심리를 파헤친 고품격 아트 픽션
1939년, “현실이 꿈보다 아름다운 유일한 도시” 파리에 한 젊은 미국인 화가 데이비드 핼리팩스가 원대한 꿈을 안고 도착한다. 그는 정체불명의 장학금을 받아 3개월간 괴팍스러운 천재 판크라토프의 아틀리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파리를 찾게 된 것이다. 판크라토프는 모두들 ‘천재’라고 부르는 러시아 이민자 출신의 노화가이지만 정작 그의 그림은 이 세상에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회고전을 위해 한자리에 모아둔 그의 모든 작품이 화재로 인해 모두 타버렸고, 그후로 그는 한 점의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는 것. 핼리팩스는 판크라토프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판크라토프는 핼리팩스를 루브르미술관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앞에 선 판크라토프는 이렇게 말한다. “이게 내 예술이야.”
판크라토프는 천재적인 위조자였던 것이다. 루브르에 걸려 있는 「메두사 호의 뗏목」은 한 미치광이가 제리코의 원작에 총질을 해대어 복구할 수 없이 망가지자 판크라토프가 나서 똑같이 복제해낸 위작이었다. 그는 어떤 눈 밝은 이가 혹여 자신의 작품과 「메두사 호의 뗏목」에서 어떤 유사성을 찾아내기라도 할까봐 스스로 자신의 작품 모두를 불태워버리기까지 했다.
한편, 핼리팩스는 수완 좋은 미술상 기욤 플뢰리와 막역한 사이가 된다. 플뢰리는 핼리팩스가 미술관에 가서 고갱을 모사한 스케치 몇 점을 좋은 값에 팔아줬고, 덕분에 핼리팩스는 장학금이 약속한 3개월 후에도 계속 파리에 머물러 화가로서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느 날, 플뢰리가 핼리팩스의 스케치를 고갱의 진품으로 속이고 팔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들의 우정에 금이 간다. 사실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며 살던 어느 날, 핼리팩스는 프랑스 경찰에게 끌려가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전운이 프랑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터라,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가 소장한 과거 거장들의 명작은 물론, 나치가 퇴폐미술이라 치부해 파괴하고 있는 인상파 이후의 미술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바로 핼리팩스, 판크라토프, 플뢰리를 한 팀으로 한 미술품 위조단을 만드는 것. 판크라토프와 핼리팩스가 과거 거장들의 그림을 위조하면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한다는 평판을 갖고 있는 플뢰리가 그것을 나치에게 주고 대신 인상파, 신인상파의 작품을 얻어낸다는 것이 프랑스 정부의 계획이다. 거절하고 싶어도 고갱의 위작을 만든 전력 때문에 꼼짝없이 프랑스 정부에 협력해야 하는 핼리팩스와 플뢰리.
자신도 알지 못했던 위조자로서의 재능을 발휘하여 핼리팩스는 크라나흐, 베르메르 등 거장의 작품들을 위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핼리팩스는 위조란 단순히 그림을 똑같이 베껴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파리를 배경으로 또 하나의 소리 없는 전투가 벌어진다!
미술품 위조의 기술, 그것이 궁금하다!
사실과 허구가 교묘히 뒤섞인 이 소설은 의혹과 배신, 독특한 캐릭터의 등장인물들, 애정과 집착, 시간과의 다툼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 모든 재료를 갖추고 있지만, 이 소설을 읽는 재미는 비단 치밀하게 짜인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만 있지 않다. 중간중간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것은 바로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품 위조의 기법이 상세하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위조의 성공 여부는 판크라토프가 말하는 것처럼 불과 몇 초 만에 결정이 난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다는 느낌. 그런 일은 작품을 들고 처음 몇 초 사이에 일어나지 않으면 영영 일어나지 않는다네. 그렇게 되면 의혹이 앞서게 돼. 개중에는 그 작품을 정말 갖고 싶기 때문에 본능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진짜 전문가들은 아무리 갖고 싶어도 본능의 경고가 느껴지면 그림을 내려놓고 다른 데로 가버린다네.” (303쪽)
그렇다면 위작이 진품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위조자』에 소개된 몇 가지 방법을 공개한다.
1. 되도록 오래된 재료를 사용한다. 그림의 진위 여부를 가리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바로 캔버스. 갓 직조된 새 캔버스를 낡게 보이게 하려고 구기고 땅바닥에 쓸어 헐게 해봤자 소용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위조하려는 화가와 같은 시대의 무명 화가가 그린 캔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을 경우, 세월의 효과를 가장 내기 쉬운 재료는 리넨이다. 판크라토프와 핼리팩스는 크라나흐를 위조하면서 크라나흐 시대에 무명 화가가 나무판자에 그린 그림을 이용한다. 원래 그려져 있는 그림을 지우고 그 위에 위조하는 것이다.
2. 재료가 발명된 시대를 기억하라! 물감은 과거의 대가들이 그랬듯이 직접 혼합해서 만들어 써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안료가 발명 또는 발견된 시기를 면밀히 알고 있어야 한다. 울트라 마린은 13세기에 처음 쓰였고 프러시안블루는 18세기에, 코발트블루는 19세기 초에 처음 쓰였다. 들라크루아 그림을 위조하는 데 티타늄화이트를 썼다면? 당장 감옥에 끌려가게 될 것이다. 티타늄 화이트는 1930년에나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3. 원작과 비슷한 새로운 작품이 발견된 것처럼 꾸밀 것! 너무나 유명해서 모두가 알고 있는 그림을 위조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다. 위조하려는 화가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되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판크라토프와 핼리팩스가 크라나흐의 「어느 소녀의 초상」을 모티프로 위조했을 때처럼 원작과 위작 사이를 연결 지을 수 있는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좋다.
4. 때와 벌레는 위조자의 친구 일광에 노출된 그림은 색이 바래고 창고에 묵은 그림은 색이 어둡고 음침해진다. 불 피우는 방에 걸려 있던 그림은 짙은 회색을 한 꺼풀 입으며, 어디에 보관되어 있었느냐에 따라 냄새와 때의 색깔이 다르다. 또, 세월을 두고 벌레 먹은 나무판의 모양은 위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되도록 오래된 재료를 쓰는 것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위조의 기본이다.
5. 크랙을 만들자!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라면 다 마른 후에 조심스럽게 돌돌 말아보자. 그러면 오래된 그림이 그런 것처럼 자잘한 금이 갈 것이다. 이걸로는 불충분하다. 가늘게 갈라진 틈 사이에 먼지를 채워 넣자. 명심할 것은 소장되어 있었던 곳을 어디로 할 것이냐에 따라 먼지의 종류도 달라진다는 것. 성당에 보관되어 있었던 그림이라는 이야기를 꾸몄다면 이를 테면 노트르담 같은 오래된 성당 의자와 방석 같은 곳에서 먼지와 때를 긁어오는 것도 좋다.
6. 거장의 습관을 활용하라! 만일 벨라스케스를 위조하려고 한다면, 그가 작업 중에 캔버스에 붓을 닦는 버릇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캔버스 한 귀퉁이에서 발견한 물감 얼룩을 보고 감식안 높고 미술사적 지식이 풍부한 컬렉터라면 오히려 쉽게 속아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위조란 뛰어난 기술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풍부한 지식과 행운도 따라야 하는 것!
위조, 그 한계는 어디일까?
“틀림없지. 우리는 위조자야. 시간만 있으면 우리 셋이서 위조하지 못할 그림이 아마 거의 없을 테지.”
“거의?” 플뢰리가 말했다. “그 경계가 어디죠, 무슈 판크라토프?”
“모나리자의 미소.” 그가 대답했다. “그건 절대 복제될 수 없어. 거기에는 뭔가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느낌이 있거든.” (241쪽)
베르메르를 위조하는 것도 「모나리자」나 마찬가지로 ‘미션 임파서블’이다. 핼리팩스에게 주어진 마지막 커다란 도전은 바로 히틀러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베르메르의 「천문학자」를 위조하는 것(실제 역사에서 히틀러는 이 그림을 소유하는 데 잠깐이나마 성공했다. 전쟁 후 「천문학자」는 프랑스로 돌아왔다).
“판크라토프가 모나리자의 미소에 대해 한 말 기억나나? 위조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했어. 기억나?”
“그래.” 나는 조용히 말했다.
“거기엔 합당한 이유가 있어. 이 세상 것 같지 않다느니 그런 문제와는 관계없는 이유가. 모나리자를 위조할 수 없는 건 그런 짓을 할 만큼 멍청한 인간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야. 너무 유명하니까. 베르메르도 마찬가지야. 그 작품을 위조하려면 베르메르가 되어야 한다고!” (409쪽)
플뢰리는 판크라토프가 말하는 것처럼 모나리자의 미소가 가진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어떤 신비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유명하기 때문에’ 위조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위대한 작품이야말로 가장 위조하기 힘든 것은 아닐까? 핼리팩스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 베르메르의 이 「천문학자」를 위조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기술적인 것도 문제였지만 “이 그림에는 (……) 그 어떤 그림보다도 압도적이고 신비스러운 뭔가”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
“베르메르의 마음속을 무단 침입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죽은 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났다는 사실도 문제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나는 그의 마음속 어두운 방들을 도둑놈처럼 살금살금 돌아다녔다. 이런 짧지만 강렬한 환시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정말로 화가의 천재성을 엿보았는지, 아니면 광기라는 호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435족)
그리고 베르메르를 위조하는 과정에서, 자신 또한 위대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젊은 화가의 절망, 자신 앞에 놓인 베르메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느끼는 왜소함, 그리고 그 위대함을 스친 것 같은 찰나의 느낌, 훌륭한 위조자는 자신을 철저히 감춤으로써만이 성공할 수 있는 모순을 느낀 또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핼리팩스의 갈등 등 위조자의 심리가 섬세하게 펼쳐진다.
“작품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미술품 위조는 주로 범죄라는 이미지와 결부되어 그 범죄 행위의 결과만이 우리에게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미술품 위조라는 행위의 상세한 과정, 위조자의 심리 상태 등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그것이 절정에 이르는 베르메르의 「천문학자」 위조에 주인공이 몰입하는 장면에서는 흡사 주인공의 어깨 너머로 그가 칠하는 색 하나하나, 긋는 선 하나하나를 구경하는 기분이다.” (470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그 상세한 묘사에 있다. 우리는 주인공 핼리팩스의 시선을 통해 마치 직접 파리의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조그만 것도 놓치지 않는 날카로운 화가의 눈을 가진 핼리팩스(혹은 저자 왓킨스) 덕분에 당시 파리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전쟁 당시의 삶은 어떠했는지가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책 첫머리에는 소설에 나오는 명화를 컬러 화보로 수록해 소설 내용의 이해를 도왔다.
‡주인공 핼리팩스가 위조하는 화가들에 관해
대(大)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 독일의 화가이자 판화가이다. 독일 남부에서 태어나 빈에서 수학했지만, 그후 비텐베르크로 옮겨 생애의 대부분을 색슨인 선제후의 궁정화가로 살았다. 그는 수많은 종교화를 비롯하여, 마르틴 루터 등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당대에 가장 위대한 독일인 화가이자 독일어로 된 최초의 신약성서를 위한 목판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부르주아의 일상생활을 담은 실내 풍경을 주로 그렸던 네덜란드 화가이다. 그는 전 생애를 델프트에서 보냈다. 베르메르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저 그가 살던 지방에서만 적당히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는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아마 그가 상대적으로 꽤 적은 양의 그림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그의 아내와 열한 명의 아이들은 그가 죽자 빚에 시달리게 되었다. 사후 2백 년 동안 잊혀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지내다가 1886년, 미술비평가 토레 뷔르거(Thor? B?rger)가 베르메르의 작품 66점을 가지고 펴낸 논문을 계기로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그때 이후 베르메르의 명성은 천문학적으로 높아졌다. 이제 그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최고 화가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빛을 다루는 탁월한 솜씨로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