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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7년 05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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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32쪽 | 396g | 140*226*20mm |
ISBN13 | 9788960900134 |
ISBN10 | 8960900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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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삶은 가면 무도회가 벌어지는 공연장이다. 누구나 세상 속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공적인 사교모임에서 가면은 성숙함과 노련함의 증표가 된다. 진정성을 추구한다면서 가면 없이 맨 얼굴로 돌아다니는 짓은 천박한 짓이나 파렴치한 행위로 주위의 비난을 살 수 있다. 오늘 가면을 벗은 당신의 생얼을 보여주었다면 그건 치부를 보여준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셀카와 SNS 자기선전에 보다 익숙한 젊은 세대는 보다 화려한 가면의 생을 추구한다. 이미지와 실체의 근접성은 사라지고, 이제는 인공적인 캐릭터와 가공의 존재를 중시하는 시대가 되었다.
에밀 아자르, 로만 카체브, 샤탄 보가트, 포스코 시니발디 등 여러 필명으로 진짜 신분을 위장한 채 글을 쓰곤 했던 유대계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는 분명 그런 '가면의 생'에 대해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가면의 효용성은 위장과 예의라고 해두자. 러시아에서 태어나 폴란드에서 자라고 프랑스에서 살아간 '삶의 혼종성', 화려한 외교관 생활, 그리고 할리우드 배우들과의 사적인 만남에서 터득한 통찰력 덕분에 로맹 가리는 가면의 생에 대해 민감한 촉을 지니게 된 것이 분명하다. 이 책『가면의 생』(마음산책, 2007)에서 로맹 가리는 "자기 위장 증세가 있음"이라고 매우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로맹 가리의 작가적 분신으로 두 명이 등장한다. 한 명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화자인 에밀 아자르이고, 다른 한 명은 화자의 외삼촌으로 등장하는 통통 마구트다. 통통 마구트는 에밀 아자르의 '상징적 아버지' 혹은 '문학적 생부'로 간주되는 로맹 가리의 또다른 분신이다.
나는 '쥐'를 뜻하는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로맹 가리의 작품을 사랑한다. 이 책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란 가명으로 1976년에 발표한 세 번째 작품이다. "쓰다가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기에 스물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해 예순살이 넘어서야 완성한, 무려 40년 동안 걸쳐 쓴 소설이다. 따라서 로맹 가리의 작가로서의 정신적 궤적이 담겨져 있어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모자이크 조각으로 이루어진 자화상처럼 파편화된 방식으로 작가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기에 로맹 가리의 다른 작품들을 참조해야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흰 개』(마음산책,2012)와 『자기 앞의 생』(문예출판사, 1999)은 반드시 읽어보도록!
일단 책을 펼치면 "격하고 맹렬한 개들의 쇄도" 운운하기에 문득 로맹 가리의 『흰 개』를 연상시키게 만드는 앙리 미쇼의 글 「빠져나가는 것을 대면하고」가 나오고, 그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익명성과 익명의 세계를 갈망하는 에밀 아자르의 글이 등장한다.
"나는 익명으로 남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익명의 시골 익명의 마을에서 익명의 여자와 익명의 사랑을 나누어 역시 익명의 가족을 이루고 익명의 인물들을 모아 새로운 익명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136쪽)
이처럼 화자가 꿈꾸는 것은 익명성이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닌 거짓말일 수 있다. 화자는 자신의 사적인 정체성과 무관하지만 그래도 인류로서의 우정, 즉 동류 의식을 느낄 수 있는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아웃사이더로서의 정체성 혼란과 광기어린 내적 환상을 드러내는 무의식 독백과 말장난들을 쏟아내면서도, 화자는 동류의식을 느끼고 싶은 생면부지의 이방인 친구를 물색한다. 안전과 자유, 우정과 주체성 사이를 오가는 영원한 진자운동을 에밀 아자르도 결국 피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내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를 줄곧 찾고 있다. 동류 의식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12쪽)
화자인 '나'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작가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에밀 아자르, 폴 파블로비치, 알렉스, 팔레비, 자노 라팽, 미밀, 네네스 등이 그러하다. 가공의 존재인 '에밀 아자르'는 메시아적, 혁명적, 정신분열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작가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름과 말장난으로 점철된 이런 문학적 가면 역시 외부 세계에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로맹 가리식 위장전술의 일부다. 에밀 아자르는 극우 파시즘과 극좌 스탈린주의를 거부한 이데올로기의 경계인이다. 그런 그가 주장하고픈 유일한 이념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휴머니즘'일 뿐이다.
"나는 진짜예요! 속임수가 아니라고! 나는 위장이 아니에요! 나는 고통 받는 인간이에요. 더더욱 고통 받기 위하여, 내 책에, 세상에, 인류에게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해 글을 쓰는 인간이라고요! 내 작품에 관한 한 나로서는 감정도, 가족도 없어요! 중요한 것은 작품뿐이에요!"(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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