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손을 들어주고 그것에 힘을 실어주려 함이 분명한 이 책은 '새로 쓰는 포스트모던의 역사'이다. 전체 12장에 걸쳐 개념 정의에서부터 철학, 건축, 회화,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포스트모던적 양상들을 세밀한 분석과 논증을 통해 비판하고, 진정한 포스트모던의 모습은 무엇이고 또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1장에서는 포스트모던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여러 분야를 조망하면서 포스트모던의 계보학, 적용 범위, 개념 등을 추출해본다. 계보의 측면에서, 리오타르는 자신의 포스트모던적 입장에 가장 가깝다고 느낀 철학자로 단연 아리스토텔레스를 꼽은 반면, 포스트모던적인 소설로 평가되고 있는《장미의 이름》의 저자 움베르토 에코는 고대로까지 소급하는 계보적인 추적이 가져올 결과를 우려하기도 했다.
2장에서는 포스트모던의 출발점인 모던의 개념을 짚어보고, 모던의 질병적 특징이 '획일화'와 '차별화'라고 진단한 후 이것이 포스트모던에 의해 어떻게 비판되고 변용되는지를 알아보며, 결국 모던과 포스트모던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다는 사실을 밝힌다.
3장에서는 '근대- (근대적 모던)-모던-포스트모던' 간의 관계성과 차이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한다. 데카르트의 철학적 구상에서 출발한 근대는 비코, 루소, 그리고 바움가르텐에 의해 근대적 모던의 상을 그린다. 이어 20세기에 와서는 상대성 원리, 불확정성, 불완전성 원리 등 주로 과학이론의 주도로 부분성과 대립, 다원성 인정이라는 모던 상황이 전개된 후, 모든 종류의 총체화에 격렬히 반대하며 다원성을 유지하고 실천하려는 포스트모던 상황으로 들어가게 된다.
건축 분야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4장에서는 오늘날 포스트모던이라는 프로그램이 현실로 존재함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건축과 건축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서라고 말한다. 건축을 통해 포스트모던의 공공성과 다원성의 한 예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5장부터 7장 그리고 이어지는 보론 1∼2에서는 주로 철학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안니 바티모,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장 보드리야르, 로티, 하버마스, 벨머, 로베르트 슈페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철학적 입장들을 통해 포스트모던 이해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6장에서는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을 강력하게 대변하고 있는 리오타르의 견해를 포스트모던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의 불씨를 당긴 그의 저서 《포스트모던의 조건》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포스트모던의 철학적 전망을 시도한다. 7장에서 중심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모던의 특수한 성과들이 20세기 모던에서 구체적으로 빛을 보게 되는 과정이다. 8장에서는 리오타르의 후기 저서 《분쟁》을 소개하고 이 저서가 지닌 사상적 예리함과 더불어 그것의 문제성도 지적하고 있다.
9장에서는 '이성'의 문제를 둘러싸고 현재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무엇인지 밝혀볼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한가운데는 항상 '이성'에 관한 문제가 놓여 있다. 즉 이성을 중심으로 합리성과 다원성이 어떻게 결합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벨쉬는 이 논쟁을 이성에 적대적인 자와, 단 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이성을 옹호하는 자 간의 다툼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즉 진정한 과제는 이성을 다르게 사유하는 것, 다원성과 결합할 수 있는 이성 형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 방법의 하나가 '가로지르기 이성'이다.
10장에서는 이 문제들의 해결 과정에서 모범이 될 만한 몇 가지 전통적 사례들을 아리스토텔레스, 파스칼, 칸트 등의 철학적 입장을 빌려 보여준다. 이어 11장과 12장에서는 '가로지르기 이성'을 자세히 소개하고 포스트모던의 본질적 특성들을 다시 요약한다. 동시에 포스트모던은 결코 임의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재차 강조된다.
4. 포스트모던이 대체 무엇이었나?
1980년대 말 그리고 1900년대 전반, 문학과 예술을 중심으로 국내 학계는 포스트모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 휩싸였다. 서구에서 시작된 이 논쟁이 국내에서 불붙기 시작하면서 포스트모던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명확히 밝히려는 학자들의 노력도 있었고 그 구상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분명한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언제부터인가 중단되었고 더 이상의 학문적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철학적 논의는 접어둔 채 문예이론을 통해서만 편식을 취한 탓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해는 지나치게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혀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그러한 논의가 있었던가 라는 과거의 물음만이 가끔씩 기억을 일깨워줄 뿐인 듯하다. "포스트모던이 대체 무엇이었나?"
하지만 같은 시기인 1980년대 중반 독일에서는 이 개념의 정확한 의미와 철학적 구상의 의도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었다. 위르겐 하버마쉬, 하인리히 클로츠, 알브레히트 벨머, 로베르트 슈페만, 페터 슬로터다이크 그리고 이 책의 저자 볼프강 벨쉬가 그 논쟁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철학자들이다.
이러한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벨쉬는 시종일관 포스트모던은 모던을 긍정적으로 확장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그는 모던이라는 개념을 데카르트적 사유에 근원을 두고 있는 서구의 사상 경향과 학문 방식, 생활 방식, 가치관, 사회 형태 등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며, 그러한 모던이 오늘날 보여주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징과 변화를 포스트모던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곧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흥청거리는 유원지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라 참된 대립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며, 소비문화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라 현실의 다양성에 관심을 갖는 포스트모더니즘이며, 문예저널리즘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라 생활세계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포스트모더니즘에 씌워진 진부한 오해의 역사를 다시 쓰다
포스트모더니즘 : 모던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반모던적 문화운동으로서, 해체 일탈 환상 무규범 무형식 임의성 잡다함 파편화를 추구하며, 이성을 배척하여 비합리적이고 감각적이며 주관적인 세계를 그림.
많은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렇게 이해한다. 이렇게 이해된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 우리의 삶을 비롯하여 학문, 예술 여러 분야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그리고 그 영향력만큼 포스트모더니즘의 실체와 성격 규정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 포스트모던의 진정한 모습인가, 포스트모던은 과연 반모던인가, 아니면 실체 없는 '유령'에 불과한가. 포스트모던적 현상은 이제 사라졌는가, 아니면 아직도 계속될 것인가.
"포스트모던에 관한 최고의 입문서"로 평가되는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 맞닿아 있다. 모던의 확장이라는 견지에서 포스트모던의 입장을 가장 철저하게 옹호하면서 단호하며 설득력 있는 논증을 전개하는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볼프강 벨쉬는 이 책에서 '다원성'이라는 열쇠를 통해, 포스트모던에 씌어진 진부한 오해를 풀고 그것의 실체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 있다.
1987년 초판 출간 후 1997년 5판을 선보인 이 책은 포스트모던에 대해 가장 내실 있고 명확한 논증을 한 명저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 개념에 대해 알고 싶거나 전문적으로 포스트모던 이론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번역서가 없어서 독일어 원서에 의존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제 이 책의 출간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왜 모더니즘(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라 모던(또는 포스트모던)인가
그렇다면 포스트모던의 입장에 선 저자는 포스트모던의 실체를 어떻게 파악하는가. 저자는 이제 '재'와 '불'의 차이를 구분할 때라고 말한다. 즉 왜곡된 기형에 불과한 사이비 포스트모던과 '참된' 포스트모던을 구분해내는 것이 과제이다. 참된 포스트모던을 찾기 위해 먼저 포스트모더니티가 담고 있는 내실 자체를 비판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위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혼잡한' 포스트모더니즘과 '엄밀한' 포스트모더니즘을 구별하는 것. 혼잡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라캉과 데리다를 함께 끓여 만든 학문적 만병통치약"에서부터 최신 유행의 세례를 받은 것들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형태로 임의적이고 변덕스럽게 등장한 마구잡이 포스트모더니즘들로, 이들이 현재 커다란 인기를 누리며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단호하게 지적한다. 또한 이러한 혼잡한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해 제멋대로 펜대를 휘두르는 문예저널리즘이 유포해온 독단적인 행위를 가차없이 공격한다. 엄밀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철저하고 효율적인 것이지, 모든 것을 뒤죽박죽 섞어버리는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포스트모던 논의를 위해 저자는 먼저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는 다원성이다. 다원성은 흔히 말하는 피상적인 다채로움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포스트모던적 다원성이란 통상적인 의미의 다원주의보다 훨씬 심오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개념이다. 즉 무관심성, 무일관성, 무차별성, 임의성 등의 갖가지 형식을 통해 또 하나의 획일화를 유도하는 다원주의와는 구분되는 내실있는 다원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과 합리성, 전체성과의 갈등과 대립상황을 거쳐 나온 다원성만이 참된 포스트모던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본다.
두 번째로 벨쉬는 지금까지 진행되어왔던 그릇된 담론에 경고를 보낸다. 주로 문예저널리즘적으로만 포스트모던 담론을 진행시키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오류로, 오늘날의 상황을 무차별화의 상황이라고 진단하는 것과 포스트모던을 일종의 망상이라고 규정하는 비판이다. 이들은 포스트모던이 임의성을 옹호하는 입장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는 이 책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련된 것으로, 포스트모던과 모던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은 결코 탈모던이나 반모던이 아니다. 이 책의 제목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적이라는 것은 모던이 현재 실현되는 형식을 표현할 뿐이다. 우리의 모던은 포스트모던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즉 우리는 여전히 모던 안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충실하게 모던 속에 사는가는 우리가 포스트모던적인 것을 얼마나 실현하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