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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6년 12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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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30쪽 | 452g | 148*210*30mm |
ISBN13 | 9788984312067 |
ISBN10 | 8984312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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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 2024년 04월 30일
64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책을 잡으면 의도적으로 글쓴이의 약력을 거르고 시작한다. 다 읽은 후에야 약력을 짚어보는데 선입견 없이 글을 마주하려는 내 나름의 독서법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읽는 도중에 글쓴이의 약력을 찾아 읽었다.
혹은 신작로처럼 곧고 툭 트인 삶도 있겠으나, 우리네 대다수의 삶은 오르막 내리막에 모롱이 모롱이를 감아드는 굴곡진 여정이 아니던가? 그 모롱이들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런저런 회의며 갈등들은 언제나 우리의 발목을 붙들어 주저앉히려 들고, 그럴 때면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 간절하게 손을 내밀게 된다. 이 책은 고맙게도 그 손길 하나하나를 마주잡아 걱정 말라고, 이 모롱이만 돌면 길이 다시 나오니 힘내라고 다독이는 한편, 멈춰진 발걸음은 어떻게 다시 내딛으면 되는지를 조근조근 일러주고 있다. 그런데 그 어조가 지나치다싶게 확신에 차있어 글쓴이의 말대로만 하면 아무리 깊은 회의나 갈등도 가뿐히 떨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글쓴이는 분명 정신과의사나 심리학자가 아닌 소설가인데 어떻게 개개인의 삶의 문제에 이렇게 확연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 궁금해졌고 그 궁금함이 책을 읽는 도중에 약력을 짚어보게 한 것이다.
글쓴이 김형경은 사진 속의 고운 자태에도 불구하고 살아온 시간의 길이가 마침 나랑 비슷했다. 남자들의 전유물 같은 어휘로 표현하자면 불혹을 훌쩍 넘긴 것이다. 소설을 쓴 세월도 스무 다섯 해에 접어든 것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소설쓰기는 사람들의 사는 속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다.(문학에는 문외한인 내식의 정의이니 딴죽 걸지 않길 바란다.) 이 두 세월을 합쳐놓고 보자면 글쓴이는 이미 이순의 경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개 들던 의문을 접고 다시 겸손하게 책을 읽어 나갔다.
언급되고 있는 심리학 용어들이나 이론들은 대학 때 교양강좌로 들은 심리학개론에서 크게 벗어난 것들이 아니어서 큰 부담 없이 새길만했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들도 많았다. 사랑과 결혼 이별에 덧씌워져 있는 환상들을 걷어내라는 새삼스런 충고는 행간의 간곡함 덕분에 귀에 거슬리지 않았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회의와 갈등들이 실은 이미 자기 속에 내재되어 있던 것들로 지금 잠시 고개를 든 것이니 잘 달래서 돌려보내는 게 좋다는 충고는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 된다는 식이 아니어서 한결 공감이 갔다. 인간을 성적 욕망과 공격성을 타고난 존재로 규정짓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 기초하여 상담하고 있음을 곳곳에 밝혀둔 만큼 딴죽 걸 생각은 없으나 갈등이나 회의의 연원을 유아기의 결핍 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만 찾는 단선적 진단방식이나, 삶의 모든 방정식을 풀 수 있는 공식인양 오로지 자아강화를 그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에는 다소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글쓴이가 전문 정신과의사나 심리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행간에서 읽히는 아픈 이들을 향한 따스한 마음 씀씀이에, 정혜신의 헌사에서 보여지 듯 관념적인 틀에 갇혀 자칫 생활인과는 유리될 수도 있는 정신분석학 내지 심리학을 우리 곁으로 불러내준 공로에 더 무게를 두고 읽는 게 옳다고 본다. 글쓴이는 자신의 유년시절의 고통도 잠시 소개하는데 이 대목은 이미 저명한 소설가인 그녀가 왜 이런 위험하고도 지난한 글쓰기에 나섰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 같은 이들을 위한 친절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 진다. 또한 독자들에게 초등학생의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으로 하숙집으로 내몰려본 이라면, 온통 욕으로 도배한 일기장을 담임선생님께 제출하는 절규의 시간을 지나온 이라면 삶의 오르막에서 숨 가쁘게 내민 손들, 모롱이를 만나 막막하게 내민 손들에 그 어떤 가식도 없이 다가섰을 것이란 믿음을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네들 속의 아픈 아이들을 안아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걸음마를 가르쳐 스스로 고통 속에서 걸어 나오게 하고픈 글쓴이의 따스한 열정은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바로 이 열정이 이런저런 관계를 속에서 상처 난 이들이 마음을 붙드는 것이고, 이 글을 읽어나가게 하는 동력이리라.
책을 덮는데, 이십대 미혼의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쓴 일기 한 구절이 생각났다. “이제 나는 투정의 뜰에서 쫓겨난 것이다.” 이 세상에 더 이상은 내 투정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어머니를 잃은 나의 가장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슬픔이었다. 내가 아닌 내 속의 아이가 엄마를 잃고 오래오래 나를 붙들고 설워하던 시간, 나의 남은 이십대는 그 아이에게 발목을 붙들려 옴짝달싹도 못한 채 막막하게 흘러야 했다. 그 때 이런 글을 만났더라면 좀 위안이 되었을까?
자기와 사랑에 빠지라고, 투정의 뜰에서 쫓겨나기 전에 차라리 스스로 걸어 나오라고, 욕망은 본질이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니 차라리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거듭거듭 당부하는 글쓴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귀 어두운 사람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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