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럽 사람들은 한국인을 어떻게 보았나
임진왜란(1592년) 이후 한국이 유럽에 알려지면서 유럽은 한국에 대해 천상의 낙원, 야만의 민족이 사는 미개한 나라 등 여러 가지 상상과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17세기 중기부터 1910년까지 약 300년 동안 유럽인들이 상상하고 만들어낸 한국을 다룬《왜곡된 한국 외로운 한국―300년 동안 유럽이 본 한국》이 책세상에서 출간되었다. 기존의 책들이 주로 근대 제국주의 시기, 특히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의 이미지만을 미시적으로 다루었다면, 이 책은 권력이 여러 개념과 패러다임에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푸코Michel Foucault의 담론 이론을 적용하여 300여 년에 걸쳐 형성된 인식틀인 유럽의 ‘한국관’을 통시적으로 고찰한다. 문학과 문화학, 역사학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구해온 저자는 동양에 대한 서구 중심적인 재현의 폭력성을 경고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처럼 한국에 대한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을 사회, 역사, 문화, 정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한국의 섬사람. John Macleod, Voyage of his Maj(1818)
이 책은 유럽인에 의해 전유되고 날조된 한국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이며 역사적 ? 담론 분석적 연구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그동안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분야의 사료를 수집하고 이를 텍스트로 삼아 한국관을 형성한 여러 담론을 분석하고, 이미지에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유럽 중심적인 폭력적 담론과 권력을 파헤친다. 이번 연구를 위해 저자는 유럽 현지에서 많은 양의 이미지를 발굴했는데, 이 책은 우리에 대한 서구의 시선과 이미지를 총망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현재에도 필요한 이유는 유럽인들의 ‘한국관’이 우리의 자기 비하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역사관을 이루는 본질이 되었고, 우리가 타자를 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자화상을 주체적 관점에서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2. 상상과 허구에 근거한 초기의 한국관
한국을 동양의 보물섬으로 신비화하거나 야만의 나라로 폄하하는 것은 유럽인의 이국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을 불러일으킨 동시에 근대 문명의 선구자로서의 자긍심과 우월감을 고취시키는 데 기여한다. 유럽 최초의 체계적인 한국 관련 보고서인《새 중국 전도Novus Atlas Sinensis》(1655)에서 마르티노 마르티니Martino Martini는 한국을 어둡고 고요한 ‘보물섬’ 으로 묘사하고, 유럽인 최초의 한국 체험기인《하멜 표류기》(1668)에서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은 한국을 방탕한 성 문화와 미신, 무지가 지배하는 야만의 세계로 그린다. 이처럼 한국이 유럽에 처음으로 소개된 17세기의 유럽인들은 대부분 상상과 허구에 근거한 한국관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이미지는 유럽인들의 욕망이 투영된 것으로 유럽 중심적인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 타자적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들은 ‘문명 대 야만’이라는 이분법으로 문명, 문화, 과학, 기독교 등으로 구성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고, 나아가 당시 전 지구적으로 뻗어나가고 있던 팽창적 제국주의의 정당성을 강조할 수 있었다.
3. 허구적 상상력에서 객관적 담론으로
상상과 욕망의 시선이 지배적이었던 초기의 한국관은 서구의 학문과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객관적’으로 관찰됨으로써 하나의 담론으로 전환된다. 이전의 한국관이 문명 대 야만, 기독교 대 이교(異敎) 등 이원적이며 대립적인 인식에 근거했다면, 이 시기 한국관은 객관적인 근거 위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관찰한다. 이를 위해 유럽인들은 한국의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후 허구에 근거한 한국에 대한 초기 담론들을 과학적으로 검증된 객관적 담론으로 확대 재생산한다. 이렇게 관찰과 분석에 의거한 한국관은 객관적 지식으로서 권위를 발휘하게 된다. 젓가락과 칼을 ‘식사용 수저’[J. D. E. Schmeltz, Internationales Arichiv fur Ethnographie (1891)]로 설명하거나 세숫대야와 요강 등을 식기로 이해하면서, 그들은 문화적 맥락을 배제함으로써 파악되지 않은 여백을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채운다.
한편 이 시기에 유럽에 널리 퍼진 인종학과 인류학은 유럽 인종과 문화의 우월성을 ‘객관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 가는 구리철사로 두상의 크기를 재어 한국인과 동양인을 유형화하고, 한국인의 온돌 문화에서 고집 세고 게으른 민족성의 원인을 찾는 ‘객관적’ 담론의 장에서 한국은 분석과 관찰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또한 유럽의 열강들은 자신들의 국력을 과시하고 자국민의 호기심을 끌기 위해 식민지 박람회(1885)를 개최했다. 여기서 유럽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인종 전시회였다. 이곳에 ‘전시’된 이들은 자신의 역사적, 문화적 특수성을 완전히 상실한 비서구 인종 전체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재현된다. 여기에는 서구 중심적 시선이 만들어낸 욕망의 구조, 즉 관찰자로서의 유럽인들의 은폐된 ‘권력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4. 식민주의로 발전되는 유럽의 욕망
19세기에는 한국에 대한 다양한 지식의 축적과 학문적 권력의 집중을 토대로 다양한 담론이 등장한다. 특히 지식과 권력 그리고 유럽의 팽창주의 정책이 서로 유착하게 되면서 ‘식민주의’가 가시화된다. 식민주의 담론을 구성하는 주요 인식소 중 하나는 바로 인종주의적 우월성과 이에 근거한 사회 다윈주의적인 약육강식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라 야만적이고 미개한 민족을 문명의 빛으로 인도한다는 식민주의 정책은 정당성을 획득한다.
유럽인들은 ‘장옷을 입은 여자’에서는 폐쇄적이며 고립된 이미지를, 원시적 도구를 사용하는 ‘지게를 진 남자’에서는 미개한 이미지를 재현한다. 또한 ‘젖가슴을 드러낸 여자’를 통해 문화적 원시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이국에 대한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그들은 한국의 미개함과 후진성의 원인을 정치 · 사회 제도와 사회 간접 시설의 후진성, 정체된 역사의식 등으로 분석한다. 예컨대 그들이 욕망하고 신비화한 한국의 풍부한 지하자원은 한국을 폄하하고 한국의 미개를 강조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인종적으로 우월하고 문명화된 유럽만이 천혜의 자연 조건 속에서도 이를 개발하지 못하고 가난한 미개인으로 사는 한국인을 문명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주체로 등장하고, 한국을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어 개척하는 일은 ‘문명화된 유럽인’의 소명으로 정당화된다.
5. 한국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담론의 정치권력화
세기 전환기의 한국관은 담론 자체로만 머문 것이 아니라 군대, 관료 조직 및 국가 제도와 함께 새로운 정치적 권력으로 등장한다. 동시에 국가 제도 등 비담론적 요소는 야만 또는 발전과 정체라는 광범위한 담론적 요소와 어우러져 ‘연합 담론’이 형성되면서 더욱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다.
가령 한국에 개방 압력을 넣었던 독일인 오페르트Ernst Jacob Oppert는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열악한 군사력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식민지화를 노골적으로 주장한다(“독일이 식민지를 가질 필요성이 있다면 적도 근처에서 식민지를 찾기보다는 한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한반도를 점령하고 지배하는 데 필요한 것은 단지 소규모의 군대와 몇 척의 전함일 뿐이다”). 물리적 힘의 우위를 드러내는 담론은 곧 한국을 향한 노골적인 식민주의 담론으로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한국은 자신을 방어할 최소한의 힘도 보유하지 못하는 ‘힘없는 지렁이’[Ueberall, Illustrierte Zeitschrift fuer Arme und Marine(1904), 301쪽]로 전락한다.
17세기에 생겨나 1910년까지 영향을 미친 한국에 대한 담론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합법화하고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결말에 도달한다(“불쌍한 한국인은 일본인에 의해서만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은 복지와 문화의 발전이라는 혜택을 일본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독립은 결코 획득하지 못할 것이다”). 폐쇄와 쇄국, 억압적인 제도, 가난과 게으름, 타락한 윤리 의식, 미신과 우상 숭배, 풍부한 자원, 부패한 제도와 탐관오리, 무기력한 군사력 등 300년에 걸쳐 생성된 담론의 언술들은 국권이 피탈된 20세기 초 동아시아에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6.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을 넘어서
유럽인들은 한국인의 민족성과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풍속 등 한국에 관한 거의 모든 면을 유럽인의 관점에서 재현하고 왜곡했으며 심지어 조작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형성된 한국관은 이중적인 모습을 띤다. 먼저 한국관이 유럽적 권력과 담론으로서 유럽인이 발명, 상상, 조작, 왜곡한 이미지의 묶음이며 한국에 대해 유럽인이 사유하는 인식의 틀과 방법이라면,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실재하는 우리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 되었다.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중심적인 한국관을 수용했고 이로써 우리 스스로를 타자화했다. 이는 현재 우리가 외국인을 대할 때 그들의 피부 색깔과 출신국의 빈부 정도에 따라 현저히 이중적,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데서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유럽인들이 만든 거울 속의 일그러진 모습을 그대로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내재화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고, 한편으로는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북한 주민이나 외국인 이주 노동자 등 제3세계 국가와 국민에게서 우월감을 드러내는 우리의 이중적 모습을 비판적으로 뒤돌아보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