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사상, 예술, 풍류를 아우른 조선의 사람과 땅, 그 시대의 문화 공간에 대한 이야기 - 특징1
16세기의 이름난 문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집은 도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분천(汾川) 강가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이황(李滉)이 우리집 산이라 한 청량산(淸凉山)이 바라다 보인다. 그런데 그 집 앞에 소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시야를 가려 청량산이 온전하게 보이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소나무를 베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현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소나무가 있는 곳에 작은 집을 짓고 그곳에서 청량산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망령된 생각을 막는다는 뜻으로 두망대(杜妄臺)라 이름하였다. 이처럼 아름다운 산과 물에 어울려 서 있는 아담한 집과 누정, 그리고 사찰 등 조선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도처의 문화 공간에는 훨씬 더 깊고 넓으며 매혹적인 문학, 사상, 예술, 풍류가 살아 숨신다. 아름다운 땅에 그보다 더욱 아름다운 사람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태평성세와 그 균열’, ‘귀거래와 안분’, ‘나아감과 물러남’, ‘내가 좋아 사는 삶’ 등의 책별 부제가 연상하는 것처럼 《조선의 문화 공간》은 시대와 환경, 처지에 따라 무척 다양한 삶의 방식을 생생한 서사시로 격조있는 풍경화로 담아낸다. 태평을 구가하던 시절, 도성 안이나 근기의 명가들은 원림과 가산을 경영하며 집안에 산수를 끌어들였다. 물을 즐기고자 강가에 따로 정자를 지어 시회를 즐겼다. 귀거래 한 사대부는 강호로 물러나 사는 맛, 안분하는 삶을 글로 지어 세상에 고향을 이름나게 하였다. 시대 격랑을 만나 유배지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조차 그들의 글로 인해 황량한 땅이 빛나게 되었다. 어떤 선비들은 벼슬길에 나가서 출세하기보다는 물러나 강학과 절조, 이념의 공간을 만들었다. 산과 물은 근엄한 유학자들에게 수양의 공간이지만, 예술과 풍류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산과 물을 배경으로 시와 노래를 지어 부르고 그림을 그렸다.
조선의 문인들은 대개 정치가이면서 사상가이고, 또 시인이기도 하였다. 때로는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고, 때로는 은둔하며 심신을 수양하고 강학에 몰두하며 이념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더욱이 이들의 문학적 재능은 뛰어나 그들의 붓끝으로 조선의 산하가 그려질 수 있었다. 《조선의 문화 공간》은 문학, 사상, 예술, 풍류를 아우른 조선의 사람과 땅, 그 시대의 문화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선’이라는 시대와 공간을 풍미한 조선 사대부 87인의 생애를 읽는다 - 특징2
《조선의 문화 공간》은 개국, 태평성대, 유배, 은둔, 강학 등 새로운 도전과 좌절, 꿈과 절망의 소용돌이를 살며 ‘조선’이라는 시대와 공간을 만들어낸 조선의 사대부, 조선의 문화인들의 생애에 대한 특별하고 생생한 대서사시이다. 16세기 같은 시기를 살았으면서도 모두 조선의 대표 선비로 꼽히는 조식(曺植), 이황(李滉), 이이(李珥), 서경덕(徐敬德). 평생 학문을 익히던 지리산, 청량산, 고산, 화담은 조선 학문을 상징하는 성지이다. 이들보다 조금 앞선 시기를 살았던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 김안국(金安國) 등의 젊은 선비들은 강학과 절조로 후세에 영원히 기려진다. 18세기의 주인공은 실학자들이다. 홍대용(洪大容), 박지원(朴趾源), 정약용(丁若鏞), 서유구(徐有?)는 각자의 처지에서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불우했지만 살아서 명예를 누린 자들보다 죽은 후에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개국에서부터 망국으로 치닫는 19세기까지 조선 500년을 풍미한 조선의 사대부 87인의 전기적 초상이 그들이 마련한 아름다운 문화공간을 무대로 하여 저자의 깊고 세심한 문체를 통해 펼쳐진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인물 평전이 출판되었지만, 한 시대에 같이 살았던 여러 인물에 대해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양하게 평한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에서는 87인의 주인공과 함께 각자의 환경과 처지에서 교우하고 살아간 1,872인이 함께 소개된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깊고 넓으며 매혹적인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가, 조선의 문화인을 만나러 간다.
아름다운 사람과 글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조선의 문화 공간 - 특징3
산수의 아름다움은 절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있어 산과 물은 이름이 나고 글이 있어 더욱 아름다워진다. 이름난 사람과 아름다운 글이 있으면 산과 물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심지어 글은 이미 사라진 산과 물, 공간을 살릴 수도 있다. 조선시대 서울의 대표적인 유상공간의 하나였던 곳이 인왕산 자락의 옥류동(玉流洞)이다. 그곳에서 살던 張混은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니,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나는 법이라 하였다. 지금 인왕산 자락의 옥류동은 주택가로 변해 현대인의 기억에는 그곳에 아름다운 개울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혼이 예언하였듯이 옥류동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아름다운 그의 글을 통하여 지금도 200여 년 전 옥류동의 아름다움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장혼은 아름다움이 절로 존재하지 않고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고 하였으니, 사람이 남긴 아름다운 글이 있기에 옥류동이 당시에 드러날 수 있었고 지금에도 상상 속에 드러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장혼의 글을 알고 옥류동이 그처럼 아름다웠다는 것을 기억하는 한 옥류동은 살아날 수 있다. 이는 마치 아름다운 청계천에 대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아스팔트 아래에 있던 청계천이 살아나게 되었던 것과 같다.
“조선후기의 위항시인 장혼(張混)이 <옥계아집첩의 서문(玉溪雅集帖序)>에서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美不自美, 因人而彰).”라 하였다. 아무리 아름다운 산과 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없고 뛰어난 인물을 만나고 또 그들이 남긴 글이 있어야 세상에 이름을 알릴 수 있다. 조선 중기의 문인 소세양(蘇世讓)은 송순(宋純)의 아름다운 정자 면앙정(?仰亭)의 현판에서 이렇게 반문하였다. 산과 물은 천지간의 무정한 물건이므로 반드시 사람을 만나 드러나게 된다고 하면서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이나 황주(黃州)의 적벽(赤壁)이 왕희지(王羲之)와 소동파(蘇東坡)의 붓이 없었더라면 거칠고 한산하며 적막한 물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이름을 드리울 수 있었겠는가? 과연 그러하다.” - 머리말 중에서
와유(臥遊)하며 마음에 상상의 정원을 꾸미자 - 메시지
“이 책은 관광(觀光)을 위한 것이다. 관광은 빛을 본다는 뜻이다. 빛은 문명이다. 문명을 보기 위해서 눈과 다리만 가서는 되지 않는다. 마음이 따라가야 한다. 마음은 글에 있다. 옛사람이 사랑한 땅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그 빛을 보아야 한다. 흔적조차 없는 인왕산 아래의 주택가에서 인왕산에 대한 장혼의 글을 읽고,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압구정(狎鷗亭)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옛사람이 남긴 빛을 보기 바란다. 아름다운 산수를 그린 글을 읽으면 그곳에 가서 놀고 싶은 마음이 들고, 지금 이미 사라진 곳이라면 다시 살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또 그처럼 살고 싶은 마음에 상상의 정원을 꾸밀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 조상들이 사랑한 삶에 대한 기억의 끈을 현대인들이 놓지 않기를 바란다.” - 머리말 중에서
진정한 관광은 문명을 보는 것이다. 문명은 옛사람이 살던 집이나 노닐던 산수에 있는 것은 아니다. 땅과 집에 의미를 부여한 글을 함께 읽어야 문명을 볼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땅에 가서 옛글을 나란히 읽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조선의 문화 공간》을 가지고 방안에서 글을 읽고 누워서 노닐 수도 있다. 이를 옛사람들은 와유라 하였다. 아름다운 그림을 걸어놓고 대리만족을 한다는 말에서 유래하는데 옛글을 읽으면서 산수 유람을 대신하였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와유를 위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도시에서 물러나 아름다운 산수 자연에서 살고자 한다. 그러나 늘 산수간에 살 수는 없기에 부지런히 대자연을 찾아가 산에 오르고 물에 임하는 것이다. 현대인보다야 옛사람이 이름난 산과 물을 찾을 기회가 잦았겠지만, 그들 역시 대부분 벼슬에 매인 신세인지라 늘 산속에 들어가 있거나 물가에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산수를 찾아 한때의 흥겨움을 누리고, 그 추억이 사라질까 염려하여 시로 그 흥감을 표현하고 글로 자세한 여정을 기록하였다. 현대인들이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고 하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것도, 옛 사람들의 기행시와 기행문이 문명의 도구로 탈바꿈한 결과이다. 그러나 직접 대자연으로 달려가 산과 물을 즐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마음 뿐, 시간의 여유를 낼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늘 전원주택을 구하여 뜰에 꽃나무를 심고 텃밭에 채소를 키우는 생활을 꿈꾸면서도, 생활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어 아파트에 살면서 화초를 키우는 것으로 만족한다. 마찬가지로 선인들도 이렇게 대자연의 일부를 자신의 집 안으로 끌어들여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