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다.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끊임없는 선택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 현대사는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방대한 자료, 관점의 민감함, 당대의 인물과 사건의 평가에 대한 부담, 그리고 그 너머에 제대로 된 현대사를 읽히게 할 수 없었던 권력집단의 부당성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청산되어야 할 역사의 잔재가 버젓이 우리 사회를 배회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는 이렇게 방치되거나 왜곡된 현대사의 공백을 본격적으로 채워주는 최초의 발검음이 될 것이다.
* [한국 현대사 산책]은 어떤 책인가?
'현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다.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끊임없는 선택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 현대사는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방대한 자료, 관점의 민감함, 당대의 인물과 사건의 평가에 대한 부담, 그리고 그 너머에 제대로 된 현대사를 읽히게 할 수 없었던 권력집단의 부당성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마땅히 극복되어야 할 역사의 잔재가 버젓이 우리 사회를 배회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이렇게 방치되거나 왜곡된 현대사의 공백을 본격적으로 채워주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10여 년에 걸친 자료 수집, 1만여 개의 주제별 파일을 통해 집필한 [한국 현대사 산책]은 정치·외교·경제·사회·스포츠·대중문화·언론·학생운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주제를 아우르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저자 나름의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참여의 마당을 제공하고 있다. 그 규모의 방대함 등에서 이 시리즈는 한국 현대사 분야의 독보적인 시리즈이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총 18권으로,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나눠 각 시대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 1940년대편: 8·15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전2권, 2004년 4월)
- 1950년대편: 6·25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전3권, 2004년 7월)
- 1960년대편: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전3권, 2004년 9월)
- 1970년대편: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전3권, 2002년 11월)
- 1980년대편: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전4권, 2003년 5월)
- 1990년대편: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 (전3권, 2006년 6월)
*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전3권)
- 벌써 90년대를 말하는가?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은 모두 3권으로,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에 이르기까지 90년대 한국 사회의 이모저모를 살피고 있다. 여기서 독자들은 분명 의아심을 가질 것이다. '벌써 90년대를 다뤄도 되는 것인가?' 하고. 이에 관해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젊은 학생들에게 슬그머니 물어보시라. 100년 전 사건은 알아도 10년 전 사건은 모른다. 100년 전 사건은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밑줄 그어가며 외우지만, 10년 전은 시험에도 안 나오고 읽을 만한 책도 없다. 왜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는가? 그게 바로 전문주의의 함정이다. 100년 전보다는 10년 전을 알 때에 이 세상에 대한 이해가 선명해지는 경우가 아주 많다. 10년 전 역사에 대한 이해는 대단히 실용적이고 유익하다. 자신의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해 보겠다는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위험할 것도 없다. 자료의 선별이야 어차피 100년 후에 해도 마찬가지다. 너무 겁먹지 말고 같이 산책에 나서볼 걸 제안하고 싶다. 크게 얻는 게 있으리라 믿는다."
- '이념의 시대'에서 '소비의 시대'로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고,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공식적으로 통일을 선포하였다. 미국과 소련의 지도하에 세계가 양분돼 싸움을 벌이는 '이념의 시대'는 90년대의 개막과 함께 안녕을 고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민주화 투사 김영삼이 1990년 1월 22일 그가 평생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세력과 손을 잡고 살을 섞음으로써 역사의 자연스러운 발전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인 결단에 의해 '이념의 시대'가 몰락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90년대는 '문화의 시대'라고 했다. 그러나 그 문화는 전통적인 의미의 문화가 아니라, 시장논리의 지배를 받는 소비문화였다. 90년대는 '소비의 시대'였다. 절제 없는 소비였다. 허세가 난무했다. 그건 지도층까지 지배한 시대정신이었다. 이른바 'IMF 환란'은 그 틈을 파고들었고, 한국 사회는 한동안 통곡하고 신음했다. 그런 소비 이데올로기는 정치 이데올로기보다 더 강하고 끈질긴 것이어서 'IMF 환란'이 표면적으로 극복되는 조짐을 보이기 무섭게 다시 살아났고 이후 2000년대까지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기본 문법이 되었다.
-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
1990년 1월 22일 당시 대통령이자 민주정의당 총재 노태우,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 3인의 청와대 회동과 더불어 3당합당 공동발표문이 나왔다. 3당합당은 통합을 지향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민주화세력의 분열을 의미했다. 그 분열의 효과는 기존 '민주-반민주' 구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으며, 기존 도덕 체계마저 뒤흔들었다. 그러나 그 도덕은 소비사회 이전의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집권한 김영삼 정부는 '문민정부'를 내세웠으며, '문민' 상징은 때마침 나라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더불어 적어도 투쟁의 동력을 약화시켰다. 이후 소비문화의 일시적 파탄이라 할 IMF 환란을 물려받으면서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정부'를 내세우며 IMF 환란을 극복했지만, 그것은 다시 소비문화의 융성을 촉진했다. 90년대가 끝나가는 시점에 유입된 스타벅스는 90년대의 마감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스타벅스는 이미지와 욕망과 체험을 팔았다. 그건 이전 소비문화와 차원을 달리 하는 2000년대의 새로운 소비문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 90년대가 한국 사회에 주는 교훈은?
'양김'으로 불린 대표적인 두 민주화 지도자들의 집권과 더불어 밖으로는 동구권의 몰락으로 촉발된 세계사적 변화와 안으로는 기술발전에 의해 추동된 삶의 양식의 변화는 '통합'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렸다. 90년대의 시대정신은 그렇게 '통합'에서 '분열'로 이동하고 있었다. 통합과 분열의 게임은 '뫼비우스의 띠'와 비슷했다. 3당합당이 그랬던 것처럼 통합 속에 분열이 내장돼 있었고, 또 모든 분열은 늘 통합을 지향한다고 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통합은 이미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로 대변되는 통합은 2000년대가 열리면서 꿈이 되어 갔다. '나'로 대변되는 분열이 우리의 운명이 되었다.
'월드컵 신드롬'처럼 예외적인 바람의 기운을 타고 2002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은 바로 그렇게 달라진 세상 문법을 상징했다. 노무현의 전략은 '해체'였다. 그의 국정운영은 통합을 내걸면서도 끊임없이 분열을 추구했고, 분열이 명분과 만나 뿜어내는 열기로 정권의 몸을 덥혔다. 3당합당 이상의 분열을 내장한 통합 시도였다.
2000년대 중반의 한국인에게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 되었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라는 걸 인식하는 건, 이제 우리의 목표가 '통합'이 아니라 '연대'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자꾸 되지도 않을 통합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갈등과 증오도 일어나는 것이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지만, '연대'는 나의 운명이다. 그게 90년대의 한국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