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사유를 일치시키려는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몸부림
저자 서경식은 재일조선인이다. 본명을 사용하며 교토의 조선인 밀집 지역에서 자라난 그는 은밀하거나 노골적인 차별을 일상적으로 겪으며 살아왔다. 그의 형제들은 저항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레 식민주의의 폭력에 눈을 떴고, 저항적 민족의식을 키웠다. 60년대 말 와세다 대학의 프랑스문학과에 입학해서도 정통 문학보다는 폴 니장이나 프란츠 파농과 같은 반제국주의 사상가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렇게 배우고 익힌 것으로 조국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열망했다. 하지만 조국의 해방과 민주화를 염원하며 한국으로 유학 온 그의 두 형, 서승과 서준식은 ‘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각각 19년, 17년의 옥고를 치렀다. 서경식 역시 고국으로 돌아가리라던 꿈이 좌절된 그 순간부터 형들의 옥바라지로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오랜 세월을 방황해야 했다.
그 시절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포스트 식민주의의 사상가 에드워드 사이드였다. 사이드는 지식을 전문화하고 상품화하는 학계를 통렬히 비판하고 이에 맞서 건강한 지성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이드의 말을 거울삼아, 서경식은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우려하고 식민지배의 책임을 묻는 글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그의 활동은 단순히 저술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의 강의, 대중 강연, 대담, NGO 활동 등으로 폭넓게 이어져왔다.
재일 지식인 중에서도 그가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한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에세이스트로서 그가 기억하고 증언하는 것들은 모두 재일조선인들의 질곡에 찬 역사와 불가분의 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식민지배, 고향상실과 이산, 민족분단, 차별과 소외 등 근대 역사를 관통해 이들에게 가해진 고난의 경험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의 고민은 항상 삶과 밀착해 있고 또 그의 분노와 고통과 슬픔은 더 날카로운 역사적 인식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기에, 그의 글은 전문적 용어를 남용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그의 사유는 결코 난해한 추상적 논리의 미로에서 헤매지 않고, 거꾸로 그의 슬픔은 결코 개인적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다소 낯선 소수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그의 글이 많은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이 사라져가는 시대, 역사적 책임과 소명을 망각하고 안락한 삶에 안주하려는 다수자들이 지식의 영역을 장악해버린 시대에, 서경식이라는 이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사유와 성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수자들의 시선이 놓칠 수밖에 없는 맹점들을 추방당한 자의 눈은 지극히 예리하게 포착해내기 때문이다.
1. 재일조선인이란 누구인가, 그 역사와 정체성
저자의 정의를 따르자면 재일조선인이란,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의 결과, 구(舊)식민종주국인 일본의 영역에 남게 된 조선인과 그 자손들”이다. 스스로 선택한 이민이 아니라 식민지배의 결과라는 것, 그리고 바로 자기 민족을 억압하고 지배했던 구종주국에 살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 요건이 중요하다. 저자가 굳이 ‘조선인’이라는 호칭을 고집하는 이유는 “부모님이 그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하셨기 때문이고 또 일본인들이 그 말을 가장 차별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1910년 일본의 조선 ‘병합’과 그후 계속된 가혹한 식민지배 정책, 1945년의 8·15해방,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953년 이후 한반도의 분단체제,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까지 이어진 ‘북조선 귀국운동’,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 협정과 협정반대운동, 1980년대 재일조선인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외국인등록증 안의) 지문날인 반대운동, 1980년대 중반 일본이 유엔난민조약을 비준하면서 개정된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 등의 상황과 사건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써내려간다.
이들 재일조선인들은 제멋대로 국적을 부여하기도 하고 박탈하기도 했던 일본이라는 국가의 횡포에 농락당했을 뿐 아니라 그와 공모해 식민지배의 책임을 모호하게 처리한 한국 정권들에 의해서도 고통받았다. 가령 1970년대에는 모국으로 유학을 온 많은 재일조선인 학생들이 민주화투쟁이나 통일운동에 관여했다가 군사정권에 의해 모진 고문과 탄압을 받았다. 저자의 형들인 서준식과 서승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저자가 재일조선인이 일본의 것이든 조국의 것이든 모든 국가주의의 폭력에 대해 가장 예민할 수 있는 존재라고 단언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2부 「에스닉 마이너리티인가 네이션인가」, 「새로운 민족관을 찾아서」, 「반난민의 위치에서 보이는 것들」 참조)
재일동포들 중 가장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 국적의 재일조선인들조차도 아직까지 일본으로 ‘귀국’하는 데 일본당국의 재입국허가가 필요하다. 이때까지 한번도 선거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들은 국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국민이 아니라 차라리 난민이다. 이들이 불만을 제기하면 일본 사회에서는 ‘싫으면 나가라’고 대꾸하고 조국인 한국에서는 이들에게 ‘외국분인데도 우리말을 잘하시네요’라고 칭찬한다. 처음으로 조국에서 생활하게 되어 부푼 기대를 안고 도착한 한국에서는, 주민등록번호가 없고 호적등본을 뗄 수 없다는 이유로 신용카드나 핸드폰을 만들 수도 없고 일본에서 부친 짐조차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얼마 전 혼혈 출신 수퍼볼 스타 하인즈 워드가 어머니의 고향인 한국을 찾아 온 사회가 떠들썩했다. 국회의원들까지 여야가 힘을 합해 ‘혼혈인차별방지법’안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워드에게는 ‘서울 명예시민증’이라는 것이 주어졌다. 하지만 이 책은 인종차별과 순혈주의를 근본적으로 반성하는 것이 이 나라가 추방한 모든 난민들, 반난민들을 다시 국민으로 시민으로 편입시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지적한다. 오히려 이들 난민들의 존재양태 자체를 이해하고 긍정하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정치를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렇듯 재일조선인의 역사는 우리 역사의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 그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너무도 부족하다. 가령 ‘이진우’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1959년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강간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당한 재일조선인이다. 조선인부락의 허름한 판잣집 출신으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일과 공부를 병행했던 이 청년은 별다른 물증과 증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절도 경력 2회(자전거를 팔아 책을 샀다고 한다), 여섯 군데 도서관에서 수십 권의 책을 훔친 전과 경력 때문에 유죄를 확정받았다. 또 정신감정 등의 조사에서 유난히 높은 지능지수가 나와 책임능력에 결함이 없다며 정상 참작도 되지 않았다. 체격이 좋았던 조건도 성인 기준의 엄격한 형 집행을 하는 빌미가 되었다. 몇 차례 졸속 심리를 거쳐 사형이 확정된 후에는 이례적인 속도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진우라는 이 이름은 재일조선인이란 누구인가, 식민주의가 해방 이후의 일본에서 어떻게 계속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이미지이자 표상이다.(2부 「괴물의 그림자」 참조)
2. 끝나지 않은 식민주의, 일본 사회의 우경화 비판
최근 일본이 테러 예방을 빌미로 일본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지문 채취 및 사진 촬영을 의무화하기로 해 우려를 낳고 있다. 이 책은 특히 지난 10년간 일본 사회의 변화를 주목하면서 이런 우려할 만한 상황에 대한 진지한 비판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일본의 우경화는 예상을 뛰어넘어 진전되었다. 1990년대의 일본은 전 ‘위안부’를 비롯한 아시아의 전쟁피해자들과 대면했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이를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음으로써 역사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고 동아시아 민족들과의 진정한 화해로 접어들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1996년 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결성된 후 일본은 교육기본법을 개정해 국가주의 교육을 강화하고, 헌법 제9조를 개정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변모하고 있다.
이 위험한 움직임에 대해서, 일본사회의 아카데미즘, 매스미디어, 시민운동 등은 이렇다 할 제동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무관심과 무기력으로 대응했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우경화의 견제 세력으로 일정한 기능을 담당했던 시민파 자유주의 세력은 내셔널리즘적 정서, 자기중심주의, 냉소주의의 경향이 강해졌다. 그 배경에는 냉전구조가 붕괴되고 시장경제의 전지구화가 진행됨으로써 그들 다수가 이념의 좌표축을 상실해 버렸다고 하는 현실이 놓여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한편으로 확실히 최근 들어 재일동포들에 대한 직접적인 차별의 기제들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고, 재일동포들 중에서도 일본 귀화자가 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다문화 공생론’(혈통에 얽매이지 않는 다문화 사회를 만들자는 논의)이나 ‘시민사회적 재일론’(일본인이나 재일동포나 모두 시민사회의 일원이라는 입장에서 공생을 호소하는 입장)이라는 논의가 재일조선인들 사이에서 대두하고 있다. 이들은 현실을 무시하고 생활감각으로부터 떨어진 ‘관념적인 조국지향’이 재일조선인 사회의 미래상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일본 사회와의 공생을 방해해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저자는 재일조선인 해방의 문제가 다른 이문화 집단 사이의 ‘공생’의 문제이기 이전에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극복이라는 문제임을 명확히 한다.
일본 사회는 여전히 정치인들이 전 위안부들의 소송에 대해 ‘돈 때문이다’, ‘나가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일본 학생들은 식민지시기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를 잃어버린 채 ‘더이상 조선인, 중국인들에게 사과하는 건 넌덜머리가 난다’고 말한다. 또 조선인들에 대한 직접적 차별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무섭다’, ‘감정적이다’, ‘과거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일본의 과거를 추궁하는 것은 사실 돈이 목적이다’ 등 새로운 형태의 편견이 자라고 있다. 이 책은 이렇듯 아직 식민주의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으며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진정한 ‘공생’이란 기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1부 「어머니를 모욕하지 말라」, 「희망에 대하여」, 「역사와 시」, 2부 「에스닉 마이너리티인가 네이션인가」, 「저울질하지 말라」참조)
3. 민족주의·국민주의에 대한 동시대 담론들을 넘어서
저자는 1990년대 일본 사회에서 동시에 나타난 두 가지 경향을 주목한다. 한편으로 ‘국가’·‘국민’을 본질적인 것으로 이야기하려는 전형적 내셔널리즘이 복권되어왔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상상된 것, 구성된 것에 불과하다는 국가주의·국민주의 비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 원칙적으로는 ‘국가’·‘국민’의 자명성을 해체하려는 후자의 입장을 견지한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이런 논의가 갖는 문제점은 그것이 다음 사회에 대한 전망을 전혀 고민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국가, 국민의 책임을 고민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으로 잘못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는 197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저항적 민족주의를 보편적 해방을 향한 열망으로 계승하면서, 민족주의라는 개념 자체에 내재한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넘어서야 한다는 방향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방향에서 우리는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의 공허한 상호 비판을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2부 「새로운 민족관을 찾아서」, 「에스닉 마이너리티인가 네이션인가」, 「재일조선인은 민중인가」, 「반난민의 위치에서 보이는 것들」 참조)
4. 디아스포라들
『디아스포라 기행』에 이어 이 책에서도 수많은 디아스포라의 삶과 죽음이 기억되고 애도된다. 특히 이 책의 3부는 윤이상, 프리모 레비, 펠릭스 누스바움, 파울 첼란, 카임 수틴, 에드워드 사이드 등 국가주의의 폭력과 싸우다 스러져간 이들에 대한 추도로 구성되어 있다. 또 이 책의 1부 「방황하는 노파」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난민성을 살려 세상을 살아가는 디아스포라들의 이야기가 저자의 즐거운 상상과 함께 펼쳐지기도 한다.
그가 규정하는 디아스포라는 단순히 정착할 땅을 잃고 방황하는 유대인을 의미하지 않고, 또 모든 이산 민족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보장하는 안락함, 그것이 아무리 기만적이고 허황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약속에서 배제된 모든 자들이 디아스포라라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 허구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희생되어야 하는 내부의 추방당한 자들이야말로 디아스포라다.
그런 점에서 그가 우크라이나의 봄즈(노숙자들)를 찍은 미하일로프의 사진에서, 또 총살당하기 직전 시신이 가득히 쌓인 구덩이 위에서 옷이 벗겨진 채 사진 찍힌 유대인 일가의 모습에서 디아스포라의 원형을 보는 것은 우연이나 오류가 아니다. 저자는 이들의 모습을 가능한 한 선명하게 그려 보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온몸이 불타는 듯한 수치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강렬한 수치의 감각이 바로 소수자, 추방당한 자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윤리적 감수성의 원천임을 보여준다.(1부 「온몸을 불사르는 수치」, 「문화라는 것」, 「방황하는 노파」, 3부 전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