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여대생의 연애 경험〉(김신현경)은 소비 자본주의 시대에 여대생들의 연애 양상이 ‘프로젝트’ 또는 ‘또래문화’로 변하고 있지만, 여대생들의 연애와 성과 결혼이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으려면 결혼의 조건에 대해 먼저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애는 프로젝트’라고 당돌하게 주장하는 여성들이 결혼에 대해서는 과거와 같은 조건을 바라는 현상을 분석하면서, 여성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 경제적인 조건과 문화 환경, 다양한 인간관계 및 생활양식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여성 전체의 삶을 확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여대생들은 소비대중 문화의 연애와 성 관련 이미지에 광범하게 노출되어 있고,……그리고 구체적인 실천에 관심을 기울이는 또래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제 성을 연애 프로젝트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한다. (본문 68쪽)
〈자위하기〉(원사)는 자위가 여성들이 성적 주체성을 형성하는 데 주요한 기제이며, 자신을 찾아 가는 성적 경험이라고 이야기한다. 인터뷰와 인터넷 게시판의 글을 인용하며, 여성 개인에게 자위가 어떤 의미를 띠는지, 자위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성별화된 행위인지를 밝힌다. 더 나아가 자위가 여성의 주체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가부장제의 여러 측면을 비웃는 실천, 곧 성역할 고정관념을 ‘넘고 넘은’ 성적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자위가 여성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위를 즐기면서 몸을 긍정하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성에 자심감을 갖기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위를 하는 행위에 성별 권력관계가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치지 않을까?……이렇게 즐거운 성적 놀이를 방해하는 문화적 요인은 무엇인가? 자위를 적극적으로 행하는 여성들은 그 문화적 요인을 어떻게, 무엇으로 비웃고 있을까? (107쪽)
〈섹스와 임신〉(원영)은 젊은 여성들이 섹스를 연애관계에서 자신의 당당함을 드러내는 행위로 여긴다고 말한다. 그런데 섹스의 결과로 임신이 되었을 때, 당당했던 여성들이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과정과 그 정치적 의미를 분석한다. 또한 임신과 낙태 경험은 절망적인 경험일 수도 있지만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섹스까지는 상관이 없다, 이거야. 결혼 전이라도 상관이 없어. 근데 딱 낙태를 했다는 거가 여성한테는 큰 손상이 있잖아. 그런 것 때문에 내가 매달렸었어. 결혼할 건 아닌 게 확실한데도. - 사례 F (122쪽)
〈미혼모의 섹슈얼리티〉(서정애)는 미혼모가 되는 과정을 미혼모의 목소리를 통해서 드러낸다. ‘미혼모가 되는 것’은 혼인을 중심으로 한 ‘정상’ 성규범 같은 젠더 관계의 모순과 제한, 곧 남성/욕구, 여성/책임의 성별화 과정에 있다. 대부분의 미혼모는 자신의 욕구보다는 상대 남성의 욕구와 의지에 따름으로써 ‘피해’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미혼모의 경우, ‘미혼모’로서 자신을 다시 규정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미혼모의 섹슈얼리티가 갖는 복잡한 맥락을 다시 읽자고 제안한다.
성적 욕망은 본래 ‘남성적인 것’으로 전통적인 여성성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청소녀의 섹슈얼리티는 욕망이 배제되고 단지 성병 피해(임신, 성폭력), 도덕성만 부각된다. 곧 여성에게 성은 임신이 될 위험과 성폭력 피해 여성이 될 가능성을 가진 것이므로, 여성의 도덕적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억제되고 피해야 하는 것이 된다. (167쪽)
〈성폭력 ‘경험들’에 대한 단상〉(변혜정)은 성폭력 행위가 여성 개개인의 맥락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기억되고 말해지는지, 여성들이 말하는 피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기존 성폭력 담론에 저항한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정조에 반하는 것,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반하는 것을 성폭력으로 말하지만, 성별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여성들은 (아는 관계의 경우) 상대방과의 권력 차이에서 기인하는 분노, 억울함―특히 성적인 것과 관련된― 들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성폭력으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따라서 다양한 성폭력 행위의 피해가 뜻하는 것, 때로는 피해로 구성되지 않음이 뜻하는 것을 분석함으로써, 다양한 여성 주체에 의한 성폭력 행위의 상대화를 주장한다.
어떤 여성이 나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자신은 강도강간 피해자인데 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에서 성폭력 개념을 보니 자신이 다른 성폭행도 당한 것 같다고 상담하고 싶다고 했다. 중학교 때 좋아했던 (사촌)오빠가 있었는데 그가 자기를 강간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존경하고 좋아했던 오빠였기 때문에 이제까지 한 번도 강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182~183쪽)
2부의 첫글인 〈성매매, 누구와 누구 혹은 무엇과 무엇 사이의 문제인가?〉(민가영)는 성매매 방지법이 통과된 뒤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고 성매매 문제를 다시 사고한 결과물이다. 성매매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그동안 뭉뚱그려 생각해 왔던 것들을 따로 구분해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성매매와 성매매 여성,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성매매와 몸의 경험으로서의 성매매를 구분해 생각하고, 성매매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제대로 보자고 하면서 성매매를 성찰할 수 있는 다양한 각도와 축을 모색하고 있다.
성매매와 성매매 여성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차이를 인식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매매 문제를 ‘구조’로만 환원시켜 사고할 수도 없고, ‘개인의 자율적 선택’으로만 사고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매매를 둘러싼 문제들이 ‘구조로서의 성매매’와 ‘구조 안의 개인인 성매매 여성’이 만나서 만들어 내는, 의도되지 않은 다양한 사회적 경향 속에서 논의되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199쪽)
〈성적 자기결정권을 넘어서〉(정희진)는 성폭력에 관한 여성주의 정치학을 제안한다. 시간과 공간, 마음과 몸, 문화와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근대 서구 남성 중심적 사유가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정의하는 방식이 될 때, 여성의 몸을 공간으로 간주하는 성별화가 생기고, 그것이 성폭력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결국 몸-공간 중심적 사유를 비판하는 것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반대운동의 중요한 논리적 기반이었던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피해자 중심주의에 도전하는 기초라고 주장한다.
정자가 모든 유전 물질을 나른다고 보는 “남자는 씨, 여자는 밭”처럼 여성의 몸을 공간화하는 인식은, 성폭력의 발생 및 은페 논리가 된다. ‘여성은 밭이기 때문에’, 전쟁 시기 피점령지 여성에 대한 집단 성폭력과 강제 임신이 ‘인종 정화(淨化)로 합리화 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 공동체의 재생산을 위한 최후의 재산으로 간주된다. (230~231쪽)
〈벽장 비우기〉(한채윤)는 현재 한국 사회를 이성애주의 사회로 규정하고, 이성애만을 정상이라고 보는 것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성 정체성이란 평생에 걸쳐 형성되는 것인데, 이것은 매우 불안한 개념이므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이분법적 틀에 넣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성 정체성을 나누는 주체와 그것을 위계화하는 권력을 분석해야 한다고, 무엇보다도 레즈비언으로 산다는 것은 성적 행위나 성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고 역설한다.
“언제 자신이 이성애자임을 알았는가? 이성애자가 된 계기가 원인이 있는가?”, “동성애를 경험해 보지 않고도 이성애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할 수 있는가?”, “왜 이성애자는 동성애를 못하는가?” 하는 질문들이 벽장 안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벽장 밖에서는 가능하다. 그래서 이제 벽장 밖에 서 있는 이들이 벽장 안을 향해 외쳐 묻는다. “당신의 성 정체성은 무엇인가?” (256쪽)
〈포르노그래피, 억압과 해방의 이분법을 넘어서〉(이나영)는 ‘이것이 포르노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포르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포르노가 어떤 것이다’라는 잠정적 합의를 기준으로 불법과 합법, 규제와 비규제의 대상이 정해진다고 보고, 그러한 합의와 도출 과정에 개입되는 힘의 역학을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포르노에 대한 찬성이나 규제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 포르노를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개입하여, 궁극적으로 해체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포르노적 재현 방식은 ‘문제적’이다. 성적으로 노골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특성 시선을 유희하면서 특정한 방식의 쾌락과 욕망을 (재)생산하고 기존의 이데올로기와 지배 시스템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308쪽)
〈한국 영화의 섹슈얼리티 재현〉(주유신)은 1990년 이후의 한국 영화가 여성이라는 젠더와 여성적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재현하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성적 주체로서의 여성과 여성의 성애적 다양성을 관습적이거나 환원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재현하는 영화를 분석한다. 여전히 존재하는 민족 내부 타자로서의 여성 섹슈얼리티부터 가족·가부장제의 해체 가능성, 성적 무법자로 재현되는 여성들까지,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영화는 다층적인 성 담론의 충돌을 통해 낯설고 기이한 성적 주체를 등장시켰다고 분석한다.
김기덕 영화들에서 여성의 육체는 ‘성기’로 환원되고, 여성성의 본질은 ‘매춘부적 속성’에 있는 것으로 정의되며, 그 결과 여성에 대한 비하와 여성 육체에 대한 폭력과 강간을 비롯하여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침해는 거듭해서 정당화된다. …… 그의 영화들은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성과 여성 육체에 보이는 의식적,무의식적 불안감과 적대적이고 착취적인 태도를 거의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324쪽)
〈신여성과 성애화〉(이명선)는 근대 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신여성이 유별나게 섹슈얼리티와 연관되어서 성적 존재로 취급되거나 성적 존재로 판단되는 것이 신여성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그것이 당대의 남녀관계, 나아가 사회적 구조의 재편성과 맺는 관계에 주목한다. 동시에 신여성들의 삶을 시대를 앞서간 실패한 도전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역사로,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보며, 신여성이 현재의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탐색할 것을 제안한다.
혐오로 나타나든 선망의 형태로 표현되었든 중요한 것은 이들 담론 안에서 신여성의 ‘구두’나 ‘종아리’, ‘단발’로 분절된 채 점차 남성적인 시선의 대상 혹은 미적 평가의 대상으로 전유되었다는 점이다. 신여성의 몸,외모가 성애화된다는 것, 곧 남성에 의해 신여성의 몸이 성적 대상으로 규정된다는 것은 근대 사회에서 신여성이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새롭게 구성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3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