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쟁과 진화의 기록 ― ‘대중독재’ 프로젝트의 두 번째 성과물
2004년 4월 책세상에서 출간된『대중독재 ― 강제와 동의 사이에서』는 ‘대중독재’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기함으로써 학계와 사회 전반에 파장을 일으켰다. 근대의 독재가 위로부터의 강제적 동원뿐만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동원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광범위한 대중의 동의를 향유했다는 이 책의 주장은, 20세기 독재의 다양한 층위를 섬세하게 드러냈다는 평가와 함께 유신 독재라는 한국적 현실을 중심으로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대중독재 연구자들은 이 논쟁에 성실하게 임하는 한편 지난 1년 동안 진전된 연구 성과를 모아 두 번째 책『대중독재 2 ― 정치 종교와 헤게모니』를 펴냈다.
1권이 세계 여러 나라의 독재 체제 연구를 바탕으로 대중독재 개념을 제시하고 강제와 동의의 정치공학을 드러냈다면, 2권에서는 ‘정치의 신성화’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근대 독재가 종교화, 신비화, 미학화, 시각화를 통해 대중의 동의와 열광을 이끌어낸 양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1권 출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대중독재 개념을 둘러싸고 진행된 논쟁의 기록을 함께 담았다. 정치 종교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이 책의 연구 성과는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를 넘어 각론의 단계로 진입한 대중독재론의 ‘진화’를 확인하게 하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한 단계 진전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2. 정치의 신성화 ― 동의의 생산과 유통
대중으로 하여금 독재 체제를 용인하고 동의하도록 만들어내는 대중독재가 가능하려면 정치적, 경제적 요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중독재 체제에서 동시대인들을 매혹시킨 것은 국가?민족?인종?프롤레타리아의 신성화, 상징과 집단적 의례의 사용, 집단에 대한 헌신과 적에 대한 증오, 대중의 열광, 지도자 숭배와 같은 정치 종교적 특징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중의 동의가 만들어지는 양상을 설명해주는 개념이 바로 전통 종교와 별도로 정치에 종교적 차원이 부여되는 ‘정치의 신성화’다.
대중독재 패러다임의 하위 개념인 정치의 신성화는 민족, 국가, 인종, 계급, 역사 같은 세속적 실체에 종교성을 부여하려는 것으로, 독재가 발산하는 비합리적인 신화의 힘이 어떻게 대중의 주체와 관계를 맺고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켰는지에 관심을 집중한다. 정치가 신화, 의례, 상징을 통해 인식될 때 대중은 국가, 민족, 지도자 같은 세속적 실체에 대해 신앙심과도 같은 태도로 헌신과 희생정신을 발휘한다. 이탈리아의 파시즘에서부터 독일의 나치즘, 소련의 스탈린 체제,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 체제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의 신성화는 정당성, 동의, 저항같이 독재 체제와 대중의 관계를 규정했던 통상적인 개념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평가하게 한다.
3. 무엇이 대중을 열광하게 하는가 ― 정치 종교의 매혹과 위력
수많은 대중을 열광시킨 20세기 독재의 동력은 무엇일까? 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어리석고 잔혹하기까지 한 독재 체제의 명령에 복종하는 헌신적인 신자가 되었을까? 이 책의 1부와 2부는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근대의 독재 체제가 새로운 세계의 비전을 제시하며 대중을 사로잡는 과정을 해부하고 있다.
1부 ‘정치의 신성화와 동의의 생산’은 정치의 신성화의 기본 개념을 설명하고 나치즘과 파시즘 그리고 동아시아의 독재 체제가 정치 종교로서 대중의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양상을 보여준다. 로마대 교수인 에밀리오 젠틸레의 <정치의 신성화>는 정치의 신성화 개념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며, 폴란드 역사학자 마르친 쿨라의 <종교로서의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가 기성 종교에 맞서 줄기차게 싸워왔음에도 결국 종교를 닮아간 역설적인 현상을 추적한다. 컬럼비아대 교수인 찰스 암스트롱은 <가족주의, 사회주의, 북한의 정치 종교>에서 북한의 가족주의가 정치 종교로 확립되는 양상을 분석하는데, 김일성 부자의 권력 세습과 김일성 일가에 대한 공경을 북한의 ‘가족 로망스’라고 부르는 서양 학자의 분석이 흥미롭다. 나인호(대구대)와 박진우(숙명여대)가 같이 쓴 <독재와 상징의 정치>는 독일과 일본의 독재 정권이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실행한 문화와 상징의 정치가 정치 종교임을 밝히고 있다.
4. 대중독재의 동원 미학과 영웅 숭배
2부 ‘헤게모니와 동의의 문화’는 대중독재가 다양한 매체의 시각적 이미지와 영웅 숭배를 활용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정치를 시각화하고 미학화하는 독재의 전략이 엘리트 지식인을 포함한 전체 대중의 동의를 이끌어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세대 마이클 김 교수의 <식민 후기 조선의 시각 문화에 나타난 전체 동원의 미학>은 일제하 마지막 10년 동안 식민지 조선의 협력 지식인들이 그림, 사진, 광고, 지도 같은 시각적 이미지들을 활용해 일제에 대한 지지를 촉구하는 모습을 재현하며, 독일 학자 미하엘 빌트의 <고삐 풀린 세대>는 제국보안사령부 지휘부에 대한 연구를 통해 3분의 1에 가까운 인원이 박사 학위 취득자인 이 엘리트 집단이 인종주의적 민족 공동체라는 새로운 정치 질서를 건설한다는 유토피아적 열정으로 독재에 복무했음을 추적하고 있다. 또한 영웅 숭배를 다룬 피터 램버트(웨일스대)와 리나스 에릭소나스(글래모건대)의 글은 나치즘과 포르투갈, 리투아니아 등의 예를 통해 영웅의 신화와 전승이 대중독재의 헤게모니 기제로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있다.
5. 한국 사회 대중독재 논쟁의 기록
이 책의 3부 ‘한국의 대중독재 논쟁 ― 진보 담론인가 보수 담론인가’는 우리 사회 대중독재 논쟁의 기록을 가감 없이 실은 것이다. 대중독재 1권이 출간된 후,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역사비평』2004년 여름호에 <박정희 시대의 강압과 동의>라는 글을 발표해 대중독재론과 일상사론을 비판했다. 이에 대중독재론을 이끌고 있는 한양대 임지현 교수가 가을호에 <대중독재와 포스트 파시즘>이라는 반론을 실었고, 2005년 봄호에 조희연이 <박정희 체제의 복합성과 모순성>이라는 재반론을 발표했다. 논쟁은 지면을 바꾸어 2005년 봄『교수신문』에 실린 박태균과 이병천의 비판으로 확장되었으며, 이는 다시 조희연, 박태균, 이병천에 대한 임지현의 답변과 조희연의 재반론으로 이어진다.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 대중독재 논쟁은, 반대 의견에 침묵하거나 일회적인 이미지 비판으로 흐르기 쉬운 한국 사회의 풍토에서 꼼꼼한 텍스트 독해를 바탕으로 한 지적 성실성과 상대의 주장을 자기 성찰의 계기로 삼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모색하는 성숙한 태도가 돋보이는 발전적 토론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6. 박정희 독재와 ‘과거 청산’을 바라보는 시각
대중독재와 관련해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논쟁은 현재적 쟁점을 중심으로 볼 때 박정희 독재의 성격과 과거 청산 문제에 대한 시각 차이로 압축될 수 있다. 조희연은 박정희 독재는 강력한 민중의 저항과 정치적 위기로 점철된 강압적 체제며, 대중독재론이 대중의 순응적 침묵을 능동적 동의로 해석함으로써 파시즘 정당화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임지현은 이에 사악한 소수와 결백한 다수를 나누는 도덕적 이원론이 대중독재를 오독하고 있다고 반박하며, 당시 저항 운동의 한계와 일상생활의 영역에 내면화된 지배 등을 근거로 박정희 체제에 대한 조희연의 해석이 일면적이며 정치적 영역에 제한된 편협한 시각임을 비판하고 있다.
과거 청산 문제에서도 대중독재론은 논쟁적이다. 조희연은 대중독재론이 지배에 대한 동의를 강조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과거 청산을 희석할 수 있다고 비판하는 반면, 임지현은 가해자-피해자라는 단순 구도 아래 소수에 대한 사법적 심판에 만족하는 것이야말로 과거 청산을 희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대중에게는 면죄부를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과거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중독재론이 지향하는 바다.
이제 우리 사회의 대중독재 논의는 더욱 섬세하고 치열한 논쟁을 통해 좀더 정치한 이론화와 역사적 분석 위에서 반독재 담론의 성찰적 확장, 그리고 파시즘에 대한 승리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