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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책을 처음 만난 건 [강의]다. 동양 고전에 대한 책이었는데 어려운 내용이 편하게 읽혔다. 글로 쓴게 아니라 강의 내용을 책으로 낸 덕분이겠다.
그 다음에 만난 책이 최근에 나온 [담론].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이것 또한 이전의 [강의]처럼 강의한 내용을 옮겨 놓은 글이다. 책의 전반부는 고전에서 읽는 세계인식이고 후반부는 20년 수형생활에서 얻은 삶의 통찰인데 책의 저변에 흐르는 큰 주제는 '관계'다. 존재란 개별자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개별자간의 관계로 존재하고 인식된다고 한다. 우리 개개인도 마찬가지다. 내 이름 석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누구의 아버지로, 남편으로, 아내로 또는 선배나 후배로, 선생님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나와의 관계, 또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로 존재한다. 그러한 관계망을 인식하게 되면 삶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번엔 [변방을 찾아서]를 만났다. 더 널리 알려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여러 군데에서 인용된 것이 많아 좀 더 낯선 이 책을 먼저 접했다. 경향신문에 8차례에 걸쳐 연재한 글을 모은 소책자다. 150페이지가 채 되지 않은데다가 사진도 많아 금방 읽힌다. 저자가 써 놓은 현판 글씨가 있는 '변방'을 찾아 다니며 쓴 기행문들이다. 상당히 많은 곳, 많은 분들에게 글씨를 남겨 두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변방의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간적 지형적 개념의 변방을 말함이 아니다. 지리적으로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주체와 중심 사상으로부터 소외된 곳, 변화와 변혁으로부터 무관심한 곳, 그런 생각들이 변방으로 읽힌다. 주류 담론이 아닌 비판 담론, 대안 담론으로의 변화를 갈망한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위해서는 변방이 중심부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가는 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은 쇠퇴해가고 변방이 다시 중심이 되어가는 것이 역사의 역동성이다. 이 역동성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면 국가나 조직은 망하거나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그 역동성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변방은 중심을 향해 끊임없이 진격하고 반면에 중심부는 견고하게 성을 쌓아 변방으로 부터의 유입을 차단한다. 한 번 중심이 된 후에는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역설적이게도 그 지키고자 하는 힘이 절대적으로 커지는 지점에서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와 현실 모두에서 목격한다.
몇일 전 한 지인이 폰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십 수년 전에 붓글씨를 써 준 일이 있는데 그걸 찍어 보내온 것이다. 지금 다시 보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끝내 사양할 것을 그러지 못했던 것이 후회 막급이다. 그래도 그걸 집안 거실에 지금껏 걸어두고 계시다고 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읽는 일은 드문 일입니다. 읽은 책의 대부분은 리뷰로 남겨 놓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 책은 2년 전에 구입해서 읽은 후 미처 리뷰도 쓰기 전에 후배가 2주 만 읽고 돌려주겠다고 하더니, 2년이 되어도 돌려줄 생각을 안 하기에 선물로 주고 다시 구입을 했습니다. 나로서는 드문 일입니다. 재 구입을 하는 일이 별로 없기에 그렇습니다.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누군가에게 책을 전해 줄때는 분명히 합니다. 빌려주는 것과 선물로 주는 것을 확실히 해줍니다. 그래야 서로 편하지요. 아예 처음부터 선물로 했으면 기다리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아마도 그때 역시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아주 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 최근에 동양고전을 본격적으로 다시 읽고 싶어서 시경, 논어 등이 포함된 13권짜리 한질을 구입했습니다. 책을 쌓아놓고 보니 더욱 이 책이 간절해졌지요. 이 책 신영복 교수님의
『강의』(돌베개)는 2004년에 출간되어 2012년 4월부로 31쇄가 발행되었군요. 명실 공히 스테디셀러입니다.
이 책의 장점은 두 가지입니다. “아. 나도 동양고전을 읽어봐야겠구나!”하는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것과 함께 동양의 고전들을 읽는 방법 그리고 그 길을 안내해주는 텍스트이기 때문입니다.
책의 제목이 『강의』인 것은 저자가 그동안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 강독」이란 강좌 명으로 진행해왔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녹취한 강의록이 인터넷 신문에 연재되기도 했고 여러 곳에서 출판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저자 자신이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마음에서 고사하던 중 전공 교수 두 사람의 검토를 거쳐 책으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의』라는 제목에 부제를 달기를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라고 붙였는데, 그 이유는 고전을 읽는 방법이 일반적인 고전 연구서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가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답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짐이기 때문에 지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을 지혜로 만드는 방법이 대화라는 것이지요. 고전 독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와의 대화를 선취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저자는 이 책이 꼭 고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리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책에는 시경(詩經), 서경(書經), 초사(楚辭), 주역(周易), 논어(論語), 맹자(孟子), 노자(老子), 장자(莊子), 묵자(墨子), 순자(荀子), 한비자(韓非子) 외에 대학(大學), 중용(中庸), 양명학(陽明學)에 대한 강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저자가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어려서 할아버님의 사랑방에서 배운 아련한 기억 외에 저자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 많겠습니다만,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신 후 감옥에서였다고 하십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시작되신 것이지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난 후 옥방(獄房)에 앉아서 생각한 것이 동양고전을 다시 읽어보자는 마음이셨답니다.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제 마음이 찡해지면서 나의 환경에 대해 무한 감사하게 되는 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내가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 외에 다른 한 가지는, 이건 훨씬 더 현실적인 이유였습니다만 당시 교도소 규정은 재소자가 책을 세 권 이상 소지할 수 없게 되어 있었지요. 물론 경전과 사전은 권수에서 제외되긴 합니다만, 집에서 보내주는 책은 세 권 이상 소지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 읽은 책을 반납해야 그 다음 책을 넣어주는 식이었어요. 멀리 서울에 계시는 부모님으로부터 책 수발을 받는 나로서는 난감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책에 비해 동양고전은 한 권을 가지고도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이지요. 주역(周易)은 물론이고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도 한 권이면 몇 달씩 읽을 수 있지요. 세 권 이상 소지 할 수 없다는 교도소 규정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나중에는 동양고전 몇 권을 한 권으로 제본해서 보내주도록 아버님께 부탁하여 받기도 했습니다. 나의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은 이처럼 감옥에서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로 시작되었으며 또 교도소의 현실적 제약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글을 옮기다 보니, 프로스트가 생각납니다. 프로스트의 동생이 그랬다지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려면 몇 달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읽기 힘들 것이라는.. 그대도 어딘가 갇혀 있어야 『동양고전』을 읽으시려우? 이미 다들 알고 계실만한 유머 한 꼭지가 왜 또 생각이 나는지요. 연로하신 부모님께 탐심(貪心) 많은 자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지요.
'총기(聰氣) 있으실 때 정리 하시지요 (재산 나눠주시지요)'
우리도.."총기(聰氣) 있을 때 동양 고전 읽읍시다.'
참..그리고 역시 여담입니다만..
제가 리뷰를 경어체로 쓰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신영복 교수님 탓입니다.
겸손과 (언어의)절제를 배우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이 책 역시 나와 끝까지 함께 갈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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