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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행일 | 2005년 07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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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54쪽 | 694g | 112*152*30mm |
ISBN13 | 9788934918899 |
ISBN10 | 89349188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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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이란 단어는 지난 부시 정권 8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단어이자, 가장 치명적인 힘을 과시했던 단어다. 특히 우리에겐 한반도 평화와 남북문제 진전에 있어 가장 장애물로 작용했던 강력한 세력이기도 했다. 미국 네오콘들의 권력 장악과 그에 따른 대외 정책 변화는 결국 남한 내에서도 자칭 ‘합리적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사이비들을 다수 생산해 내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뉴’뭐시기로 시작하는 영혼 없는 이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부시 정권 8년의 기본적인 대외정책은 힘으로 진리를 만들어내고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문화적 상대주의를 강하게 거부하고, 협소한 시각으로 레짐을 선과 악으로 구별한 뒤 일단 악으로 규정된 레짐은 힘으로 붕괴시키는 것. 그것이 네오콘들이 일관되게 추구한 것이었다.
레오 스트라우스는 부시 정권의 핵심에서 대외정책을 주도했던 이들의 사상적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름 없는 유대인 정치철학자가 남긴 것은 생각 외로 엄청났고, 그 결과 역시 참혹했다. 대중을 말 그대로 우중으로 판단하고, 그런 우중을 바른 길로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생각. 하지만 그 앞에는 어리석은 우중들이 믿을 만한 도덕적 명분을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 레오 스트라우스의 신념이자 철학이었다.
중요한 것은 절대 어리석은 대중들에게 진실을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일단은 거짓된 선전과 믿음으로 대중을 현혹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라크는 나쁜 레짐이다. 때문에 없애야 하지만, 그냥 없애면 대중들은 거부할 것이다. 그러므로 있든 없든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곤 무력으로 이라크를 붕괴시킨다. 나중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고 밝혀지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나쁜 레짐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이때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거짓말은 레오 스트라우스에겐 ‘고귀한 거짓말’이 된다.
레오 스트라우스와 그 제자들을 20여 년 동안 추적해온 캐나다의 샤디아 드러리 교수는 “스트라우스의 진면목은 허무주의적 니체”라고 말한다.
“신은 죽었고, 정의의 기반도, 도덕의 기반도 사라졌다. ‘진리가 없다는 것’그것이 ‘냉혹한 진리’다. 그런데 이런 진리를 많은 대중들이 알게 되면 그들은 도덕을 헌신짝처럼 버릴 것이고 그러면 사회는 도덕적 무정부상태에 빠져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진리’는 냉혹함을 견딜 수 있는 소수의 엘리트만이 알아야 한다. 나머지 멍청한 대중들은 엘리트들이 지어낸 정의와 도덕, 신화를 믿으면서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고귀한 거짓말’이다. 플라톤 같은 고대의 현인들은 이를 잘 알고 진리를 숨겨놓았지만 경망스러운 근대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자유주의의 확산과 함께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상대주의, 허무주의가 판을 치면서 도덕이 무너졌다. 사회도 함께 무너질 운명이다. 서구문명은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 유일한 해결책은 ‘고전 정치철학으로의 복귀’다. 대중들에게 또다시 ‘고귀한 거짓말’을 해서 도덕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따라서 스트라우시언들이 진리, 정의, 도덕 운운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와 함께 정치공동체는 강력한 적의 존재에 의해 각성되고 유지된다. 적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역시 ‘고귀한 거짓말’이다.”
“오호 왠지 그럴 듯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네오콘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정신병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이들이 일반인이 아닌 미국 대외정책의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상대가 먼저 공격해오지 않더라도 일단‘낌새’만 보이면 먼저 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폴 울포위츠, 그의 스승이자 스트라우스의 제자 앨런 블룸, 미 국방부의 정보담당 책임자로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데 총괄적인 역할을 맡았던 에이브럼 셜스키(그는 “정보 작전의 목표는 진실이 아니라 승리”라고 주장했단다.), 네오콘이라는 단어를 처음 공식화한 네오콘의 대부 어빙 크리스톨, 그리고 그의 아들이자 네오콘의 전도사 윌리엄 크리스톨. 이들은 모두 레오 스트라우스의 제자이거나 그 영향을 받은 스트라우시언들이다.
이들이 주도했던 부시 정권 8년은 그야말로 파괴와 거짓, 전쟁과 살육으로 장식되었던 암흑의 시간들이었다. 덕분에 우리도 반세기만에 얻은 남북 화해의 분위기를 채 피워나가지 못했고, 결국 제2차 핵위기라는 먹구름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결과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스트라우스는 서양 고전 철학, 즉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숭상했다. 이는 곧 홉스나 로크 등 근대 정치사상의 부정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의 가치를 부정하고, 문화 상대주의, 민주주의의 원칙도 모두 인간을 타락시키는 질병에 다름 아니다. 그는 고전 철학이 숨겨온 “진리란 없다”는 진리를 멍청한 근대 철학자들이 ‘누설’하는 바람에 서구 문명이 치유하기 힘든 질병에 걸렸다고 진단한다. 때문에 일반 멍청한 대중들은 이해할 수 없는 밀교적 방법으로 진리를 전해야 하고, 소수의 엘리트들이 세상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글쎄, 일정 부분 네오콘의 영향을 받아 정책을 수행했던 부시 대통령이 그렇게 뛰어난 엘리트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부시를 이용해 신나게 자신들의 철학을 현실로 만들어 나갔다. 그들은 ‘사생결단’의 정치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부시 정권이 끝난 지금, 이제 오바마가 평화와 공존을 말하고 있는 지금, 이 책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은 무엇일까. 사실 지금도 미국의 권력 핵심에는 네오콘들이 건재하고 있다. 그들은 또 다른 ‘부시’를 기다리거나 혹은 만들려 할 것이다. 아울러 지금 오바마 대통령의 변화를 이끌어내려 안간힘을 다할 것이다. 아니 지금도 치열하게 그러고 있는 중이다. 어느 정도 약발이 먹히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문제는 이러한 네오콘들의 ‘활약’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이다. 저자 역시 우려한 부분이지만, 가뜩이나 어지럽고 사생결단식 정치에 매몰된 우리 사회에 네오콘의 영향력이 미친다면 그건 정말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미 그런 모습들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힘겹게 만들어온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는 누가 말한 것처럼 ‘빛의 속도’로 후퇴하고 있다. 전임 정권들의 정상회담을 그렇게도 폄하하던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보수 세력들은 정작 3차 정상회담을 두고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정치적 효용이 없으면 남북관계고 나발이고 정상회담 따위는 필요 없다는 계산이다.
때문에 기자 출신의 저자가 비교적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네오콘과 레오 스트라우스의 진면목은 지금도 충분히 읽어야 할 가치가 있다. 네오콘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네오콘들은 지난 부시 정권 시기의 모습들을 통해 충분히 자신들의 철학을 보여줬다. 그것은 바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은 상관없다”는 것과 “어떠한 무고한 희생도 목적을 위해서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전쟁의 완결한 종결이 아닌 ‘휴전’상태에서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에겐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아직 우리는 완전한 평화를 얻지 못했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그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데 힘이 부친다. 때문에 세계 최강대국이라 자신하는 미국과 우리 주변의 모든 강대국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알아야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라고 이 책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술술 읽히면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책. “도대체 네오콘이 뭐하는 녀석들이야?”하고 궁금해 했던 이들은 일독해 볼 만하다.
“도시(폴리스,국가-역자)는 도시로서 때때로 전쟁을 치러야 하고 전쟁은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것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해치는 것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비난은 가장 정의로운 도시조차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Leo Strauss, The City and Ma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4,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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