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국제주의적 진보주의자 박노자와 민족주의적 시민주의자 허동현의 지상격론!
【이제 다시 야수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요 근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 왜곡 문제가 한반도를 한바탕 뜨겁게 달궜다. 그에 앞서 중국이 추진한 동북공정, 그리고 미국의 북핵 문제에 대한 개입과 강한 제재는 아직도 진행 중에 있으며, 그로인해 세계의 이목이 이곳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위의 문제들에 대해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가겠다는 '동북아 균형론자'를 선언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 미국은 한국의 탈미 경향을 우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이라크라는 악의 축을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함으로써 전세계에 힘을 과시한 미국은 이제 한반도로 눈을 돌려 한미 동맹을 끈을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입지를 완전히 굳히려 한다.
성조기를 휘두르며 군사적 애국주의를 미화하는 네오콘이 득세하는 미국, 여전히 독도를 넘보고 역사를 왜곡하는 등 극우화가 고개를 쳐드는 일본, 국가주의가 유행 중인 러시아, 그리고 중화민족주의가 공산주의를 대체해가고 있는 중국. 이것이 오늘날 열강들의 현주소이며 이 나라들과 역사적으로 좋든 나쁘든 깊은 연관을 맺어온 우리로선 이 열강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허투루 넘길 수 없다. 그렇다면 100년 전 주변 열강과 대면했던 조선인들은 어떻게 대응을 했을까? 과연 그들이 적군인지 아군인지, 우리 역사에 제기한 도전의 실체는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급작스레 외부로부터 밀어닥친 거센 도전에 조선은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고 침몰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다시 열강 쟁패의 시대를 맞이한 오늘, 이런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두 개의 시각 하나의 미래】
2년 전《우리 역사 최전선》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틀을 통쾌하게 깨트려버린 열린 대화와 토론의 장을 보여주었던 박노자? 허동현 두 교수가 다시 만났다. 이번엔 100년 전 조선을 둘러싸고 패권 경쟁을 벌인 열강의 문제를 검토하면서 바로 개화기 조선의 지식인들이 열강을 어떻게 인식했느냐에 초점을 맞춰 명철하고 다각적인 분석과 과거와 오늘을 꿰뚫는 빛나는 통찰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전작에서 유쾌하고 진지한 역사 논쟁에 많은 독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여왔으나, 한편 솜방망이 주먹을 날리는 양 젊잖다는 일각의 비판도 인식한 탓인지 두 교수의 주고받는 품새가 한층 날카롭고 깊어졌다.
특히 박 교수는 이상적 척도를, 허 교수는 현실적 잣대를 쓰는 데서 두 사람 사이에 견해 차이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박 교수는 과거 친미 개화파가 남긴 역사적 오점을 거론하면서, 오늘날 이라크 전쟁을 옹호하고 한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려 하는 수구적 친미파-노무현 대통령도 그의 비판의 칼날을 벗어날 수 없다-를 거침없이 단죄한다. 이에 대해 허 교수는 미국의 장점을 도입하려 한 당시 친미 개화파의 선택은 탁견이었다고 반박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침략자의 민족주의는 가해자의 칼날로 기능했지만, 피해자의 민족주의는 자신을 지킬 최후의 방어수단이었다는 점에서 이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재판할 수는 없다는 반론을 든다. 즉 민족주의란 장기적으로 인류 공영의 이상이 실현된다면 폐기되어야 할 터이지만, 다시 돌아온 야수의 세상에서 약자가 민족주의라는 최후의 갑옷을 먼저 벗을 수는 없다는 게 허 교수의 생각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주장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다가도 오늘날이 열강 쟁패의 시대라는 점과 그 열강들에 에워싸인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점에서는 한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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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애국주의의 파도가 드센 미국이나 극우화돼가는 일본, 국가주의가 유행중인 러시아, 그리고 중화 민족주의가 공산주의를 대체해가고 있는 중국에선, '고전적' 민족주의나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이데올로기들이 계속 지배계급의 주된 통치 도구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설명해주고 세계적 민중 연대의 이상을 실현해나가는 것이, 국제적 반세계화, 반자본주의운동의 주된 과제라고 확신합니다.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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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시민들은 한데 뭉쳐 다니는 우중이 아니라,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연대하는 주체들입니다. 이런 각성된 개별 주체들의 연합은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 전 지구적으로 전개될 수 있으며, 이들 세계 시민들의 연대가 제국의 지배를 깰 유일한 희망이자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허동현
【또 하나의 논쟁-독자를 대신하여 묻다】
이 책의 특기할 만한 점은, 각 장 말미에 독자를 대신해서 두 교수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항상 박 교수가 먼저 의견을 개진하고 이어서 허 교수가 맞받아치고 나면 논의가 종결되는 구도가 반복되다 보니, 박 교수가 보충 설명이랄까 반론을 제기할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아쉬워할 독자들을 위해서다.
때문에 이 장에서는 중심 주제에서 더 넓게 더 깊이 파고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가령 허동현 교수는 지금 세계체제의 중심인 미국의 눈에 석유자원이 풍부한 중동지역은 닭다리로, 냉전시대 반공 보루로서의 전략적 중요성이 없어져가는 한반도는 먹자니 먹잘 것이 없는 계륵으로 비칠 것이라는 적절한 비유를 들었다. 오늘 닭다리를 손에 쥔 최강 미국보다 손에 아무것도 쥐지 못한 중국?일본?러시아와 같은 굶주린 야수들이 더 무서운 존재가 아닐까 라며 100년 전 우리는 개화와 척사, 친일과 반일로 나뉘었지만, 지금 우리는 진보와 보수, 친미와 반미로, 그리고 남과 북으로 갈라서 있으니 지금 재도래한 야수들의 격전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의 존엄과 안전을 지켜낼 수 있겠느냐는 걱정 어린 쓴소리를 한다.
박 교수에게는 한국이란 용어 대신 '우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독자를 현혹시키기 위한 과장된 표현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나 자신도 대한민국에 입적된 자로서 '우리'라는 말을 쓰는 면도 있는가 하면, 폭정 밑에서 살아온 러시아/소련에서의 경험이나 수탈-억압 일변도의 국가 밑에서 사는 한국에서의 경험이나 그 나름대로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서 그렇게 쉽게 우리라고 말하는 부분도 있"다라는 박 교수의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세계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에 대해
한미관계사를 미국의 일방적인 전략적ㆍ경제적 이해타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의한 미국과의 유대 강화라는 관점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미냐 반미냐라는 논쟁은 냉전이 종식된 지금 시대착오적일 수 있으므로 미국에 대해 보다 유연한 인식을 갖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냉전 해체 이후 한반도에 대한 열강의 이해가 엇갈리기 시작한 오늘 실패의 역사에서 배운 교훈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우리의 생존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 기르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허동현
'이차적 제국주의 국가' 중국에 대해
오늘날 중국 대륙 곳곳에서 민주노조들이 생겨나고 파업도 벌어집니다. 중국 강단의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사회?경제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있지요.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한국 시민사회가 취할 수 있는 최전의 방법은, 중국을 독재 국가로 단정해 진지한 대화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목소리들을 발견해 그들과 꾸준히 대화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작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박노자
세계 지배의 야심찬 꿈을 꾸는 일본에 대해
일본이 메이지 시기 서구화의 야만적이며 배타적인 측면을 충분히 자각하고 반성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에 덧붙여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해 일본 콤플렉스의 물질적 원인이 제거된다면, 한일 양국은 프랑스와 독일처럼 불우한 과거를 잊고 새로운 연대와 연합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면 현해탄 양쪽의 지식인들은 근대적 국가지상주의라는 패러다임을 해체하고 인간 위주의 포용적이고 화쟁적인 사관을 확립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박노자
【각 논쟁의 핵심】
"무지와 선망에서 비롯된 대미 맹종" VS "개화파의 미국 의존은 불가피한 선택"
박노자 / 박 교수는 개화기의 신지식인들이 사회진화론의 약육강식 논리, 계급적 이해, 서구 중심주의적 인식에 함몰되어 '미제의 야만적 실체'를 깨닫지 못할 만큼 판단 능력이 떨어졌다고 보았다. 구체적인 예로 근대의 대표적 지식인 이광수는 미국을 과학과 문명의 화신, 교육을 통해서 조선을 구원해줄 '구세주'이자 '시혜자'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또한《조선책략》을 통해서 청나라 양무(洋務) 개혁 지도부의 호의적인 대미 의식이 조선에 이식된 상태였고, 《독립신문》은 한술 더 떠서 미국을??문명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의 약자를 보호해주는 수호천사로까지 서술했다는 주장을 한다. 박 교수는 필리핀 양민과 인디언 학살, 인종차별, 이민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 등이 웅변하는 미국의 사회ㆍ경제적 모순과 계급갈등을 알아챌 만큼 우리 지식인들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다고 말한다.
허동현 / 반면 허 교수는 지미(知美)파 인사인 유길준은 ‘약자를 돕는 정의의 나라’라는 미국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피상적 인식에 경종을 울렸으며, 윤치호도 인종 차별, 마약과 범죄의 만연 등 ‘기독교 국가’ 미국의 치부를 꿰뚫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중국ㆍ일본ㆍ러시아라는 부차적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스스로의 힘으로 막을 길이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미국으로부터 독립과 생존에 필요한 외교적 지원을 얻음은 물론 근대화를 위한 인적ㆍ물적 지원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또 미국을 전쟁을 양식 삼아 살아가는 괴물에 비유한 박 교수의 주장에 대해, 미군 모두를 ‘살인기계’로 보거나 미국 시민사회를 ‘오락적인 폭력’으로 전쟁을 즐기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회로만 규정한다면, 우리는 인류 필망의 암울한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박 교수의 대미관을 맹목적인 반미로 규정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한다.
"진흙 다리의 거인" VS "조선뿐 아니라 세계가 두려워한 강대국"
박노자 / 박 교수는 100년 전 한국의 지도층은 러시아를 세계최강의 군사대국으로 잘못 인식하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당시 국제외교전문가로 손꼽히던 민영환도 해외 사정에는 사실상 백지에 가까웠다는 것. 이는 중국과 일본이 자국의 필요에 따라 수집 처리한 정보를 조선이 이중삼중의 번역 과정을 거쳐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러시아에 대해 선진 유럽 제국에 비해 강고한 신분제의 잔존, 격심한 빈부 격차, 그리고 취약한 산업 구조를 가진,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진흙 다리의 거인'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수용한 정보를 가지고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착각해 나라의 운명을 건 대한제국의 위정자들이 결국 빈약한 정보 인프라로 인해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허동현 / 허 교수는 조선이 러시아에 대한 정보를 일본과 중국측에 의존한 것은 사실이나, 공로증(恐露症)이란 용어가 웅변하듯, 당시 러시아는 조선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무서운 존재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 정부는 일본과 청나라가 일방적으로 주입시킨 공로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았으며, 김옥균?박영효 등 개화파 인사와 고종은 독자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간의 세력 균형을 잡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부심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약육강식 시대의 부적자(不適者)" VS "약육강식 시대의 침략자"
박노자 / 박 교수는 김윤식과 같은 온건 개화파는 중국의 근대화 경험을 배우고 근대 기술을 대량 수입하는 데 치중한 반면, 윤치호나 서재필과 같은 급진 개화파는 극단적인 반청 (反淸) 감정을 가졌다고 말한다. 이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담론을 빌린 '모방적 오리엔탈리즘'이라 할 수 있는데, 중국을 멸시하는 풍조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한국인들에겐 중국의 문화를 깔보고 백안시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 박 교수는 식민지 시절엔 안창호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중국 지식인들과의 연대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가 한국전쟁 이후 다시 중국과의 교류가 단절되었다며, 가까운 장래에 동아시아의 문화적 공동체가 다시 부활할 수 있기를 촉구한다.
허동현 / 허 교수는 온건 개화파라 해서 중국을 긍정 일변도로 본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중국은 임오군란 진압 이후 대한제국 조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해오면서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을 막아주는 보호자인지 근대화를 가로막는 침략자인지 그 정체가 묘연해지기 시작했다. 중국 국민당 정부가 국내 독립운동가들에게 든든한 후원자였다가, 한국전쟁 이후 남한 사람들에게는 통일을 방해하는 훼방꾼이었다가, 북한의 위정자들에게는 제국주의 미국의 침략을 물리쳐준 독립의 옹호자였다. 즉 중국에 대해 애증이 엇갈린 감정을 품고 있으며, 동북공정으로 첨예화된 갈등이 웅변하듯 중국은 더 이상 믿음직한 우방은 아니라는 게 허 교수의 생각이다.
"식민 통치가 낳은 단일민족 의식" VS "한국의 근대 만들기는 독자적 노력의 결과"
박노자 / 박 교수는 우리를 괴롭힌 일본의 식민 통치가 전통적인 신분 관념을 깨트리고 한민족 전체를 '민족' 또는 '국민'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보았다. 한편 따라잡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일본, 우리의 우수성을 인정받아야 할 권위자로서의 일본, 그리고 보고 배워야 할 근대 모델로서의 일본은 말하자면 적대적 타자이자 유의미한 존재인 것이다. 일본은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침략자인 동시에 근대의 교사였다는 박 교수의 주장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가깝다. 그런데 일본에게 받은 근대 수업은 강간이나 다름없이 수동적이고 폭력적이었으므로 한민족은 근대성에 대한 원한을 품게 되었고, 반대급부로 다른 '야수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취한다고 꼬집는다.
허동현 / 허 교수는 욕하면서 배우는 이율배반적인 일본 인식에는 동의하나, 식민지의 경험이 '민족 만들기'의 직접적인 동기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19세기 말 김옥균?박영효 및 어윤중 등 조선의 선각자들이 근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기울인 많은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한국의 근대 만들기가 무턱대고 일본을 본 뜬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18세기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신분의 장벽이 해소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