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주요 주장>
안네 프랑크의 상품화된 일기
수용소에 끔찍하게 죽어간 십대소녀의 맑고 순수한 안네의 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홀로코스트를 소프트하게 이미지화한다. 대개 어린 시절 읽는 유대인 소녀의 일기가 학살에 대한 기억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그 결과 안네의 비참한 죽음은 그녀의 아름다운 일기에 의해 가려진다. 게다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안네의 일기는 아우슈비츠와 상관없이 출판시장에서 상품으로만 인식되고 만다.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어린 소녀는 사라지고 상품화된 일기만이 남아 있다.
'인종 멸절'의 거대 폭력은 개인에게서 온다
인종절멸이라는 전대미문의 체제에 의한 폭력은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폐쇄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하는 인종이데올로기이거나, 특정 정치집단의 광적인 실험이거나, 허황된 모험이 결코 아니다. 거대한 폭력은 놀랍게도 지극히 평범한 사회구성원의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편견으로부터 자양분을 얻는 다는 점을 벤츠의 연구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무시무시한 괴물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편견이란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아무런 성찰 없이 기계적으로 수용되는 소문에 의해 생성되고 확산되며,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까지도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의 민주국가군에서 여전히 목격된다.
잠재적 반유대주의의 다양한 모습
반유대주의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인 벤츠는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분석함으로써 공적 영역이 아닌 사적 영역에서 유대인 혐오와 반유대주의가 어떻게 발현되었는가를 정치하게 서술한다. 이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잠재적 반유대주의의 다양한 모습을 제시한다.
고정관념과 편견이여 안녕!
벤츠의 책은 독자들에게 덤으로 그러나 결코 책의 본 주제보다 덜 중요하지 않은 성찰적 메시지를 전한다. 읽기에 따라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반유대주의나 유대인 혐오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책의 행간을 읽다보면, 독자는 어느덧 사회적 혹은 개인적 관계에서 흔히 생겨날 수 있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성찰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갖고 있는 타인에 대한 통념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 또는 이러한 통념은 타인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차분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
▷권력 있고 부유한 유대인의 이미지
중세에 유대인의 지위는 왕의 시종이었으며 궁정 유대인들을 통해 부와 권력을 가진 유대인의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과거 많은 예술가들은 오랫동안 유대인을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했다.《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터널》의 울프, 《유대인 쥐스》의 쥐스 등은 유대인에 대한 악의적인 이미지(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 과도한 육욕, 오리엔트적 외모)를 일반인들에게 각인시켰으며, ‘시온 산 현인들의 의정서’는 유대인이 세계 지배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증거로 이용되고 있다. 〈영원한 유대인〉〈로스차일드 가문〉같은 영화는 사이비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모든 경제적 정치적 난관들이 유대인 때문에 발생했다고 매도했으며, 이로 인해 유대인에 대한 종교적 문화적 편견이 절대적 적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최근에는 파스빈더가 자신의 연극에서 유대인 투기꾼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부유한 유대인에 대한 고정 관념은 유럽 유대인을 장기적인 파국으로 이끌었고, 유대인이 권력과 부를 추구한다는 생각을 광범위하게 확산시켰다.
▶유대인의 세계 지배 음모: 시온 산 현인들의 의정서
유대인 세계 지배 음모론의 기원은 괴트셰의 소설에 등장하는 프라하의 유대인 공동묘지 장면이다. 괴트셰가 음모론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무한히 이용될 수 있는 문학적 원형을 창조함으로써 음모론을 대중화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시온 산 현인들의 의정서는 음모론의 토대가 되는 문서로, 저자는 베일에 싸여 있으며, 음모론의 핵심은 유대인 비밀결사가 기존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힘을 빌려서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극우적인 러시아 민족동맹의 일원인 닐루스가 의정서를 유포시켰고, 독일에서도 의정서가 출간되고 음모론이 확산되었다. 음모론에 대한 반박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오히려 음모론의 확산에 기여했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에서 처음 나타났으며, 스위스에서는 유대인 문화단체와 종교단체의 요청으로 문서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재판이 열렸다. 일심은 문서가 위조라고 결론짓고 피고인 스위스 나치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했으나, 고등법원은 이 판결을 번복했다. 문서의 확산은 막을 수 없었으며, 소련에서도 선전에 동원되었고, 아랍 및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무기로 등장하기도 한다. 삼류 소설의 하찮은 내용이 정치 독트린이 되고, 세계 해석의 전범이 되고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계몽주의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경고를 발휘하는 것뿐이다.
▷독일인과 유대인의 공생론에 대한 비판: 나치 집권 이전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유대인을 사회적으로 박해해온 전통이 없었다면, 나치의 반유대주의 선전은 그토록 빠르고 파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1870년대 이후에는 유대인 증오가 근대적인 인종주의적 반유대주의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인과 유대인이 사회적 통합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던 것은 19세기 말의 일이다. 1812년 유대인은 프로이센 국민임을 인정받았지만 곧 새로운 제한이 가해졌다. 게다가 법적인 평등이 곧 일상적인 차별의 철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독일의 고양 유대인은 괴테의 은혜를 입은 독일인이라고 불렸으며, 하나 아렌트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유대인 계층이 나타난 것은 정말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의 문화적 정신적 동화는 단지 일방적인 사랑 고백이었을 뿐이다. 개종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제조건이었으므로 유대인 해방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일 유대인은 반유대주의적 선전과는 달리 동질적 집단을 형성하지 못했고, 내부에는 유대인 그룹과 시오니스트 그룹이 존재했다. 유대인에게는 평등한 호혜주의가 적용되지 않았으며, 완전한 사회 활동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통합보다는 배제가 일반적이었음을 나타내준다. 근대 유대인의 박해는 5단계로 이루어졌는데, 1단계에서는 유대인 모욕과 공직 박탈, 2단계에서는 공식적인 권리 박탈과 뉘른베르크법 제정, 3단계에서는 경제적 기반 파괴, 4단계는 2차 대전 개전 후 재산 몰수, 식량 배급, 각종 규칙(애완동물 소유 금지, 공원 벤치 사용 금지, 대중교통 이용 금지 등) 실행, 5단계는 별 표식 강제 착용과 강제 이송, 인종 학살 등이 자행되었다. 나치 몰락 이후에는 무의식적인 중압감으로부터 또다른 새로운 반유대주의가 탄생했다. 유대인 배제는 유대인 통합 과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독일에서 유대인 해방은 족히 120년이 걸렸지만, 배제와 절멸은 불과 10년 만에 이루어졌다.
▶시대정신으로서의 유대인 혐오: 폰타네와 빌헬름 2세 시대
유대인의 이미지는 반유대적 감정을 전파하며, 적대적인 표상을 확인시킨다. 게다가 일급 문학작품에서도 이는 표현되면 작가가 유명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은 정치서적이나 통속소설뿐 아니라 본격문학이나 교양 출판물에서도 드러났으며 이는 유대인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현상의 이면에는 일상적으로 반유대주의가 존재했으며, 반유대주의는 사회적 편견이자 소수의 유대인을 배제하여 다수의 자기이해를 얻기 위한 공적인 암호였으며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같은 위협적인 사조를 막기 위한 도구로서 일상적으로 존재했다. 폰타네 같은 작가들은 당시 문필가들이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그는 정치 참여를 자제했지만 자신의 글을 통해서 유대인 혐오와 편견을 널리 확산시켰다.
▷유대인은 수치스러운 인종이다: 투홀스키와 유대인의 반유대주의
냉소주의자 투홀스키는 독일 유대인으로서 자신의 혈통에 대해 분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유대인들이 히틀러와 나치당을 신뢰하는 것을 조롱했으며, 유대인들은 존엄성을 상실한 처참한 부류라고 주장했다. 그는 말년에 남긴 글 속에서 반유대주의를 표현했으며, 유대인의 자기 증오를 보여준다. 독일의 상황에 대한 평가와 나치에 대한 투홀스키의 대측은 오류로 드러났으며, 유대인은 노예민족이라고 공언하며 자신이 유대인임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쓴다. 그는 게토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게토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독일 유대인에 대한 고발자적인 분노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는 저항 없이 박해를 받아들이고, 국가 이데올로기가 된 반유대주의를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패배를 자신의 패배로 받아들인 것이 분명하다. 그는 오랫동안 싸워왔던 독일 민족주의자들이 승리하고 나치가 집권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희생자의 편을 드는 대신 사해자와 희생자 모두를 증오하고 경멸했다. 이는 붓을 꺾은 작가이자 고독한 망명자인 투홀스키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안네 프랑크의 신화
안네의 일기에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위협은 그림자일 뿐이며, 공포와 희망 속에서만 포현된다. 사실적인 유대인 학살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안네의 일기가 대단한 성공을 거둔 이유다. 일기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안네의 아버지로, 그는 가정 교육에 이롭지 않은 내용은 빼기도 하고, 내용을 바꾸기도 했다. 이러한 편집된 기록은 사료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지만, 안네프랑크와 관련된 단체들은 이런 연구 결과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안네의 일기 외에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사람들의 자서전은 출판 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안네 프랑크의 삶은 휴세 사람들이 유대인 학살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자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에비타나 다이애나처럼 하나의 숭배 대상으로 자리매김되어, 주변적인 것이 본질이 되어버린다면, 이는 대단히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방어에서 비롯된 유대인 혐오: 스위스 반유대주의의 과거와 현재
스위스 사람들은 인종 학살에 대해 무죄라고 생각했으나, 1990년대부터 나치의 유대인 학살 당시 스위스가 수행한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스위스 국민은 유대인 보상기금을 마련하지 않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유대인 스스로가 박해에 책임이 있으며, 주인나라 국민의 분노를 살 수 있는 요구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1998년에는 바젤 사육제에서 인종주의적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전단을 뿌리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정은 이들을 처벌하지 못했다. 스위스에 대한 비난으로 야기된 반유대주의 물결은 가라앉았지만, 이를 통해 스위스 사회가 다른 중유럽 국가들처럼 반유대주의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유대주의 대 친유대주의: 1945년 이후의 독일 유대인
오늘날 독일에서 공개적인 반유대주의는 억제되지만 이는 오히려 은밀한 반유대주의를 고양시킨다. 절대적인 수의 독일인들이 스스로 반유대주의자임을 밝히고 있지만 반유대주의적 경향은 전반적으로 퇴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상적인 유대인 혐오는 계속되고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 유대인이 독일에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러나 동유럽에서 이주해온 유대인들 때문에 독일에서는 유대인의 삶이 부활하게 되었다. 미국과 영국 점령지의 유대인 난민수용소는 유대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고, 게토의 삶은 지속되었다. 난민 수용소는 1950년대부터 비기 시작했으나 결국 1만2천 명의 유대인이 독일에 남아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러나 생존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독일인들로부터 질시와 배척을 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