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화란 키워드로 바라보는 동남아
세계가 아무리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이슬람교와 무슬림을 떠올릴 때에는 여전히 우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거의 없는 머나먼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일이라고 여기고 만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종교적 분쟁들은 뉴스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실로 무슬림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을 뿐더러 자신의 삶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도 한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남아시아의 종교 분포를 보면 깜짝 놀라고 만다. 동남아의 무슬림 인구는 2억 5천여만 명으로 전체 동남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0%를 차지하고 있다. 전세계 무슬림 인구 약 13억 명에서 20%에 가까운 인구가 동남아에 거주고 하고 있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인도네시아에서는 전체 인구 약 2억 5천만 명의 87.2%인 약 2억 1천만 명이 무슬림이며, 말레이시아에서는 전체 인구 약 3천만 명의 61.3%인 약 1천8백만 명이 무슬림에 속하며 국교의 지위를 당당히 누리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전체 인구 1억 7천만 명의 5%인 약 8백50만 명이, 태국에서는 약 6천7백만 명의 4.9%인 3백4십만 명 가량이 무슬림이라고 한다. 동남아와 직간접적인 교류가 갈수록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고, 이슬람이라는 키워드가 동남아의 정치, 경제, 사회에서 핵심 변수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슬람, 특히 동남아의 이슬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동남아의 이슬람, 특히 1970년대 이후 동남아 세계에 전방위적으로 불어닥친 “이슬람화Islamization”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토하여 현재 동남아와 동남아의 이슬람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하는 책이다. “이슬람 부흥(운동)”이라고도 하는 이슬람화는 현재 동남아의 여러 현상을 들여다볼 때에 빠져서는 안 될 개념이다. 이슬람화/이슬람 부흥은 본래 중동에서 비롯한 움직임이었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 대다수가 서구식 모델을 따라 근대식 변화를 추구했으나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게다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자 반성하며 일으킨 운동이다. 이슬람이라는 렌즈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고 일상을 비롯한 모든 사회 경제 정치 체제를 이슬람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 이슬람화/이슬람 부흥의 핵심 내용이다. 중동에서 시작인 이 이슬람화 움직임은 여러 무슬림 사회에 영향을 미쳤으며, 동남아 각국에서도 종교적 의무 수행을 강조하고 이슬람법 즉 샤리아에 기초하여 일상을 변화하려는 노력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었다(머리말 9~10쪽).
동남아의 주요 이슬람 국가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부르나이 등이다. 비록 마이너리티이긴 하지만 태국, 필리핀 또한 무시하지 못할 세력을 이루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90%에 육박하는 인구가 무슬림이며,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사는 국가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고 있지만 이슬람교를 국교로 지정하여 “모든 말레이인은 무슬림이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이슬람교를 국교로 지정한 나라는 모두 25개국이다. 그 중 인도 동쪽에서 국교로 지정한 국가는 방글라데시와 말레이시아가 유일하다). 그리고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을 중심으로 한 무슬림과 중앙 정부 사이의 분쟁은 동남아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각 국가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이슬람화를 다루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슬람화라는 큰 움직임에 따라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요 경향에 주목하고 있다.
이슬람화, 동남아를 근본적으로 흔들다
1970년대 이후 동남아에서의 이슬람화는 눈에 띄게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슬람화은 일상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남아 무슬림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는 이슬람교가 들어온 이래로 비무슬림의 삶과 관습을 인정하는 다문화주의와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경제적) 세속적 삶을 분리하는 혼합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다가 점차로 개혁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1장)과 홍석준(2장)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무슬림들이 예배, 할랄, 히잡에 관한 규정 등 이슬람법(샤리아)을 엄격히 지키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려는 경향을 뚜렷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한다. 친족과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던 (전통적인) 의례와 관습에서 이슬람식으로, 전통적인 친족관계에서 이슬람(사원과 무슬림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관계가 더욱 중요시된다는 점을 주목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분방하며 남성과 다를 바 없는 지위를 누리던 여성들이 이슬람화에 따라 순종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강요받게 되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진정한 무슬림”이 엄격한 이슬람식 삶을 통해 타인을 통제하는 것이 목격되는 순간이다. 한편 홍석준은 말레이시아에서 여성들의 히잡에서 이슬람법으로 여성을 엄격히 통제하고 남성우월주의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기존 해석을 뛰어넘는다. 히잡으로 자신의 몸을 감춘 말레이 무슬림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열광하는 현상을 분석하며 새롭고 독특한 문화정치학적 견해를 밝힌다.
이슬람화는 공적/정치적 영역에서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김형준(1장)은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화에 따른 급진주의/근본주의적 경향성의 강화와 이슬람 정당의 발흥으로 일반 법률을 이슬람법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이슬람법에 저촉된 잡지와 정치인들을 이전과는 다르게 정부가 직접적인 처벌과 징계를 하게끔 하는 실력 행사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32~33쪽). 홍석준(2장)은 말레이시아의 여당인 “암노”가 세속적인 정치체제를 옹호하는 데에 비해 야당인 “빠스”는 이슬람 부흥에 더욱 호의적이라는 점, 이슬람 부흥과 정교일치 운동이 국가 개혁과 정치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공적 영역에서의 이슬람화는 종교적 민족적 다원주의에 큰 위협이 되고 있으며 민족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동엽(3장)은 필리핀 민다나오 섬의 모로 무슬림의 역사를 개관하면서 그들이 기독교로 대변되는 중앙정부에 대해 지닌 정치 경제 교육적 박탈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이슬람교, 특히 이슬람 분리주의를 만나게 되는지를 통렬히 분석하고 있다. 중동,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 영향을 받은 이슬람 부흥운동은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중앙정부와 기나긴 분쟁과 내전을 치르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이다.
이슬람화는 경제에도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김형준(1장)은 이슬람화의 개혁주의적인 경향이 인도네시아에서 할랄 인증 제도(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란 뜻으로, 이슬람법에 따라 먹고 쓸 수 있는 것을 말한다.)의 강화와 도박, 로또, 매매춘의 금지를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일본 기업 아지노모토의 사례는 흥미롭다. 조미료업계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던 이 기업이 생산하던 조미료에 돼지기름 성분이 검출되자 조미료 3천 톤을 회수한 일이 2000년에 있었다. 할랄 인증을 어긴 이 기업은 결국 3위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할랄 인증 제도는 갈수록 강화되어 식품에서뿐만이 아니라 화장품, 의류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172쪽).
한편 전제성/김형준(4장)과 이선호(5장)의 글은 이슬람화에 따른 이슬람 금융의 변화에 관한 아주 중요한 것이다. 본래 이슬람교는 위험 투자, 투기, 대출, 이자놀이, 채권 발행에 엄격한 통제를 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적으로 이슬람 경제 관련 법제화와 이슬람 금융기관의 설립을 통해 가능케 했다. 이슬람 금융 합법화의 핵심은 “이윤과 손실의 공유 원칙”이다. 이 원칙을 통해 여러 채권과 금융 상품을 개발하여 적극적으로 경제에 뛰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선호는 말레이시아 이슬람 금융과 이슬람 금융기관을 아주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 말레이시아에 진출하려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있기에 이충열(6장)은 필리핀 민다나오 모로 지역에 여러 금융 자산을 투입하여 실질적인 경제적 자립을 이루게 하고 정치적 경제적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다. 그의 글은 해외에 한국인 경제학자로서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화, 과거로의 회귀인가 근대적 움직임인가
저자들은 이슬람화가 가진 개혁주의적, 급진주의적, 근본주의적 움직임이 결코 신정일치의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식민지 해방과 독립국가 형성을 겪으면서 다가온 서구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이슬람식 반성이자 대응으로 볼 수 있으며 부패한 독재자들에 종교적으로 저항하는 방식으로 택한 새로운 근대적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강력한 야당인 “빠스”가 이슬람 개혁주의에 호의적이라든지, 화인에 비해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열악한 말레이인이 이슬람화에 더욱 적극적이라든지 하는 경향이라든지, 또한 도시 중산층과 대학생 집단이 이슬람 부흥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필리핀에서 소수 무슬림이 분리독립을 위하여 민족주의적 경향을 띠는 것이라든지, 정치적 활동이 막힌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도되었던 현상 또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이슬람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동남아 각국의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현재와 미래, 여러 고민과 도전들을 살펴보고 세계적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익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동남아시아의 이슬람화” 시리즈의 첫 권이다. 2015년과 2016년엔 2차와 3차분으로 타종교도와의 관계, 초국가적 무슬림연대, 여성, 교육, 표현의 자유 문제 등을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