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신앙인의 자기 고백
나는 무신론자다, 고로 행복하다
예수와 붓다가 바로 내 스승이다!
예수에게서 사랑으로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웠고
붓다에게서 주인으로 누리며 사는 법을 배웠다
“ 이 책의 제목은 ‘무신론자들을 위한 변명’이다. 무신론을 옹호하는 논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유신론자들의 비난에 맞대응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무슨 무신론자들을 위한 변명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논증이나 맞대응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증폭시킬 뿐임을 수많은 논증과 맞대응의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것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무신론자나 현세주의자가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신론자일지라도 당당하게 자신이 이해하는 예수나 붓다가 기독교도들이나 불교도들이 이해하는 예수나 붓다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 머리글 중에서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기독교를 믿기 시작하여 지금도 매주 일요일이면 교회에 나가는 신앙인인 지은이가 “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신학적 화두를 붙들고 철학적 답을 찾아 헤맨 궤적이자 결과물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무신론은 예수나 부처의 존재나 가치를 부정하는 사회 통념적 입장과는 다르다. 그는 오히려 그들을 스승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입장을 택한다.
그래서 그는 내세관에 입각한 종교적 구원은 허울에 불과하다며 진정한 구원이란 신을 넘어서(beyond) 얻을 수 있는 현세적 삶의 행복이라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어려서 열감기를 심하기 앓고 난 후 양쪽 귀 모두 이관이 막히게 된다. 양쪽 귀 이관이 막힌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지독히 고통스럽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매 순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불편했다. 머리는 늘 멍했고 온몸은 늘 피곤했으며 무엇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몸은 깡말랐고 피부는 늘 까칠했으며 거의 매순간 생명의 윤기가 썰물처럼 온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온갖 병원을 다니며 진찰을 했지만 이관이 막히지 않았다는 검사결과만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하던 중 대학 건강센터의 도움으로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이관이 막혔음을 밝혀냈고 간단한 시술로 막힌 이관을 뚫었다. 숨 쉬는 것도 한결 편안해졌다. 온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그때 지은이는 해탈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그건 그에게 있어 구원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지은이는 신을 부정하기 보다는 신을 극복하였고, 스스로 소피스트임을 자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은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현세의 삶을 주인으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며, 인생은 생명의 불꽃들을 어두운 밤하늘에 쏘아 올려 벌이는 한여름 밤의 불꽃놀이 축제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인생관에서 구원은 과거나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어떤 거창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편안한 호흡 속에,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향유하는 우리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이 책은 지은이가 소피스트가 되기까지의 사유의 과정을 씨줄로, 예수나 붓다, 칸트, 흄 등의 종교적 철학적 사유들을 날줄로 삼아 엮은 자기고백적 철학하기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예수와 붓다가 바로 내 스승이다!”
미국에서 영미철학을 공부했던 그는 말장난으로 거짓 구원을 끌어들이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애매모호를 심오로 위장한 사이비 구원들, 또는 은유와 상징의 바다 위로 떠다니는 사이비 구원들을 경계 대상 일호로 삼았다. 사이비 구원들도 어떤 사람들의 밤길을 밝힐 수는 있을 것이나 그런 것들이 자신의 밤길을 밝히게 내버려두기에는 자신의 삶이 너무 소중했다.
그는 종교의 초월적 언어에 기대지 않고 건전한 이성과 과학적 세계관을 토대로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였고,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기독교나 불교의 신비주의적 요소들을 감연히 거부한다. 불멸, 영원불변의 진리, 또는 초월적 해탈은 자신의 구원과는 무관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나 불교에 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예수에게서 사랑으로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웠고, 붓다에게서 주인으로 한 세상 넉넉하게 누리며 사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나 불교의 교세가 확장될수록 무신론자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밝히는 일은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극단적으로 중세 유럽에서는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밝히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이런 때에 이 책이 소심한 무신론자들이 기댈 수 있는 작은 보루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저자는 기대한다. 이 책을 통해 무신론자들이 인간성을 인정하지 않는 기계주의자라거나 법과 도덕을 무시하는 반사회주의자라거나 인생이 무의미하기에 열심히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허무주의자라는 생각들이 모두 잘못된 것들임이 드러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저자 김세종과 인터뷰
책제목이 상당히 도발적이다. 『무신론자들을 위한 변명』. 종교를 갖고 있지 않는 이라면 이 땅에서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밝히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기독교를 믿는 신앙인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무신론자라는 말이 곧 신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보다도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무신론자들을 위한 변명』의 지은이 김세종(56, 전 경주대 교수)도 그런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 책이 나오면 우선 어머님부터 저에게 큰 실망을 하실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들과 제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서로가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 책 제목이 도발적이다.
“애초 내가 정했던 제목은 지금 부제로 단 ‘어느 소피스트의 구원 이야기’였는데, 출판사에서 ‘구원’이란 단어를 제목에 쓰기에 부담스러워 했다, 세월호 사고가 나기 전이었지만 너무 종교적 색채를 드러낸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김세종씨는 책 제목에 대한 해명부터 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무신론’이라는 입장은 무신론을 옹호하거나 논증하는 것이 아니며, 또 유신론자들의 비난에 맞대응하는 논리는 더더욱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무신론자나 현세주의자가 자신의 정체성(무신론자)을 당당하게 드러내도 괜찮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 이 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를 꼽는다면?
“그건 말할 것도 없이 ‘현세의 삶을 주인으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에 대한 성찰적 들여다보기이다.”
그러면서 김세종은 불꽃놀이 축제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생명의 불꽃들을 어두운 밤하늘에 쏘아 올리면 순간 화려하게 빛나다가 사라지듯 우리 인생도 한 순간 화려하게 불꽃을 피웠다가 사라진다는 것. 그래서 내세관을 말하는 종교에 기대기보다 현세에 충실하는 것이 결국 자기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 ‘어느 예수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게 읽히던데.
“아마도 무신론자들 상당수가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 기독교에서 예수를 너무 신격화, 우상화했다고 본다. 그래서 예수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아니라 ‘사람의 아들’의 자리에 있을 때 우리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게 나의 깨달음이다. 그래서 쓴 글이다.”
- 지금은 농부로 있는데.
“몇 년 전 제주도로 귀농했다. 철학자라는 업을 가진 대학교수라는 직을 수행하던 데서 야자를 기르는 농부로 변신하였는데, 내게 이런 유전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다. 씨를 심고 가꾸는 일 생각보다 재미있다. 그 어떤 철학보다 더 깊은 감동을 준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제주도에 다양한 야자나무가 자라도록 하고 싶다. 지금 외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야자나무와 다양한 종류의 소철 씨앗들을 거금(?)을 주고 들여와 비닐하우스에서 싹을 틔우고 화분에 심어 재배하고 있는데,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라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성공적으로 키우고 있다. 시행착오가 많겠지만 10년쯤 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야자수박물관을 건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