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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4년 04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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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0쪽 | 485g | 153*224*30mm |
ISBN13 | 9788974790554 |
ISBN10 | 8974790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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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손으로 표지의 발을 쓸어 보았다. 거칠고 닳은 누군가의 맨발이다. 그저 걷는 기능을 하는 발일 뿐 욕심도, 성냄도, 미움도 다 떨어져 나간 무욕의 발이다. 눈을 감고 싯다르타의 깊은 눈을 들여다본다. 지난 2천 5백 년 동안 싯다르타는 자신을 투영해 바라보는 영혼들 속에서 현존해왔다. 전륜성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뒤로하고 왕궁을 넘어 맨발 수행의 길을 걸으며 80여년을 부처의 생애로 살았던 사실보다, 나는 ‘사람의 맨발’ 첫 장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싯다르타' 라는 이름의 한 수행자의 삶에 매료되었다.
카샤파가 관 밖으로 나온 싯다르타의 맨발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울음을 울 때, 나 또한 한 인간의 장엄한 삶의 마감에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경외의 눈물이 흘렀다. 왕자라는 신분과 왕이 될 미래, 갓 태어난 아들,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들, 진수성찬의 음식과 가죽신을 마다하고 모든 것에서 돌아서서 평생을 맨발로 걸었다. 바람처럼, 연꽃처럼, 사자처럼 어디에도 걸림 없는 자유인으로서 싯다르타의 인간적인 위대함과 정신적인 견고함에 누구도 감히 이르지 못할 길을 걸어간 이 정신적 영웅의 삶을 경외로 바라본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누구든지 올수 있는 길이라며 손짓한다.
사회가 어지러울 때나 자신의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또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 나는 붓다의 지혜 속으로 들어간다. 싯다르타의 맨발 수행이 남긴 팔만 사천 법문은 어디에서나 보고 들을 수 있다. 붓다는 하늘에, 땅에, 꽃잎에, 물속에, 계절에, 초록빛, 태양, 호흡... 그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드러나지 않는 현묘, 신이 되지 않은 완전한 인간의 참 자아는 시선을 돌리는 어느 곳에서나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아, 싯다르타여! 영원한 나의 순례자여······.
맨발은 싯다르타의 삶을 활불(活佛)과 동불(動佛)로 이끌었다. 나는 싯다르타를 고요와 명상 속에서 찾았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싯다르타는 오로지 사람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전해주기 위해 오랫동안 걷고 걸었다. 맨발의 사문이 된 그는 가식 없이 진실하게 오직 자신의 내면을 자각하면서 섭씨 40도가 넘는 타는 듯한 인도의 자갈밭을 걷고 또 걸어 민중에게로 갔다. 맨발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에고의 성이 허물어지고 오직 순수한 본래 자기로의 회귀의 순간을 묵묵히 한 발씩 내어딛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깨달은 존재로서의 붓다의 삶보다 인간적인 구도자 싯다르타의 삶에 초점이 맞춰진 이 책에서 붓다, 부처라는 말을 찾아보기 힘들다.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들 때도 그의 이름은 싯다르타로 불린다. 실제로 싯다르타는 붓다라는 완성된 존재로 불리길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 같다. 5년 전 열반에 드신 법정스님도 생애 마지막까지 어떤 수식어도 없는 ‘비구 법정’이었고, 그렇게 단순한 삶의 원형을 사는 것이 수행자의 모습이란 것을 알았다. 싯다르타의 정신은 후대의 수행자들이 스승의 길을 따라 걸으며 무소유와 맨발의 삶을 이어갔고, 2천 5백 년의 세월 속에서 그의 정신은 결코 마모되거나 흐려지지 않은 채 이어져 온 것이다. 싯다르타는 영원한 구도자의 표상이고, 시간이 아무리 흐르더라도 싯다르타의 맨발은 우리가 배워야 할 인간 내면의 궁극적인 현재이다. 영원한 구도자로서 싯다르타의 출가 정신은 우리들 가슴 속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되살아나는 횃불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겪는 허기와 배고픔을 통해 누군가의 가난을 생각했고, 난민으로 살고 있는 불가촉천민들을 위해 스스로 누더기를 입었다. 카스트 제도로 나뉜 차별사회를 평등한 사회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맨발이 부르트도록 날이 선 모래 길을 걸었다. 천하를 분쟁 없는 화평의 상생, 화엄 세상을 이루기 위한 출가수행의 길은 오늘날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내리는 엄정한 죽비 같고 화두 같은 삶이었다. 길 위에서 태어나 살다가 길 위에서 열반에 든 싯다르타의 맨발을 생각한다. 어떤 것을 앞에 두거나 그것을 향해 쫓아가지 않는 ‘사람의 맨발’은 자비의 화현이 되어 지금도 내게로 걸어온다. 더불어 함께인 세상을 꿈꾸는 화엄의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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