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나는 사람들의 앞에서 서서 무언가 강의하는 일을 했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소위 '강사'의 일이 나의 주업무 중에 하나였다. 물론 작년과 그 이전의 강의 대상은 달랐지만 누군가를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온라인상에서 강의도 해보고, 칠판 강의도 해보고, PT 강의도 해보고...참 다양한 강의를 했었는데 정작 한 번도 강의가 내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무려 8년 간이나 일을 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어찌 그리 오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신기하지만 한 번 탄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그렇게 계속 타고 갔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회의하고 자책했다. 왜 늘 발전이 없는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그 시간 동안 희열이나 보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칭찬을 들을 때면 으쓱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도 다시 늘 원점으로 돌아와서 결국 '강의'는 내 적성이 아니라는 변명같은 결론을 내렸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이렇게 종점까지 갈 수는 없다고. 그리고 나는 질주하던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강의만 아니면 되는 곳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또다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지치고 힘든 그 과정이 두려워 1년 만에 다시 나는 도망쳤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허우적대던 '강의'를 벗어나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앞에서서 무언가를 전달하고, 평가 받는(칭찬을 받든 비난을 받든), 그렇게 도마 위에 올라가는 것이 너무나 힘겨웠었던 것 같다. 준비하는 과정의 스트레스, 오르기까지의 긴장감, 무대에서의 살벌함. 그렇게 전쟁터에 나가는 듯한 느낌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던 그 '강의'와 관련된 책을 다시 펴 들었다. 파열할 것 같은 그 긴장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는 아니다. 솔직하게 다시 강의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가끔 다시 강의를 하러 무대에 선 다면 하는 가정은 해보긴 한다. 너무 재미있는 강의를 보거나, 너무 지루하고 의미없는 강의를 들을 때면.
그럼에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도대체 왜 나는 10년을 해도 발전이 없었을까? 왜 강의를 즐기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명강사는 타고나는 것인가? 내가 호언장담을 해도 사람일은 어찌될 지 모르는 것이다. 특히나 요즘 같은 프레젠테이션이 기본인 세상에 피하기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정말 꼭 필요한 순간이 오면 나는 또 정면 승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답을 찾아야 했다. 왜 나는 10년 동안 발전이 없었을까?
[강의력]은 그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강의를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강의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나라는 관점으로 책을 읽었다. 아니, 나도 모르게 계속 그 방향으로 읽게 되었다. 사실, 허탈하리만치 원인은 책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아니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그 답을 알고 있었는 지 모른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책을 읽었다기 보다 강의 한 편을 들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열정적으로 기승전결에 맞추어 흥미를 유발하면서 청중에게 다가와서, 강의 속으로 청중을 끌어들였다가 감동으로 마무리하는. 실제로 강사를 양성하는 수업의 사진이 실려 있기 때문에 실제 강의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수도 있지만 강약의 힘이 들어간 문체는 읽는 내내 저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어떤 재능보다 내겐 강사로서의 그 '열정'이 없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열정이 없으니 게을러졌고, 준비가 부족하니 자신감도 없어졌다. 자신감없이 강의를 하니 한 강의 한 강의가 힘들고 재미가 없었다. 그냥 강의는 내가 도달해야 할 목표나 고지가 아니라 눈 앞에 해치워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10년이 지난 들 발전이 있을 턱이 없었다.
손짓, 동선도 섬세하게 생각하고 계획하면서 청중과의 소통을 하려는 강의와 어서 전달하고 빨리 끝내려는데 급급했던 나의 강의.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강의하는 법, 교수법을 가르치면서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미 강의하고 있는 현역 강사들이 강의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간절함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 열망은 내 생각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실제로 내 교수법 강의를 들으러 오는 고객은 대부분 기업과 현장에서 '괜찮은 프로 강사'를 자처하는 분들이다. 심지어 최고로 강의를 잘할 것 같은 방송 아나운서들도 내 교수법 강의에 찾아와 멋진 목소리로 잔뜩 긴장하면서 코칭을 받곤한다. 처음에는 궁금했다. 보통 10년 이상의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분이 왜 나를 찾아왔을까?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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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러 가지 질문에 공통으로 담긴 것을 추리면 딱 한마디이다.
"나는 강의를 하지만 배운 적은 없어요."
다시 말하면, 어쩌다 보니 강의는 하고 있는데 강의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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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바꿔보자. 지금 하는 일 가운데 단 하나라도 배우지 않고 잘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ㄱ, ㄴ'도 모르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쓰게 됐는가? 숫자도 모르면서 방정식을 풀고 있느냐는 말이다. 컴퓨터를 샀다고 모든 기능을 활용하지는 않는다.
강의도 마찬가지다. 10년, 20년 강의를 했지만 방법은 모른다. 하다 보면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떨 때에 잘되지 않아서 좌절하기도 한다. PT를 읽어 내려가는 더하기 빼기 수준의 강의는 가능할지 몰라도 수준 높은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방정식 수준의 강의를 해내기는 어렵다.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p.67~69
프로 강사는 아니었지만(월급받고 했으니 프로인가?) 내가 겪었던 혼란 그대로가 느껴졌다. 차이는 나는 도망갔고, 저자를 비롯한 프로 강사들은 그것을 뛰어 넘으려 도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동력의 차이는 진정한 강사가 되고자 하는 '열정', '열망'에 있었다.
"나도 다 외우라는 이유를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어. 일단 외워서 해봐."
압박감마저 느꼈지만 결국 15권이나 되는 매뉴얼을 한 꼭지씩 외우고 강의하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방대한 양의 매뉴얼을 외우고 놀랐던 것은 매뉴얼의 기막힌 정교함이었다. 강사의 이야기가 먹힐 경우와 먹히지 않을 경우까지 대비해서 말할 내용, 청중의 반응에 따른 다양한 제안, 다른 방식으로 같은 내용을 전할 수 있는 방법들, 심지어 농담까지 온갖 지침이 담겨 있었다.
나는 1년이 지나고 나서야 매뉴얼의 내용을 실수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고, 엘리자베스와 선배 강사들은 강의 1년 차에 접어든 나를 '베이비 강사'라고 불렀다. 그리고 2년이 지났을 즈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매뉴얼을 반복한 결과 나도 모르게 강의에 조금씩 응용하고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만의 스타일로 진화했고 나만의 색깔이 강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 p. 205~206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강의도 그렇다. 물론 아주 드물게 강의의 천재가 나타날 수도 있다. 아주 짧은 준비만으로도 주제와 대상에 상관없이 멋진 강의를 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당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오래 준비한 강사는 현장에서도 오랫동안 할 말이 많다. 급하게 현장에 뛰어든 강사는 생명이 짧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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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준비해도 때로는 강의장이 강사에게 좌절을 안겨 준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와 노력 끝에 청중이 반응할 때 강사가 느끼는 짜릿한 전율과 감동, 청중의 변화를 눈앞에서 보았을 때 밀려오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행복감은 뭐라 표현할 수 없다. 진짜 강의를 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 p.208
강의의 뼈대는 저자가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진정한 프로 강사가 되기 위한 기능적인 스킬을 다룬다. 그러나 그 부분만 부각되었다면 아마도 건조한 이론서에 머물렀을 것이며, 이를 따라하고자 하는 독자의 욕구도 불러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얘기한다. 왜 강의를 잘하고 싶은가? 어떤 강사가 되고 싶은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으며 최고의 스킬을 가진 강사가 되기 이전에 최고의 뜻을 품은 진정한 강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청중과의 진실한 소통이 강사 그리고 청중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이라는 것을 빨려 들어갈 듯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책 서문을 읽을 때 "이 책을 다 읽을 즈음 '나는 강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당신이 수많은 청중 앞에 선 모습을 슬그머니 상상하기 바란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 괜시리 살짝 찔렸었다. 강의를 좀더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좌절했던 그 괴물이 도대체 무엇이었나를 확인하기 위해 약간은 냉소적인 태도로 읽기 시작했었기에.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면서도 오로지 진정한 강사가 되고 싶은 열망으로 견뎌냈고, 외적인 성공를 떠나 스스로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강사가 되기까지의 그 여정을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나는 과연 그런 신념을 가지고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도 놓지 않을 꿈이 있는가?
강의가 문제가 아니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면서 눈 앞에 현실을 외면한 증거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강의를 피해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 열정을 피해 달아난 것이다. 그리고 그 습성은 그 어떤 일을 해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내 안의 강의 재능을 이끌어내라'고. 처음에 이 부분을 읽을 때는 패잔병 같은 나에게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있나 하며 쓴웃음을 지었었다. 그런데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에 관한 책을 본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일 것이다. 분명 내 안에도 그 재능을 이끌어내고 싶은 욕망이 아직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솔직하게 인정을 하고 나니 문제와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라고 바라는 일을 대하는 태도.
깨지고 상처받아도 다시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용기.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반복과 연습.
솔직히 강의에 대한 그와 같은 열정은 내게 없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최종 꿈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때까지 겪었던 그 여정은 필요할 것이다. 모양과 색깔은 다를 지라도 본질은 하나다. 10년을 하고도 몰랐던 강의에 대한 스킬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얻은 것은 바로 그 펄펄 뛰는 열정과 끝까지 버텨내는 인내에 대한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