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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18년 09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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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 /PC(Mac) |
파일/용량 | EPUB(DRM) | 17.95MB 파일/용량 안내 |
ISBN13 | 9788970599717 |
30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김연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다. 워낙 좋아해서 작가의 모든 소설과 산문들을 다 읽었고 출간된 모든 책들을 다 소장하고 있다. 김연수 작가의 책들은 따로 섹션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을 정도다. 사실 몇년 전부터 나온다는 소문만 무성하도 출간되지 않는 소설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뜻밖에 산문집이 출간되어 한편으로는 우려되면서도 (소설 출간은 포기한 걸까? 혹시 쓰다가 중간에 엎었나 싶어서) 어쩔 수 없이 한 편으로는 반가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출간된 '새 작품집'이니깐.
돌아보면 삶의 장면장면마다 김연수의 작품이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참 힘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엄마 1주기 기일이 다가올 즈음이 심리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다. 엄마 1주기 기일을 앞두고 몇달 전부터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두었던 것도 김연수의 책이었다. 여차하면 이 책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그 책이 준 위로는(심지어 읽지 않은 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컸다. 『청춘의 문장들』을 떠올리면 항상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때 엄마랑 아빠가 살던 집은 거실 깊은 안쪽까지 햇볕이 잘 들던 집이었는데, 장을 보러 갔다가 딸 줄 꽃화분을 사온 엄마가 밖에서 "딸"하고 나를 불렀다. "하여간, 그 김연수라는 사람이 엄마보다 좋은 거니? 어떻게 엄마가 왔는데 나와보지도 않는 거니?" 그땐 엄마가 살아 있었고, 오랜 자궁암 투병 끝에 완치 판저을 받고 그 어느때보다 엄마가 건강하다고 믿던 때였다. 엄마의 오랜 투병으로 우리 집을 감싸고 있던 불안이나 걱정이 걷힌 그 어느때보다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
오랜 친구인 김중혁 작가와 함께 썼던 『대책없이 해피엔딩』은 한국에 있는 지인이 비행기로 보내줘, 출간되자마자 읽었었다. 그 즈음엔 엄마가 간암이 발병된 걸 알게 되어 다시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어떻게 한국에 들어가 엄마를 간호해야 할까 늘 고민하던 때. 이 책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지만 따지고 보면 삶에 대한 것이었고, 두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를 보고 있는 책 표지 때문인지 태평양 건너에 있는 엄마가 사뭇 그리웠다. 그래도 대서양을 마주보고 살 때보단 한결 위안이 되었지만.
『지지 않는다는 말』은 어떤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말하는 것과 글쓰는 것조차 힘들었던 그 즈음(실어증이라는 게 있다는 건 알았지만 실언증이 있는 지는 몰랐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었다)에는 책 읽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는데, 이 책을 힘겹게 조금씩 읽으면서 삶 내지는 생의 끈을 붙잡을 수 있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마라톤의 세계까지는 아직 입문하지는 못했지만, 오래된 고질적인 이분법의 세계에서 벗어나 몸을 학대하지 않고(잘 먹고), 몸을 쓰는 일(운동을 하게 된 것)은 모두 이 책 덕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건 『여행할 권리』. '여행'이라는 컨셉과 산문집이라는 공통점 때문인 것 같다. 그 즈음에 쓴 글을 보면『청춘의 문장』들을 읽었을 때처럼『여행할 권리』를 읽으면서도 예스24에 자주 들어와 카트에 책을 담았단다.
김연수의 책을 읽다 보면 그가 글 속에서 언급하는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니깐. 내가 김연수를 좋아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다. 그렇게 구입하게 된 책들, 그래서 읽게 된 책들도 나의 한 부분으로 나를 구성하고 있을 거다.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것들 중 여러 부분은 김연수에게서 기인한 셈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거슬러 거슬러 그의 데뷔작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를 읽었을 즈음엔 남자친구의 돌사진을 보는 기분이라는 코멘트도 남겼다.
돌아보면 2008년에서 2010년 즈음이 내 생에서는 가장 안정되고 행복했었는데, 그 즈음의 추억을 구성하고 있는 것 중 상당수가 김연수와 연관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책들과 아울러.
나는 신혼여행을 못 갔다. 남들 다 가는 신혼여행도 못 간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남편과 나는 결혼을 하자마자 유학을 왔는데, 미국에 오기 전부터 나는 남편에게 유학자금이 있는지, 유학을 떠나면 생활할 정도는 되는지를 물었다. 그당시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대학강사로 일하던 남편이 천원 한장 모아놓은 게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남편은 부모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라고 말했다. 그건 오빠 생각이고 부모님이 해주실 의향이 있는지, 해주신다면 얼마나 해주실 건지 미리 여쭤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형도 해주셨으니 당연히 나도 해주겠지 부모 자식 간에 뭘 시시콜콜 물어보고 그러냐는 게 남편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기대와는 달리 시댁의 원조는 전혀 없었고, 우리에게 있는 전 재산이라고는 내가 유학을 가기 위해 모아놓은 돈이 전부였다. 당장 집도 얻어야 하고, 차도 사야 하는데, 비행기를 타기 며칠 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거다. 자신의 부모에게 실망한 남편은 입을 꾹 다물었고, 나는 신혼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에 단 한번뿐인 신혼여행을 못 갔으니 전혀 아쉽지 않을 수는 없었는데, 남편 왈, "남들은 일주일에서 열흘, 길어봐야 한 달 신혼여행을 가는데, 우리는 미국 와서 매일매일이 신혼여행이니 얼마나 좋으니? 방학 때마다 여기저기 놀러다니니 이게 신혼여행이 아니고 뭐니?"하는 거다.
이 남자, 참 미안함도 고마움도 모른다.
암튼, 남편 말대로 미국 생활이 '신혼여행'에서 끝났으면 좋았을텐데, 학위를 마치면 한국에 들어가겠다는 약속마저 지키지 않고 계속 미국에 살 걸 고집하는 바람에 이젠 '신혼'을 떼도 무방하게 되어버렸다. 미국 생활이 벌써 13년째이니 말이다.
그래도 아직 '정주'의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이곳이 내가 머물러 살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젠 엄마마저 돌아가셔서 돌아갈 곳마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 따지고 보면 나는 '여행자'라기보다는 '방랑자', '투어리스트'라기보다는 '에뜨랑제'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만약 내가 정주해서 이곳에 빨리 적응하고 이 곳의 '인사이더'로 사는 게 목적이었다면 제일 먼저 시민권부터 획득했을 테니깐. 그것 일년 이년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같은 이유일 수도 있겠다.
언젠가, 아마도. 누군가를 만나리라는 것. 그게 나의 여행이라는 것.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라고 김연수는 이 책의 작가의 말에서 말한다. 이것이 '여행'의 정의라면, 정주하고 있는 듯 보이는 지금의 삶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역으로 이사와 '링크플러스'라는 시스템을 통해 책을 빌리게 되었는데, 알바니 지역의 도서관 스탬프가 찍혀서 온 책들을 보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2006년 당시 버클리대학에 와 있던 김연수가 왕왕 언급했던 지역 중 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맨 처음 버클리에 갔던 때도 생각난다.
내 기억 속 버클리는 『여행할 권리』 이다. 김연수가 이 책에서 묘사한 버클리 주변 지역들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후사꼬 할머니가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걸어나와 "네가 여기서 살 고 싶다면 너는 여기서 살 수 있다"고 말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던 작가가 잠시나마 머물렀던 곳을 갔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던 것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가 언급했던 지역이나 인물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어떤 설렘이나 들뜸, 그 경험을 내가 재현한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김연수가 정의내린 '여행'이 아니고 무얼까.
경험이 겹치는 지역과 공간이 언급될 때마다 나의 추억도 환기되었다. 어떤 때는 깊이 외로웠고, 어떤 때는 몹시 아팠고, 영국이 개인날처럼 간혹 즐겁고 신나를 날이기도 했던 그날들. 그리고 그 즈음에 내 곁에 있어줬던, 혹은 내 기억 속에 있었던 사람들.
그래서
언젠가, 아마도.
누군가를 만나리라는 것.
그게 나의 여행이라는 것.
에 한없이 동의하게 되는, 뭐 그런 순간순간들을 이 책을 읽는 동안 한없이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책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에 연재한 글들에 8편의 새 글을 더해, 무려 58편의 글들이 수록됐다. 264쪽 분량이니『여행할 권리』보다 조금 얇은 책임을 감안한다면, 짧은 호흡에 읽을 수 있는 많은 글들이 실린 셈이다.
생각해보니 2008년에 출간된『여행할 권리』 이후 딱 10년만에 나온 글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니, 그동안 나에게도 참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엄마를 잃었고, 그래서 돌아갈 곳이 없어져버렸고, 30대에서 40대가 되었고, 건강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고, 얼굴에 주름이 조금씩 늘어나고, 염색으로는 감당이 안 될 만큼 흰머리가 늘어나기도 했다.
이렇게만 말하면 무척 비관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 있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이런 이유.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역시 여행 동안 김연수와 함께했던 책들과 영화, 그리고 음악들을 공유할 수 있다.
어쩌면 여행의 추억만큼이나 그 시간 그를 둘러쌌던 책과 영화와 음악을 공유할 수 있는 것도 독서의 매우 큰 일부분인데, 그런 일치의 순간 무척 기쁘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샌프란시스코만을 바라보면서 달린 일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 이어폰에서 리 오스카의 ‘San Francisco Bay’가 흘러나왔는데, 그 순간 나는 그 노래를 완전히 이해했다.
이 책의 어느 한 부분에 나온 대목인데, 이 문장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어서 내가 참 행복했었다는 걸 말해두고 싶다.
공유할 게 많은 사이, 얼마나 감사한가!
[알림]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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