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듯 맞이할 생의 마지막 날들,
행복한 죽음이 있는 당신의 ‘소울 플레이스’는 어디인가요?
―9명의 저자, 9개의 소울 플레이스
내 생의 마지막 날들은 어떤 모습일까?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소설가, 영화감독, 건축가, 요리사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9명의 저자가 함께한 에세이집『소울 플레이스soul place』는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물음 가운데 ‘생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고 싶은 장소’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이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게 하는 곳, 충만한 행복감 속에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해줄 곳, 그곳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소울 플레이스’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자신의 죽음’이라는 아득한 현실에 대해 한 번쯤 깊이 사색해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삶에서 따로 떼어내어 바라볼 수 있는 죽음이란 없다는 사실을. 바로 그런 까닭에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앞으로 도래할 날들을 기꺼이 마중하는 것, 그로써 지금의 나를 좀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죽음의 장소를 떠올려보는 일은 자못 흥미롭다.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이상향으로서의 장소를 그려볼 수도 있고, 노년의 삶을 차곡차곡 정리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골라볼 수도 있다. 혹은 인상 깊은 기억을 남겨준, 그래서 언제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추억의 장소를 되새김할 수도, 그저 최초의 삶이 부려졌던 고향집을 낙점할 수도 있을 것이다.『소울 플레이스』는 9명 저자의 9개 장소, 저마다의 간곡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소울 플레이스들을 개성 있게 펼쳐 보인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자기만의 소울 플레이스 찾기’를 권한다. 두 발로 디디고 설 수 있는 물리적 세계의 장소이거나, 다만 상상 속에 존재하는 미지의 공간이어도 상관없다. 그곳을 찾기 위해서는 지나친 부지런함 대신 때로 느짓하고 게으른 마음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 소울 플레이스는 또한 우리가 언제고 마음을 누일 수 있는 영혼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내 인생의 마지막 한 곳’을 마음속에 두는 일, 그리고 가끔씩 그 마음속을 오가는 일은 숨 돌릴 틈 없이 돌아가는 속에서도 돌연 공허해지는 우리들 일상에 속 깊은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당신의 소울 플레이스는 어디일까?
“가장 비밀스럽고도 가장 노골적인 밀실이자 광장”
“삶과 죽음의 알리바이로 가득한 아지트”
―그와 그녀의 소울 플레이스를 엿보다
이 책『소울 플레이스』가 던지고 있는 물음은 9명 저자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 ‘살아 있음’을 절절히 느꼈던 시간의 기억을 불러온다. 뜨겁게 생을 질주했던 순간, 애타게 그리던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순간, 되찾고 싶은 기억과 운명처럼 마주친 순간, 그리고 내가 제일 나답다고 느꼈던 순간. 이처럼 가슴 뛰는 순간을 선사한 곳에서라면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거라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Soul Place #1, 내 삶을 완전히 바꿔버린 풍경과 만난 곳
한 시골 마을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 이기웅은 20대 시절 죽음에 대한 인식과 강렬하게 마주했다. 이후 생의 의미를 치열하게 구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는 그는 이 책에서 직접 보고 들은 몇 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이는 ‘삶을 완전히 바꿔버린 풍경’과 만난 일화들이다. 불안과 두려움, 탐욕과 교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결정적인 만남’이 필요하며, 그 만남이 이루어지는 풍경 앞에서 그는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Soul Place #2, 책상 하나와 노트북, 꼭 읽고 싶은 책 서너 권이 놓인 내 작은 방
소설가 김별아는 자신의 작은 방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게 되기를 바란다. 20년차 전업 작가에, ‘방콕족’인 그녀는 “거실 구석에 놓인 컴퓨터 앞에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창고가 되다시피 한 문간방에서, 식탁 위의 조리기구들 옆에서” 그간 닥치는 대로 읽고 써왔다. 작가가 자신만의 방을 갖게 된 것은 불과 서너 해 전이다. 지상의 방 한 칸을 갖기 위해 오랫동안 뒤척이고 부대꼈던 작가는 마침내 그 방에서 평화롭다. 가장 “나답게” 머무를 수 있는 그 작은 방에 필요한 것이라곤 책상 하나와 노트북, 꼭 읽고 싶은 책 서너 권이 전부이다.
Soul Place #3, 뜨겁게 생을 질주했던 서울 도심 속 산촌, 부암동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행작가 오소희의 소울 플레이스는 어디일까? 서울 도심 속 산촌이라 불리는 부암동이다. 부암동에서 그녀는 ‘엄마’로 새로 태어났다. “아이의 역동하는 생명력 덕분에 나의 생도 하루하루 살욾 있다, 행복하다, 체감되었던 날들. 젖을 먹이고 함께 노래하면서, 가슴이 뻐근해질 만큼 ‘제대로’ 소용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해지던 곳.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완벽하게 재현해준 공간”이 바로 그곳이다.
Soul Place #4, 언젠가 돌아갈 흙, 그 흙과 함께 노니는 지리산
사진기자 생활 16년 만에 도시를 떠나 지리산으로 내려간 사진작가 이창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니, 돌아갈 그 흙이 도대체 무엇인지 느껴보자, 죽어서 갈 흙 살아서 가자.” 지리산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이 책이 던지고 있는 물음에 이미 답했고 실제 그 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살아가는 과정이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므로 어디가 되었건 두 발을 디디고 선 그곳에서 자유로이 살 수 있다면 그는 그것으로 족하다.
Soul Place #5, 죽음보다 깊은 영원으로 나를 기다려주는 제주 바다
“내가 바다에서 왔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다.” 영화감독 임찬익의 말이다. 그의 고향은 제주도이며, 처음으로 참여한 영화가 제주의 우도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이렇듯 바다와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는 그는 죽음의 공간으로 제주 바다를 소원한다. 한편 임찬익 감독은 이 책에서 바다와 죽음이 맞닿아 있는 네 편의 영화를 선별해 소개한다.
Soul Place #6, 오랫동안 나만을 기다리고 있던 듯한 거리, 뉴욕 블리커 스트리트
건축가 천경환의 소울 플레이스는 뉴욕의 블리커 스트리트이다. 언제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빛나는 시간을 안겨준 곳. 미국 출장길에 잠시 머물렀던 그 거리는 낡은 풍경 곳곳에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나만을’ 기다리고 있던 듯한 그 거리에서 건축가로 살다가, 문득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Soul Place #7, 홍대입구역을 둘러싼 다섯 개의 비밀 지구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방민호는 자신만의 은밀한 영지에서 평생 머물 계획이다. 홍대입구역을 둘러싼 이 비밀 지구는 그의 마음의 거처를 가리키는 상징적 기호이다. 실재하는 홍대 인근 지역을 제1지구에서 5지구까지 나누고, 각각의 지역을 비밀리에 순례하듯이 글을 써내려갔다.
Soul Place #8, 스페인 요리사로 새롭게 태어난 곳, 바르셀로나 그라시아
요리사 김문정은 대학 시절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스페인에 반하고 말았다. 졸업 후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던 그녀는 그간의 생활을 정리하고 스페인 요리 유학을 감행했다. 애타게 그리던 곳에서 새롭게 시작된 삶. 현재 바르셀로나 그라시아에 살고 있는 그녀는, 그곳에 살면서부터 일상의 행복과 즐거움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오래전 그 배낭여행에서 보았던 그라시아 광장의 아름다운 풍경. 언젠가 자신도 그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Soul Place #9, 어머니의 품과 같은 완전한 휴식이 있는 곳, 방글라데시 나라얀간지
영화배우 마붑 알엄. 영화 「반두비」에서 주인공 카림 역할을 맡았던 그의 고향은 방글라데시 나라얀간지이다. 1999년 한국에 올 당시에는 3~4년간 머물 계획이었지만, 어느덧 한국 생활 10년 세월이 훌쩍 흘렀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낯선 시선은 여전하다. 오랜 이주 생활에 지친 그의 소울 플레이스는 마음의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 바로 자신의 고향이다. 그는 삶의 마지막 시간들은 자신에게 온전한 휴식이 되어주는 곳에서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