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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lling Stones
롤링 스톤스
데뷔작
홈페이지 http://www.rollingston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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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영국
성별 :
직업 : 가수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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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앤디 워홀과 음악 (Andy Warhol and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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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Rolling Stones (롤링 스톤스) - Let It Bleed [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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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은 탄소 같은 음악이다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는 60년대가 끝날 때까지 언제나 인기 랭킹 2위였다. 최강의 자리는 늘 라이벌인 비틀스에게 빼앗겼다. 그럴만도 했다. 비틀스의 노래가 밝고 깨끗한 데 반하여 그들의 노래는 거의 끈적끈적하고 지저분했다. 비틀스가 아침이라면 롤링 스톤스는 밤이었고 비틀스의 활동무대가 푸른 초원이었다면 롤링 스톤스의 터전은 어두침침한 묘지였다. 엘리트 백인 팝 문화에 젖어든 우리 60~70년대 사람들에게 롤링 스톤스의 곡들이 환영받을 리 만무했다. 무수한 곡들이 애청된 비틀스에 비해 그들의 인기곡은 고작 ‘눈물이 지나갈 때(As tears go by)’ ‘루비 튜즈데이(Ruby Thesday)’ ‘엔지(Angie)’ 정도에 불과했다. ‘검게 칠하라(Paint it black)’가 어필한 것도 80년대 말 국내 방영된 TV외화 < 머나먼 정글 >에 이 곡이 ‘시그널 송’으로 삽입되고 나서였다. 팝의 본고장에서의 휘황찬란한 히트 행진에 견주었을 때 롤링 스톤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실로 보잘 것이 없었다. 비틀스가 ‘산소 같은 음악’을 했다면 그들은 고집스럽게 ‘탄소 같은 음악’을 구사했다. 바로 그 탄소라는 요소로 인해 그들은 ‘4인의 전설’이 된 비틀스처럼 결코 ‘5인의 전설’이라는 명예 작위를 하사 받지 못했다. 대신 그들이 얻은 꼬리표는 ‘5인의 악동들’이었다. 사실 악동은 출신 성분상 비틀스에 어울리는 용어였다. 그들은 영국 리버풀의 ‘노동계급 로커’들이었다. 존 레논의 경우 여지없이 그 어휘에 딱 들어맞는 존재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스톤스 멤버들은 비틀스처럼 가난하거나 못 배운 청년들이 아니었다. 보컬리스트 믹 재거(Mick Jagger)는 런던 대학 경제학부 출신이며 기타주자 키스 리차즈(Keith Richards) 역시 중산층 자손이었으며 초기 리더인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는 음악가정에서 자랐다. 베이스 담당 빌 와이먼(Bill Wyman)과 드럼 찰리 와츠(Charlie Watts)가 노동계급 출신이지만 스톤스에 가입할 무렵에는 엄연한 ‘직장인’이었다. 신분으로 보자면 그들은 결코 록을 해선 안될 위인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울리지 않게 악동 노릇을 자처했다. 그것은 노동계급 청춘에 의한 하위문화라는 ‘록의 헌법’을 거스르는 위헌 사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그러한 ‘자격 미달’을 의식해서인지 비틀스보다 훨씬 강도 높게 록의 규율을 준수했다. 롤링 스톤스는 기꺼이 악동이 되기를 희망했다. 말쑥한 헤어스타일과 정장 차림으로 비틀스와 겨룬다는 것은 뱁새가 황새를 쫓은 격이었다. 데뷔 당시 비틀스 흉내를 내다가 참패를 맛본 그들은 매니저 앤드류 루그 올드햄(Andrew Loog Oldham)의 권고에 따라 곧바로 정반대 이미지로 ‘차별화’하여 재도전을 단행했다. 그들은 비틀스에 이어 1965년 마침내 대망의 미국 정복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그들의 트레이드마크는 불량, 퇴폐, 반항, 비행, 섹스 그리고 말썽과 같은 ‘하위정서’가 되었다. 그들은 ‘게으른 불량 저능아들’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가는 곳마다 소란과 골칫거리를 야기시켰다. 기성 세대와 제도권의 ‘계급 공포’는 예고된 것이었다. 영국의 < 뉴스 오브 더 월드 >지는 ‘당신의 딸이 롤링 스톤스 멤버와 놀러 나가는 것을 허락하겠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 뉴스 위크 >지는 그들을 ‘포르노 같은 가사에 젖어 있는 심술궂은 무리들’이라고 규정했다. 노심초사한 한 여인은 < 타임 >지에 “왜 디스크자키들은 스톤스 같은 쓰레기 노래들을 틀어 대느냐”고 따지는 항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양복 전문지 < 더 테일러 앤드 커터 >는 넥타이 매출이 형편없다고 스톤스에게 제발 넥타이를 매달라고 통사정했다. 클리블랜드 시장 랄프 로커는 스톤스 공연을 보던 17세 소년이 다치자 “그러한 그룹은 우리 공동체의 문화와 오락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며 그들의 콘서트를 불허하는 ‘비민주적’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비틀스에게는 인기폭발의 계기가 된 CBS TV 에드 설리번 쇼의 사례도 유명하다. 객석의 예기치 않은 소요와 그들의 불량스러운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에드 설리번은 상기된 표정으로 선언했다. “그들을 다시는 출연시키지 않겠다! 이 쇼를 구축하는데 자그마치 17년의 세월이 걸렸다. 단 몇 주만에 쇼를 망치게 할 수는 없다” 에드 설리번은 물론 이 선언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지만 2년 뒤인 1967년 섭외 때도 그들의 노래 ‘밤을 함께 보냅시다(Let’s spend the night together)’의 제목을 ‘시간을 함께 보냅시다(Let’s spend some time together)’로 고쳐 부르기를 강요했다. 그러나 사회적 지탄이 있으면 그에 비례하여 응원군도 출현하는 법이다. 어느 록밴드보다 흑인 리듬 앤드 블루스(R&B)를 뛰어나게 소화했기 때문에 ‘소울의 왕’ 오티스 레딩은 가장 좋아하는 그룹으로 롤링 스톤스를 지목했으며 그들의 레퍼토리를 리메이크해 음반에 담기도 했다. 1965년 미국 콜로라도 존 A 러브 주지사는 성공적으로 공연에 감사하는 뜻으로 ‘롤링 스톤스의 날’(11월 29일)을 공식 선포했다. 믹 재거가 1964년 난폭 운전으로 면허 취소의 위기에 몰렸을 때 사무 변호사 데일 파킨슨의 간청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면허가 취소되면 믹 재거와 그의 그룹이 움직이는데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영국은 그들이 벌어들이는 달러를 필요로 하며 그들은 어느 수출업체보다도 많은 달러를 번다.” 재거는 16파운드의 벌금을 내고 다시 차를 몰 수 있었다(좌우지간 유명해지고 봐야 한다!). 1967년 재거와 리차즈가 마약 불법 소지 사건으로 무거운 형량을 선고 받고 이어 브라이언 존스도 런던 아파트에서 같은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도 그랬다. 이번에는 언론이 도왔다. 보수신문으로 정평 나있는 < 더 타임스 >지가 놀랍게도 ‘누가 바퀴로 나비를 찢어 죽이나?(Who breaks a butterfly on a wheel?)’라는 제목의 비호 기사를 게재한 것이었다. 당시 언론은 롤링 스톤스에 대한 대중의 집단 히스테리를 알고 있었다. 롤링 스톤스는 당시 기성 가치에 거스르는 ‘히피 보헤미안’들의 정서를 반영했다. 그들의 곡에는 의도했든 안했든 히피 세대의 분노와 불만이 스며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60년대 록정신의 한복판에 ‘구르는 돌’의 깃발이 휘날리게 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차를 운전하고 있을 때 라디오에 그 양반이 나오더군, 점점 더 쓸데없는 정보만 늘어놓는 거야. 내 상상을 불태우려는 듯 말야. 노력해 도 노력해도 난 도무지 만족할 수 없어’-‘난 만족할 수 없어(I can’t get no satisfaction)’중에서 이 노래는 세 번째 구절의 ‘여성 생리’ 관련 가사로도 어필한 것이 사실이지만 청년 대중들이 주로 멜로디 부분에 맞춰 “현실 상황에 절대 만족할 수 없음”을 목청 높여 부른 것에 힘입어 빅히트했다(그들의 최초 미국 차트 1위곡). 믹 재거 스스로도 “이 곡은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욕구 불만을 담았다. 그것은 꾸밈없는 10대의 반항이었다”고 말했다. 히피 세대들은 정말 스톤스의 말을 따라 순종을 거부했고 도전했고 싸웠으며 싸돌아다녔다. 스톤스 또한 확고한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지 않았지만 시종일관 그들에 대한 ‘자극’을 즐겼다. ‘그녀가 왜 자유로워지려는지 묻지마. 그녀는 그게 유일한 낙이라고 말할 거야. 그녀는 삶에 묶여 있지 않아. 그런 대가를 치러 봤자 인생은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어’-‘루비 튜스데이’ ‘난 자유를 갖고 있지만 많은 시간은 없다. 신념은 무너졌고 눈물은 쏟아야만 해. 우리가 죽고 난 뒤 어떠한 생을 얻읍시다. 야생마는 날 질질 끌고 다니지 않지. 어느 날 우리는 야생마를 타게 될 거야’-‘야생마(Wild horses)’ 1960년대 그들의 음악은 라이벌 밴드 비틀스에 끌려 다닌 측면이 없지 않았다. 1966년 작 < 여파(Aftermath) >는 재거와 리차즈가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의 콤비 자작곡인 < 러버 소울(Rubber soul) >에 충격 받고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는 자세로 제작에 임한 것이며, 1967년 사이키델릭 음반 < 악마 폐하의 요청(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만 해도 비틀스의 <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황급히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2등이었다. 결코 비틀스로부터 왕관의 소유권을 이전 받지는 못했다. 비틀스는 록밴드에서 ‘전천후 팝 밴드’로 승천하면서 어느 세대에도, 어느 계층에도 적(敵)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 서전트 >의 시점부터 음악의 축을 로큰롤의 흥분에서 팝 예술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롤링 스톤스는 적이 많았다. 기성 세대들은 록의 부랑아인 그들을 꺼렸으며 록이란 또 애초부터 전 세대를 포괄할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음악이었다. 결국 비틀스는 록을 버려 ‘국민그룹’이 된 것이다. 만약 비틀스에게 약점이란 것이 있다면 바로 ‘록과의 작별’일 것이었다. 이 비틀스의 허점이 롤링 스톤스에게는 강점을 의미했다. 롤링 스톤스는 록을 배신한 비틀스에게 실망한, 그리하여 멀어져 간 ‘록 충절파들’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그 팬들에게 ‘우리가 진정한 로큰롤 밴드’임을 열심히 음악으로 웅변했다.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은 1966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어른들이 비틀스가 훌륭하고 비틀스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해졌다. 기성 세대들은 우리를 좋아했다. 그리하여 진정한 ‘히피’ 아이들은 또는 그렇게 자신을 생각하는 애들은 우리를 떠나 버렸다. 그들에게 관심 있는 것은 스톤스의 팬이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모는 롤링 스톤스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록밖에 몰랐다. 그것도 기타와 드럼 베이스가 물려 빚어내는, 단순하고 경쾌한 원시 로큰롤로 일관했다. 1960년대 후반으로 가서는 데뷔 시절에 더러 다루곤 했던 느린 리듬 앤드 블루스나 발라드의 비율마저 낮추어 버렸다. 1960년대 후반기에 발표한 3장의 앨범 < 단추 사이에(Between The Buttons) >, < 거지의 향연(Beggar’s Banquet) >, < 렛 잇 블리드(Let It Bleed) >가 뚜렷한 히트 싱글이 없음에도 록비평가들이 일제히 걸작 음반으로 꼽는 것도 이 앨범들이 철저히 록음악에 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 거지의 향연 >에 수록된 곡 ‘거리의 싸움꾼(Street fighting man)’에 내비친 그들의 ‘로큰롤 신념’을 들어보자. ‘내 이름은 소란이라고 하지. 난 외치고 울부짖을 거야. 난 왕을 죽이고 그의 종복들을 박살낼테야. 가난한 아이가 로큰롤 밴드에서 노래하는 것 말고 할 게 뭐 있나. 졸린 런던 타운에서 거리의 싸움꾼을 위한 장소는 없기 때문이지!’ 그들의 록에 대한 헌신은 < 타임 >지로부터 ‘피에 굶주린 로큰롤 앨범’이라는 칭찬을 받은 기념작 < 스티키 핑거스(Sticky Fingers) >와 이듬해의 음반 < 대로의 추방자(Exile On Main Street) >로 절정에 달했다. 록 비평가 로버트 크리스트고(Robert Christgau)는 “적어도 펑크가 도래할 때까지 아무도 그들처럼 몰아(沒我)의 에너지로 철저히 록을 한 사람들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롤링 스톤스는 록에 온몸을 내던진 대가로 막대한 부와 명성을 창출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록의 ‘낙오자 정서’와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록이 제도권의 스타가 아닌 거리의 청년들에게 소유권이 있음을 입증한 펑크 밴드들에게 공격 타깃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와 관련하여 섹스 피스톨스 자니 로튼이 “롤링 스톤스와 후는 비위에 거슬린다. 그들은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제시할 것이 없다”고 성토한 것은 유명하다. 그들은 순식간에 ‘록의 공룡’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은 일말의 ‘반성’도 없었다.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1978년 당시의 인기 음악인 디스코를 채용한 ‘네가 그리워(Miss you)’를 노래하며 제도권 한복판에서 유유자적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위기 속에서도 록의 공격성을 잃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펑크 록은 펑크 세대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자신들이 오래 전에 터득한 ‘그들만의’ 원시적인 로큰롤을 했다. 록의 뿌리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원형 록을 보존하며 그 ‘충실성’을 옹호한 것이었다. 1980년대 들어서도 그들은 그렇게 록을 했고 끊임없이 해체설이 떠도는 가운데에서도 1989년 < 강철바퀴(Steel Wheels) >를 통해서 원형 록으로 재기했다. 1994년에 발표한 < 부두 라운지(Voodoo Lounge) >나 1995년 말에 내놓은 < 스트립드(Stripped) >도 거친 로큰롤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변한 것이라곤 1969년 브라이언 존스가 사망하자 믹 테일러(Mick Taylor)가 그 자리를 메꾸고, 1974년 다시 그 자리에 그룹 페이시스의 전 멤버 론 우드(Ron Wood)가 들어온 것, 또한 1994년 빌 와이먼이 탈퇴한 것뿐이었다. 이제 멤버들 대부분의 나이 50세를 넘어섰다. 롤링 스톤스는 오랫동안 록이 가지는 열정과 흥분에 몸바치면서 쌓은 금자탑에 또 하나의 글귀, ‘록은 늙어서도 할 수 있다’를 새겨 넣었다. 그러면서 펑크 진영의 지탄도, 얼터너티브 록의 대공세도 거뜬히 극복했다. 믹 재거는 1988년 이렇게 말했다. “만약 로큰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배우나 작가, 감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로큰롤이 나를 휘어잡았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여기 있는 것이다” 그의 롤링 스톤스는 < 스트립드 > 앨범에서 밥 딜런의 고전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을 불렀다. 이 한 곡이 아마도 이 앨범이 말하려는 바와 그들의 음악과 역사를 축약하는 노래일 것이다.
 
자료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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